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 김지을 정치부 부장
2024년 07월 30일(화) 00:00 가가
“이게 과연 나라인가?”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0년 전 세월호 참사 현장을 다녀온 뒤, 언론사 기고를 통해 이렇게 물었다. “…한국 사회는 꼬리 자르기가 법치와 책임의 보통명사가 됐다. 전국민적 공분을 야기한 사건들도 처벌은 항상 실무급들 몫이었고, 책임자는 권력의 보호 속에 건재했다. …공직사회의 책임 윤리는 파탄나고 대통령의 어떤 영(令)도 서지 않으며 사회는 온통 권력과 돈의 힘만 난무해온 모습의 압축판이 세월호 침몰과 사후 대처가 폭로하는 한국호의 민낯이다”고 지적하면서이다.
한국 정치사의 유행어가 된 ‘이게 나라냐’는 이렇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인 유행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다. ‘이게 나라냐’라는 보다 대중화된 문구로 바뀌면서 광범위하게 퍼졌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정치·시사뿐 아니라 ‘이게 회사냐’, ‘이게 사과냐’ 등으로 쓰임새가 확대됐다.
현 정권에서도 비슷했다.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책임 지지 않는 정부에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면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국민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는 행태에, 채 해병 사망 사건과 관련된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이 잇따라 거부될 때 ‘이게 나라냐’는 질문이 온라인과 SNS를 중심으로 올라왔다. 변주도 다양했다.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때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임의로 사업 추진을 백지화하자 ‘이 나라가 네거냐’, 검찰 출신 인사들로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이 채워지자 ‘검찰이 통치하는 나라냐’고 물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황제 조사’ 파문이 일 때는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보수 패널이 중앙지검장을 향해 “당신이 검사냐”고 물었다. 역대 대통령과 그 가족 등 누구도 검찰청 소환 조사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김 여사만 예외를 적용했다고 지적하면서이다.
최근 일본이 ‘강제 동원’을 명시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면서 ‘어느 나라 정부냐’는 질문이 또 소환됐다. ‘이게 나라냐’라는 의문문이 아닌, ‘이게 나라지~’라는 긍정의 문장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dok2000@kwangju.co.kr
최근 일본이 ‘강제 동원’을 명시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면서 ‘어느 나라 정부냐’는 질문이 또 소환됐다. ‘이게 나라냐’라는 의문문이 아닌, ‘이게 나라지~’라는 긍정의 문장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