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피자와 치킨
2024년 07월 10일(수) 22:00
옛날에 고흥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술집에서 현지 젊은이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 동네 정보도 듣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사’(정확히 하면 이탈리아식 요리사라고 해야 하는데, 그냥 다들 이렇게 쓴다. 일식과 한식은 또 바르게 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라고 하자 그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고흥에 와서 정통 피자집을 좀 해주세요. 피자가 먹고 싶은데 배달집도 거의 없고, 면으로 가면 그나마 배달도 안 됩니다.”

한국이 배달 왕국이 된 요즘, 피자 배달이 면 단위에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흥은 아이들도, 젊은이도 별로 없는데 피자 수요가 많아요?”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무슨 말씀을요. 여기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건 맞아요. 헌데, 노인들도 피자를 좋아해요. 없어서 못 드시는 것이지.”

그랬다. 노인들은 그저 물에 만 밥에 김치나 좋아하고 국밥 드시고 하니 외국식은 좋아하지 않는 걸로 우리는 미리 짐작하지 않는가. ‘그들도’ 별식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고 먹을 수 있으면 티본스테이크도 해산물 오일 스파게티도 좋아할 사람이 많다는 얘기였다.

지방 소외 문제는 교육과 문화, 의료의 심한 비대칭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의외로 음식도 포함된다. 흔히 ‘롯세권과 맥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지방의 소멸 위기를 말할 때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이 있으면 문제 없고, 롯데리아가 있다면 ‘당분간은’ 문제 없으며 둘 다 없으면 향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소멸단계로 들어간다는 씁쓸한 농담이다. 좀 결이 다르지만, 서울을 포함하여 전국 모두 ‘스세권’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스타벅스라는 커피브랜드가 들어와 있는가 하는 점이 부동산 가치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스타벅스가 입점된 건물은 값이 오르고 (또는 이미 충분히 비싼 건물이며) 스타벅스가 들어갈 만한 동네는 곧 부동산 가격이 비싼 곳이라는 설명이다. 롯세권이니 스세권이니 하는 말의 천박함이 혀를 차게 되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구한말에 전기 놓고 기차와 전차도 들이고 할 즈음에 일본에 강제 병탄되는 바람에 스스로 근대를 확실하게 열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강점기에 우리는 근대적 상업자본과 마주치게 된다. 지금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된 미츠코시백화점, 구 미도파백화점이자 현 롯데백화점의 일부인 조지야백화점, 현재는 건물도 헐리고 사라진 미나카이백화점 등이 있었다. 당시 백화점은 포목상에서 출발, 점차 현대의 백화점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지하나 꼭대기층에 식당을 들이는 방식도 이때 시작했다. 이 전통은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수많은 백화점들이 건물 꼭대기에 가장 유행하는 식당을 운영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들이고 있다. 어쨌든 일제강점기에 경성의 조선인 부자들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백화점에 가서 엘리베이터도 타 보고 식당가에서 최신 유럽 음식 내지는 일본화한 양식을 먹어보게 된다. 돈가스, 비후가스, 스테-키 같은 음식이 그렇게 조선에 전해졌고, 나중에 한국만의 경양식(輕洋食)이라는 장르로 바뀌어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피자와 스파게티, 치킨은 대체로 백화점에 잘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치킨은 60년대 이후, 피자와 스파게티는 미국을 통해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백화점에서 70년대나 되어서야 파는 품목이 되었다.

피자는 치킨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배달 서양음식의 원조였다. 70, 80년대는 피자가 대세를 주도했다. 미국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대도시의 노른자위 땅에 가게를 열었고 줄을 서서 먹었다. 점차 한국에서 만든 ‘마이너’ 배달 전문 브랜드가 생겨나고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엄청난 시장 확대를 이뤘다. 배달 치킨집이 90년대 후반 고통스러운 국제통화기금 사태(IMF)의 유산이라면, 배달 피자집은 오히려 한국의 경제성장의 한 풍경이었던 점이 특이하다. 이제 피자는 인기 순위에 밀려서 큰 이익이 없으니 브랜드도 많이 위축됐다. 치킨은 물론이고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배달되는 지금, 피자 배달의 기억은 한국인의 음식사(史)의 중요한 대목을 차지했었다는 얘기를 남겨둔다.

원고를 쓰면서 고흥의 피자집을 검색해보니 인터넷 빅데이터가 열 곳을 추천한다. 거대한 치킨브랜드 사이에서 분전하는 고흥 피자집 사장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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