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기업 ‘혁신제품’·‘벤처나라’ 적극 활용하길”
2024년 07월 28일(일) 23:40
광주일보가 만난 경제人 김종열 광주지방조달청장
지난해 광주청 계약금액 4조원 넘서서…90% 이상 중소기업 수주
국가 조달 시스템 국가 예산 절감하고 중소·지방·여성기업 각종 혜택
기업가, 특히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과의 거래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나라장터(www.g2b.go.kr)’를 모를 수 없다. 나라장터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으로, 군수품을 제외한 물자 구매·공급 및 관리와 정부의 주요시설 공사계약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다가도 한 번 적응이 된 이용자들은 신속하고 투명한 거래에 상당히 만족한다고 한다. 여성기업, 혁신·우수기업 등에 대한 혜택도 있어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면서 누구나 공공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난 2002년 구축돼 올해로 22년째를 맞는 나라장터는 입찰·계약·지불이 모두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수시 구매가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종합쇼핑몰도 갖추고 있다. 종합쇼핑몰에는 1만 2800개 기업에서 88만여 개가 넘는 상품이 등록되어 있다. 특히 공공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조달청에 등록한 57만여 조달기업 가운데 96.7%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은, 이 같은 국가 시스템이 판로 개척과 공공기관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달청에 따르면 지난해 나라장터를 통한 공공조달 거래 규모는 143.2조원으로 국가예산(639조원)의 22.4%에 달한다. 역사적으로 조달청은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열악했던 해방 직후 미국 등 외국 원조 물자 관리를 위해 1949년 1월 신설된 임시외자총국을 그 모태로 하고 있다. 몇 차례의 명칭 변경, 기능 통합 등을 거쳐 1961년 10월 정부조직법 전면 개정과 함께 조달청이 되었다. 조달(調達)은 일반적으로 자금이나 물자를 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 가족, 단체, 조직, 기업 등 모두의 일상에서도 조달의 중요함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보면 조달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기능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광주·전남을 총괄하고 있는 김종열(58) 광주지방조달청장을 만나 국가 조달 시스템의 현재와 미래, 지역 기업들을 위한 조언, 지역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들었다. 그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1997년 7급 공무원으로 조달청에 들어와 27년만인 지난 2024년 2월 청장에 부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광주조달청은 어떤 기관인가.

▲직접 일반 국민을 상대하는 기관이 아니어서 조달 기업이 아니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매일 우리가 일상에서 대하는 보도블럭, 신호등, 가로등, 공원의 체육시설, 파출소 건물 등 공공시설 대부분은 조달청 계약담당자의 손을 거쳐 설치된 것이다. 조달청은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등 7만여 수요기관과 58만 조달 기업의 접점에 자리하며 물자 및 서비스, 시설공사 등의 계약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 비축사업, 국유재산 관리, 전자입찰시스템인 나라장터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광주지방조달청은 조달청의 11개 지방청 가운데 하나로 광주·전남의 공공기관을 위해 다양한 계약업무를 수행하면서 조달청의 정책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청 계약 금액이 4조원을 넘어섰다고 들었다.

▲그렇다. 지역기업들이 본청과 직접 계약한 건을 제외하고 광주청을 거쳐 계약한 것이 4조원을 넘어섰다. 열악한 경제 여건에서 대단한 선전이다. 이 가운데 90% 이상을 지역 중소기업이 수주했다. 2014년 혁신도시가 조성되어 공공기관들이 입주하면서 공공조달 물량이 늘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2차 공기업 이전 등으로 더 다양한 공공기관들이 생긴다면 물량은 더 증가하고 그만큼 지역기업들도 혜택을 볼 것이다.

-이러한 국가 조달시스템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인가.

▲각국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과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공공조달 정부기관이 있고, 일본의 경우는 없다. 독일은 정부 부처별로 조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랑이지만, 조달청의 존재가 압축 경제 성장 속에 부정부패를 대폭 줄이면서 공공기관의 물품·서비스 조달 및 공사계약 과정에서의 공정성·투명성을 높여줬다고 자부한다.

-조달청을 더 자랑할 시간을 드리겠다.

▲그동안 국가 조달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역할을 담당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대량 구매 및 철저한 가격 조사를 통해 정부 예산을 절감하고, 대형 국책공사의 경우 사전설계 검토로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하게 했다는 점이다. 또 경기 조절, 고용 증대 등을 통해 정부 정책을 지원함과 동시에 중소기업·지방기업·여성기업 등에게 상당한 혜택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혁신제품 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공성과 혁신성을 보유한 혁신제품에 대해서는 조달청의 예산으로 시범구매하는 등 첫 번째 구매자로서 판로도 지원한다.

