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물난리 난생 처음”…순식간에 물 차올라 긴급대피
2024년 07월 16일(화) 21:05
르포-집중 호우 피해 해남 가보니
시간당 78.1㎜ 새벽 기록적 폭우
앞으론 빗물, 뒤로는 바닷물 콸콸
주택·농경지 침수에 망연자실
장마 전 하수도 정비에도 속수무책
주민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

16일 전남 서남부에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의 저지대 가옥들이 침수됐다. 이날 오후 이웃주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침수 가옥에서 빗물을 빼내는 등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장 오늘 밤은 마을회관에서 보내야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네요.”

16일 오후 1시께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거주하는 김정심(여·88)씨는 새벽에 물이 차오른 집안을 둘러보고 집앞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했다.

김씨는 광주일보 취재진을 만나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밤의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새벽 2시께 김씨가 누워 자고 있던 방에 갑자기 물이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무릎높이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단잠에 빠져 있던 김씨는 “아들이 ‘엄마 일어나. 빨리 나가야해’고 깨우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들에게 업혀 근처 경로당으로 피신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집 내부는 급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마당구석에 있던 장독대는 자리를 잃고 쓰러져 된장, 고추장이 쏟아져 있었다.

집 안은 온통 흙탕물 투성이여서 걸레로 아무리 닦아내도 장판은 밟을 때마다 물이 올라왔다.

냉장고와 선풍기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장롱 속까지 빗물이 들어가 옷가지 뿐아니라 침구까지 모두 흙탕물 범벅이 돼 쓸 수 없게 됐다.

전기장판과 연결된 콘센트가 물에 젖어 감전 위험이 있었지만 김씨 아들은 쓰레받이로 아직 빠지지 않은 안방의 물을 계속 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66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면서 “살림살이가 다 젖어버려 어떡하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의 가족들은 해남군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침수된 집안을 계속 치웠지만 눈시울이 붉어지기만 했다.

당장 내일부터 어디서 자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점에서다. 김씨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머리가 어지럽고 몸까지 아프다”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인근에서 30년 넘게 철물점을 운영한 노점심(여·75)씨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노씨는 빗물에 잠긴 물건들을 골라내고 빗물과 토사를 닦으며 울상을 지었다.

노씨는 “새벽 내내 비와 천둥번개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 “면사무소 직원들이랑 소방대원들이 와서 대피하라고 했는데 내 삶터를 놔두고 어딜 가나 싶어 떠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철물점과 이어진 노씨의 집에는 젖은 바닥을 닦던 신문지와 걸레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그는 “앞쪽으로는 빗물이 들어차고 뒷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더라”며 “아무리 물을 퍼내도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해남 화산면 화산초등학교 강당 뒷편 담벼락이 무너져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해남=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부터 16일 오후 3시까지 해남 북일에 132㎜, 해남 땅끝에 129㎜의 비가 내렸다. 특히 이날 새벽 3시께 시간당 78.1㎜ 의 비가 집중됐다. 시간당 63.4㎜ 의 비가 내린 2021년 7월 6일 기록을 넘어서면서 역대 7월 중 해남에 내린 시간당 강수량 극값을 경신했다.

일부 주민들은 “장마 시작 전 지자체에서 하수도를 정비했지만 정작 비가 오니 속수무책이었다”며 “점점 더 비가 많이 온다는데 침수 피해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해남군 관계자는 “짧은 시간 많은 비가 집중되면서 배수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해 바닷가 인근 저지대를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 같다”며 “재해취약지역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단계별 비상근무 등을 통해 장마로 인한 피해 발생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해남=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박희석 기자 di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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