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그는 왜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는가 - 오성인 산문집 ‘세상에 없는 사람’
2024년 07월 24일(수) 22:00 가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없을 수가 없다. 세상에 없다는 것은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미 태어났다면, 죽어야만 없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태어나지 않은 자에 대한 이야기인가? 혹은 이미 죽어 없어진 이에 대한 기억인가? 시인 오성인의 산문집 ‘세상에 없는 사람’은 제목과는 다르게 분명 현재 살아 숨 쉬는 사람을 그린 이야기다. 동시에 그가 어느 순간부터 더는 산 자가 아니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스스로를 유폐시켰는지, 왜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기원을 찾는 이야기다. 하여 세상에 있는 사람인 우리가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되었다.
책의 부제가 다소 힌트를 준다. ‘80년 오월을 거쳐 간 어느 시민의 이야기.’ 1980년 5월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산 자더러 간 데 없는 동지를 따르라 외치던 날들이 있었고 그날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와 기본적 인권이 지켜질 수 있었다. 온갖 왜곡과 폄훼가 판을 치는 현실이지만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을 지탱하는 것은 그 시절을 거쳐 간 시민일 것이다.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암석이 아닌 모래알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과 기억이 차곡차곡 모여 거대한 바위에 조각칼로 새긴 암각화가 된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 암각화를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
‘세상에 없는 사람’은 오성인 시인 일가의 가족사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한국전쟁 당시 시인의 조부는 일련의 사정에 병역을 기피한 범법자가 되고, 그 일은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시인의 가족을 옭아맨다.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아버지는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운명에 순응하듯 살아야 했다. 학교에서 넌지시 추천한 의대는 집안 사정에 원서를 쓰지 않기로 했고, 내면의 꿈이었던 그림은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또한 그는 군대마저 연좌제의 벽에 가로막힌다. 의무 경찰이 되려 하였지만 되레 세상은 아버지의 과거를 들먹이며 너희 아버지는 빨갱이며 하여 너 또한 빨갱이다, 그를 겁박할 뿐이었다.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한 인간의 풍파를 찬찬히 관찰하다 좋은 다큐가 그렇듯 정서적 충격을 한순간에 부려놓는다. 시인의 아버지가 왜 스스로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는지, 실재이기에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우리는 가만히 앉아 읽어야 한다. 그가 민주화운동의 유공자는 아닐 테다. 또한 그는 80년 5월을 통과해 유력 정치인이 되었거나 지역의 유지가 되지도 않은 듯하다. 물론 그는 80년 5월로써 망월동에 묻힌 희생자도 아니며, 80년 5월 이후 태어나 글과 사진으로 그날을 접한 세대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날을 거쳐 간, 거치지 않고는 어디도 갈 수 없었던 시민에 불과했다. 그 ‘거쳐 갔음’이 그를 평생 괴롭혔을 것이다. 그 ‘거쳐 갔음’을 기록한 시인이 있어 그의 괴로움은 잠시라도 치유되었을까?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도 같으니.
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세상에 없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정겨운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동네 이름은 세대를 막론하고 내가 직접 가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다시 조각하게 한다. 내게는 전남대학교 교정 곳곳이 그랬다. 경영대와 인문대 사이 오르막길 옆 야트막한 언덕을 ‘레닌의 언덕’이라 불렀던 선배들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어 반갑다. 1970년대 일이니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시기에서도 30년 차이가 난다. 지금으로부터는 50년 전이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라 해봐야 고작 4년 혹은 6년인데 그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억은 그곳으로 내 청춘을 자꾸 소환한다. 그렇다면 1980년 학교 앞 정문에서, 도청 앞 분수대에서, 광주 곳곳에서의 시간을 보낸 청춘들은 어떠하겠는가. 작금의 허튼수작들 앞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시인>
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세상에 없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정겨운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동네 이름은 세대를 막론하고 내가 직접 가보았던 그곳의 기억을 다시 조각하게 한다. 내게는 전남대학교 교정 곳곳이 그랬다. 경영대와 인문대 사이 오르막길 옆 야트막한 언덕을 ‘레닌의 언덕’이라 불렀던 선배들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어 반갑다. 1970년대 일이니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시기에서도 30년 차이가 난다. 지금으로부터는 50년 전이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라 해봐야 고작 4년 혹은 6년인데 그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억은 그곳으로 내 청춘을 자꾸 소환한다. 그렇다면 1980년 학교 앞 정문에서, 도청 앞 분수대에서, 광주 곳곳에서의 시간을 보낸 청춘들은 어떠하겠는가. 작금의 허튼수작들 앞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