-조달청의 변화를 짧게 설명한다면.

▲조달청의 변화는 지난 2002년 전자입찰시스템인 나라장터를 개통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조달 행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고, 이 성과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나라장터의 수출로까지 이어졌다. (여담이지만)과거 나라장터 수출 실무자로 일하면서 코스타리카 당국자와 긴 협상 끝에 수출에 성공했던 기쁨은 다시 생각해도 대단했다. 최근에는 단순히 입찰 경쟁이라는 단순 경제성 원칙에서 벗어나 ‘전략적 구매’에도 힘을 쓰고 있다. 공공기관이 최초 구매자(First Buyer)가 되는 혁신제품 시범구매 사업(혁신조달제도)이 그것이다. 혁신제품으로 지정되면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이 가능해진다.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우수한 기술제품을 개발하고도 초기 어려운 시기를 못 버티고 폐업하는 것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

-광주·전남의 제조업은 타 지역과 비교해 매우 열악하다.

▲4개월 간 현장을 찾아 지역기업들을 살펴봤다. 상당한 편차가 느껴졌다. 어떤 기업들은 자동화도 잘 되어 있고 매출도 안정적이지만, 설비 하나에만 의존하는 영세기업들도 상당했다. 업종별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중소기업에 일관된 표준화를 요구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영세한 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규모화할 필요성은 있는 것 같다. 중소기업에게 있어 조달시장은 기술력만 있다면 민간 시장보다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또 기업의 체급에 맞게 진입할 수 있는 다양한 시장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벤처 및 창업기업은 ‘벤처나라’에 상품을 등록해 판매실적을 쌓은 후 ‘종합쇼핑몰’에도 등록이 가능하다. 시제품을 개발하면 혁신제품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 특허 및 신기술 등을 적용한 제품은 우수제품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조달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은 해외조달시장 진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제도를 지역 기업들이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테크노파크 등 지역기관들과 협력해 혁신적으로 기술력이 탁월한 지역기업을 발굴해 혁신제품이나 우수제품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나가보는데, 지역 중소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두거나 대학과 연계해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여건이다.

▲물론 그렇다. 기업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 조달청의 우수제품과 혁신제품 가운데 광주·전남 제품은 각각 6%, 4%에 불과하다. 기반 시설,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바로 창업하고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창업 의지가 있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유인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또 민간 투자자와의 연계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너무 일 이야기만 했다. 독특한 이력을 가졌는데.

▲대학 전공이 체육교육학이었다. 운동을 잘했고, 축구로 시험 봐 대학에 들어갔다. 30세가 넘어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들어왔는데, 공부를 좀 하고 싶어 2년간 정부 지원을 받아 해외유학을 갔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읽은 책은.

▲1% 부의 비밀(Wealth Secrets by Sam Wilkin)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책을 읽다가 연관된 부분이 있어 궁금해 보게 됐다. 상위 1% 부자, 즉 슈퍼리치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가 아닌 유일한 자(Only one)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독점 체제가 세계 최고의 재벌을 만든다는 의미인데, 지역 기업들도 베스트 중에 하나로 안주하기 보다는 시장에서 유일한 생산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했으면 한다.

-조달청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상당하다.

▲그동안 기업의 조달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많이 노력을 해왔으나 어려워 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 구매담당자의 이용 빈도가 높은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은 80만여 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창업초기기업이나 벤처기업의 상품을 판매하는 벤처나라와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조달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G-PASS제도, 혁신제품, 우수조달물품 제도 등도 지역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는 초보 중소기업들의 조달시장 진입을 도와주는 ‘공공조달 길잡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매우 관계가 높은 자재구매과장이 길잡이가 되어 조달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을 상담하여 벤처나라, 종합쇼핑몰, 우수제품, 혁신제품 등 조달시장의 각종 제도를 개별 기업에 맞추어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모두 54개 지역기업이 광주조달청을 찾아 상담받았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종합쇼핑몰 입점에 성공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지역 내 산업단지 등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 상담에 나서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

-지역 기업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역 중소기업들이 연간 209조원에 달하는 공공조달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조달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문턱도 낮아지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술력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혁신제품, 우수제품 등에 꾸준히 도전하면 분명 생각 이상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고향인 호남이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좀 오래 타지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호남에 왔다. 지방엔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지키게 하고 싶다. 좋은 아이디어가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실패하거나 성공하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기업이 더 생겼으면 한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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