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예약 급감·적자 허덕…“우린 망해가고 있다”
2025년 11월 27일(목) 21:00
무안국제공항 폐쇄 1년...무너진 지역 관광 생태계
<1>막다른 길 내몰린 여행업계
전세기 업체 7곳 1152억 피해
대출로 부족, 집 담보 추가대출도
투잡·쓰리잡 뛰며 생계 이어가
“공항 언제 열릴 지 몰라 절망적”
버티던 여행사 대표 숨지기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호남권 유일의 국제공항인 무안국제공항이 11개월 째 운항을 중단했다. 승객들 발길이 끊긴 무안공항 대합실. /무안=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면서 무안국제공항은 폐쇄됐다. 무안공항을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온 지역 관광 종사자들은 이후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 직업이 여행업이고, 관광업인데 할 게 없어 언제 하늘 길이 다시 열리냐고 물어보는 데 답을 들을 수 없다. 전남도, 한국공항공사, 정부 누구도 모른 체 외면한다.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가족들과 직원들 생활을 어떻게 유지할지 방법을 고민하다 생을 마감하는 여행업계 종사자도 생겨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은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한데다, 이마저도 체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무안공항이 인천국제공항이나 부산 김해공항이라도 이렇게 방치했을 테냐”고 묻는 이유다.

무안공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생활하는 지역 관광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책 마련을 고민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무안공항을 중심으로 랜드사를 운영하던 한명숙 뉴랜드뱅크 대표는 지금은 사무실 운영도 버거워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잘 나가는 여행사 대표였다고 한다.

한 대표는 “1년이면 1만 명 이상을 받았다. 직원 급여, 사무실 운영비 등 3억 정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숨넘어가기 직전”이라고 했다. 대출 받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시기면 해외 골프팀도 20팀 이상이 동남아로 갔는데 지금은 3분의 1로 줄었다. 빚내서 살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세기를 임대해 여행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무안을 기반으로 베트남·중국·동남아 노선을 운영했지만, 공항이 폐쇄된 이후 송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청주·대구·부산으로 우회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장거리 이동 부담 때문에 여행객 모집도 쉽지 않다.

한 대표는 1년 전 닥친 상황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참사 이후 전세기 예약건이 전부 취소됐다. 전세기 보증금 5억을 못 받았는데, 손님들에게 환불을 해줄 돈을 마련하느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안에서 출발하는 베트남·중국 노선 여행상품을 만들기 위해 180석 안팎의 전세기를 한 편당 왕복 약 1억 원에 빌려오지만,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그 금액이 그대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한 대표만 그런 게 아니다. 광주 지역 전세기 업체 7곳(다크호스투어·ATM·드림랜드·제이앤투어·랜드포유·광주에어·뉴랜드뱅크)이 다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이 때 이후 취소된 좌석 수만 8만8668석. 피해 금액만 1152억6775만원으로 집계됐다. 모두 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춘권(68) 대표는 1년이 되도록 무안공항 개항 일정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제 사업을 접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1년이 다 됐는데 아직까지 항공료 3회분 정도 4억원 예약금을 못 받았고 여행사에 환불한 돈만 8억이 넘는다”면서 “코로나 당시 받은 대출, 참사 이후 저금리로 받은 대출로도 부족해 집담보로 1억원을 추가로 받았고 국민연금, 예금, 대출받은 돈으로 겨우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역 여행업계의 피해는 심각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전남지역 등록 여행업체 639곳 중 147곳(23%)이 사고 직후 한 달 간 예약된 상품 924건을 취소해야 했다. 이 때 출국 예정 인원은 1만1338명, 피해액은 17억 원 이상이다.

광주도 141개 여행사가 피해를 접수했었다. 취소 인원은 2만973명에 달했다. 광주전남관광협회가 추산한 피해액은 약 282억원에 이르렀다.

이정상(67) 유니버스 여행사 대표는 “무안공항 개항 얘기는 나오지 않고 경기도 좋지 않다보니 김해, 청주, 대구, 인천으로 가는 불편한 여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지난달에 출장을 한 번도 나가지 못했고 참사 이후로 매출이 80~90% 줄었다”고 했다.

돈을 벌 데가 없으니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수 밖에 없다.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택배기사, 요양보호사, 세차장 아르바이트, 가이드 일을 병행하는 ‘투잡, 쓰리잡’에 내몰리고 있다. 여행업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폐업 대신 등록만 유지하는 ‘유령 여행사’가 늘면서 무안공항 폐쇄 이후 지역 여행사 숫자가 늘어나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광주에서 20년째 여행업을 하고 있는 50대 A씨는 “친구 일을 도와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겨울이 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고, 다른 여행사 알바로 가이드를 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30년째 여행사를 운영하는 최금환씨는 무안공항 폐쇄로 여행업계 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씨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를 테마로 한 광주 방문 투어를 계획하더라도 무안공항 폐쇄 이후 인천공항을 통해 우회 입국하면 여행 경비가 30%이상 증가한다”고 했다. 불필요한 비용·시간 늘고 이동경로도 불편해지다보니 상품 경쟁력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포에서 26년째 여행업에 종사하는 조영인(52)씨는 “광주·전남 여행사 중 80%가 무안공항 기반으로 수익을 내왔고 나머지 20%만이 인천·대구·김해·청주 등 타 지역 공항이나 국내 여행으로 운영돼 왔는데 1년이 다 되도록 공항이 닫히면서 수익이 완전히 끊겼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22년째 여행사를 운영 중인 김홍철(54)씨는 “무안공항 폐쇄 전에 있던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서 사무실을 운영하다 유지비를 아끼려 사무실도 옮겼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30년째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재국씨도 직원 2명을 내보내고 일하다 참사 이후로 홀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4개월이 지나면 개항할까, 6개월이 지나면 하늘길이 열릴까 계속 버텨왔는데 이제 정말 포기하고 싶다”고 한탄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고 마냥 기다려야 할지, 오랜 기간 종사했던 여행업을 포기해야할지 광주·전남지역 여행업계의 고민이다.

“무안공항이 인천이나 부산 같은 대형 국제공항이라면 이렇게 폐쇄해놓고 방치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지역 여행업계가 정부를 향해 묻고 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무안=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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