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서 발견하는 민주공화국의 오래된 미래 - 헌법의 순간
2024년 07월 26일(금) 00:00
박혁 지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헌헌법 제1조)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제헌헌법 제 51조)

해방 후 정부 수립을 위한 첫 걸음인 ‘제헌 헌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48년 5·10 총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헌의원 198명의 첫 과제는 헌법 제정이었다. 두달 여가 지난 7월 17일, 헌법 전문과 103개 조항으로 구성된 ‘제헌 헌법’이 공포된다.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는 박혁 정치학 박사는 우연하게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며 ‘헌법의 순간’과 마주쳤다. “간절함과 의지가 빚은 광경이 제 심장을 상대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언변과 논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말 그대로 ‘정치의 향연’입니다. 그 향연이 가슴을 뛰게 하고, 가슴속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76년 전 작성된 ‘제헌의회 회의록’을 보며 제헌의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생각을 만나던 때의 감정을 밝힌다. 제헌의원들은 다른 나라 헌법을 짜깁기나 졸속으로 만든 게 아니라 놀랍게도 6월 23일(헌법초안 보고)부터 7월 12일(헌법안 통과)까지 20일 동안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제헌의원들은 국호와 정부형태, 영토, 인권, 교육 , 양성평등 등 조문마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성과 가치를 담고자 애썼다. ‘적어도’라는 단어에는 초등교육 6년 무상의무에서 중등교육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의원들의 미래지향적 ‘헌법 정신’이 담겨있다.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제헌의회 의사당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저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와 국민-인민 단어, 의무교육, 내각책임제-대통령제, 친일파 청산, 신체의 자유·고문받지 않을 권리 등 14개의 쟁점으로 나눠 ‘대한민국을 설계한 20일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한민국의 국호를 씀으로써 거룩한 3·1운동의 의미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대한임정의 법통을 계승하여 반만년 찬란한 역사를 접속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우리 국호를 대한이라고, 생명을 놓고 절대 주장합니다.”(조국현 제헌의원)

제헌의원들은 헌법 제1조에 담을 ‘국호’를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저자는 ‘제헌의회 회의록’에 실린 여러 의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거수표결 결과 재석의원 188명중 찬성 163명, 반대 2명으로 국호 대한을 담은 ‘헌법 제1조’가 통과된다.

저자는 ‘국민’과 ‘인민’, ‘3·1혁명’과 ‘3·1운동’ 등 용어를 뭘로 써야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의원들간 논쟁을 살펴본다. 남북분단과 좌우대립 속에서 의원들은 기본권 주체로서 ‘말뺏기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다. 또한 당시 정부형태를 정하는 내각책임제-대통령제 논쟁은 단 한사람만을 위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쟁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헌법기초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했지만 헌법초안이 뒤바뀌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제로 확정되는 내막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76년 전 제헌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유진오 헌법기초위 전문위원이 밝힌 대통령제의 폐해는 놀랍게도 요즘 상황과 닮았다. ‘제헌 헌법’ 제정 과정을 되새김질 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개헌(改憲)은 대중들의 첨예한 관심사다. 저자는 ‘다시, 헌법의 순간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헌법의 순간이라는 꽃봉오리를 기리고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기리고 기억해야 과거의 순간이 미래의 빛과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페이퍼로드·1만9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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