‘읽씹’이 뭐예요? - 곽성구 전 광주일고 교사
2024년 07월 30일(화) 21:30 가가
세상은 날로 변해가고 기성세대나 신세대나 상관없이 새로운 단어의 탄생에 적응하기 여간 힘들어 한다. 특히 신조어나 은어는 특별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다. 줄임말들을 살펴보면 얼른 뜻이 들어와서 ‘와 이건 기발하구나’하는 단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단어가 거북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어서 더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할아버지 ‘읽씹’이 뭐예요” “너 어디서 그런 상스런 말을 하니?” “할아버지 읽고 있는 신문에서 본 것인데요, tv에서도 나와요.” 세상에서 내 말을 제일 잘 듣고 실천하는 손주 녀석의 질문에 매우 당황함은 물론 금방 답을 하지 못했었다.
최근에 탄생한 신조어인 것은 분명한데 일상생활에서 품격있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은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한참을 궁리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씹”이라는 단어는 점잖은 말은 아니다. ‘씹다’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쓰는 말에서는 ‘음식을 씹다’가 그래도 가장 점잖은 말인 듯 싶다. 하지만 어감은 좋지가 않다.
‘읽고 난 다음 무시하다’는 뜻으로 쓰인 은어임을 알고 있으나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다는 뜻으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말을 씹다’에서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을까? 일상언어에서 ‘씹’이라는 단일 단어는 어감이 매우 좋지 않아서 품격있는 사람들은 금기어로 알고 거의 사용하지를 않는다. 읽씹을 여러 번 반복해 보시라. 어느새 거부감이 주위를 무섭게 휘감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에서 말이 만들어지고 말이 생각을 만들어 낼진대 우리말을 더 예쁜 말을 찾아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스컴에서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는 읽씹이라는 말은 참 듣기에 거북스럽다. 이런 은어를 사용하는 것을 견제하는 장치가 왜 없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을 텐데, 아무런 거침없이 읽씹이 사용되고 있어서 들을 때마다 정말 거북스럽다. 읽고 무시하다는 뜻이라면 ‘읽무’라 쓰면 더 좋을 것이다. 이는 나의 매우 짧은 지식에서 나온 주장일 수도 있지만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새로운 언어의 탄생은 생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깨우침의 목적이 함께해야 한다. ‘꽃샘추위’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아, 하느님도 사람과 다름없이 시샘을 하는구나’ ‘아닐 텐데,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신데 왜 샘을 내실까?’ 내 마음에는 들지 않은 단어이지만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니까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니까 그대로 따르고는 있지만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갈수록 깊게 파고든다.
하여 ‘꽃샘추위’를 ‘꽃깸추위’라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혼자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꽃들아 피어날 때가 온 것 같다. 정신 차리고 깨어나라. 이게 마지막 울림이다.’ 작은 목소리이고 나 혼자만의 주장이지만 밖으로 내놓아 보면 몇 사람은 동의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이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정화해 가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감이 좋지 않은 은어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이 없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은 순화되기 어렵다. 더 아름답게 더 순화되게 더 가꾸어가면 우리의 일상생활도 아름답게 변화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읽씹’은 ‘읽무’로, ‘꽃샘추위’는 ‘꽃깸추위’로 바꾸어 사용하면 어때요?
최근에 탄생한 신조어인 것은 분명한데 일상생활에서 품격있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은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한참을 궁리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씹”이라는 단어는 점잖은 말은 아니다. ‘씹다’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쓰는 말에서는 ‘음식을 씹다’가 그래도 가장 점잖은 말인 듯 싶다. 하지만 어감은 좋지가 않다.
새로운 언어의 탄생은 생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깨우침의 목적이 함께해야 한다. ‘꽃샘추위’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아, 하느님도 사람과 다름없이 시샘을 하는구나’ ‘아닐 텐데,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신데 왜 샘을 내실까?’ 내 마음에는 들지 않은 단어이지만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니까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니까 그대로 따르고는 있지만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갈수록 깊게 파고든다.
하여 ‘꽃샘추위’를 ‘꽃깸추위’라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혼자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꽃들아 피어날 때가 온 것 같다. 정신 차리고 깨어나라. 이게 마지막 울림이다.’ 작은 목소리이고 나 혼자만의 주장이지만 밖으로 내놓아 보면 몇 사람은 동의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이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정화해 가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감이 좋지 않은 은어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이 없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은 순화되기 어렵다. 더 아름답게 더 순화되게 더 가꾸어가면 우리의 일상생활도 아름답게 변화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읽씹’은 ‘읽무’로, ‘꽃샘추위’는 ‘꽃깸추위’로 바꾸어 사용하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