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우주로!’ 누리호 날아오르자 곳곳서 감격·환호
2025년 11월 27일(목) 19:35 가가
고흥우주발사 전망대 표정
전국 각지서 모인 수많은 시민들
역사의 순간 함께할수 있어 기뻐
우주 강국 발돋움 자부심에 울컥
전국 각지서 모인 수많은 시민들
역사의 순간 함께할수 있어 기뻐
우주 강국 발돋움 자부심에 울컥
“가자! 우주로 가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비행운이 대한민국 우주 역사에 선명한 한 획을 그어냈다.
27일 새벽 1시 17분 고흥군 영남면 고흥우주발사 전망대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명의 시민들은 먼 바다 너머 누리호가 새빨간 불꽃과 함께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연신 환호했다.
초겨울 날씨 두터운 패딩, 핫팩, 담요로 무장하고 누리호의 성공을 기다린 시민들은 발사 2분 2초 후 1단 로켓 분리 소식이 들려오자 박수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누리호가 4분 30초 만에 2단 분리, 12초 21초 만에 3단 분리까지 마치고 최종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펄쩍 뛰며 “됐다! 이제 됐다!” 환호를 내지르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누리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던 한 시민은 “밤 하늘의 까만 별이 됐네”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앞서 애초 예정됐던 발사 8분 여를 앞두고 00시 55분에서 1분 13분으로 연기되자 초조해 하기도 했지만 17㎞ 떨어진 바다 건너 누리호를 향해 “할 수 있다!” 응원을 던지며 희망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
기차를 타고 경기도 안양시에서 온 김정임(여·41), 김태홍(41)씨 부부는 아들 김민준(10), 딸 김지유(7)양의 손을 잡고 발사 성공의 순간에 함께했다.
우주과학자가 꿈이라는 김 군은 “가족들과 함께 본 누리호를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이다음에 커서 우주 과학에 참여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주에서 고흥을 찾은 국립경상대학생 정나승(여·20), 남은진(여·20)씨는 “우주 발사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인데, 비행기와는 차원이 다른 웅장함에 압도됐다”며 “대한민국 우주산업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꿈을 확고히 했던 하루”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주의 별이 된 누리호에 담긴 땀방울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며 1978년 대한민국 최초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 개발에 참여했던 조상현(70)씨는 돌아서는 걸음마다 누리호가 스쳤던 하늘을 돌아봤다.
이날 서울 도봉구에서 목포를 거쳐 홍도에서 배를 타고 고흥을 찾은 조씨는 “감개무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조씨는 “1971년 연구소 창설 이후 소총, 박격포를 만들다가 미군 미사일을 모방 개발해 하나씩 도전해나갔던 순간들이 눈에 선하다”며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장족의 발전을 해낸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대단함을 새삼 느꼈고, 그 역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고 미소 지었다.
이번 4차 발사에 민간기업으로서 처음으로 참여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 40년간 몸담았던 홍재수(63)씨는 누리호의 비행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년 전 퇴직한 뒤에도 여전히 우주에 대한 마음이 남아 고흥을 찾았다.
홍씨는 “누리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성공 여부를 떠나 참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라며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 하기까지의 과정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고흥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비행운이 대한민국 우주 역사에 선명한 한 획을 그어냈다.
27일 새벽 1시 17분 고흥군 영남면 고흥우주발사 전망대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명의 시민들은 먼 바다 너머 누리호가 새빨간 불꽃과 함께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연신 환호했다.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누리호가 4분 30초 만에 2단 분리, 12초 21초 만에 3단 분리까지 마치고 최종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펄쩍 뛰며 “됐다! 이제 됐다!” 환호를 내지르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누리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던 한 시민은 “밤 하늘의 까만 별이 됐네”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우주과학자가 꿈이라는 김 군은 “가족들과 함께 본 누리호를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이다음에 커서 우주 과학에 참여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주에서 고흥을 찾은 국립경상대학생 정나승(여·20), 남은진(여·20)씨는 “우주 발사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인데, 비행기와는 차원이 다른 웅장함에 압도됐다”며 “대한민국 우주산업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꿈을 확고히 했던 하루”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주의 별이 된 누리호에 담긴 땀방울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며 1978년 대한민국 최초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 개발에 참여했던 조상현(70)씨는 돌아서는 걸음마다 누리호가 스쳤던 하늘을 돌아봤다.
이날 서울 도봉구에서 목포를 거쳐 홍도에서 배를 타고 고흥을 찾은 조씨는 “감개무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조씨는 “1971년 연구소 창설 이후 소총, 박격포를 만들다가 미군 미사일을 모방 개발해 하나씩 도전해나갔던 순간들이 눈에 선하다”며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장족의 발전을 해낸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대단함을 새삼 느꼈고, 그 역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고 미소 지었다.
이번 4차 발사에 민간기업으로서 처음으로 참여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에 40년간 몸담았던 홍재수(63)씨는 누리호의 비행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년 전 퇴직한 뒤에도 여전히 우주에 대한 마음이 남아 고흥을 찾았다.
홍씨는 “누리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성공 여부를 떠나 참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라며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 하기까지의 과정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고흥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