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소서엔 국수·수제비 즐겼는데
2024년 07월 07일(일) 20:35 가가
수입 밀에 밀린 ‘우리 밀’…식량 안보 위기 슬기롭게 대처해야
6일이 절기상 소서(小暑)였다. 소서는 음력으로 6월 하지(夏至)와 대서(大暑) 사이에 있다. 소서라는 말은 ‘작은 더위’라는 뜻이다. 역사서 ‘고려사’에 따르면 소서는 6월의 절기로 이 무렵의 보름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에는 귀뚜라미가 벽에서 살며, 말후에는 매가 새를 잡기 시작한다고 했다.
소서는 더위보다는 장마와 관련이 깊다. 소서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장마전선이 머물기 때문이다. 이 기간 비가 많이 내려 하천이 넘치고 논이 침수돼 종종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물에 취약한 참깨 농사와 수박 농사에도 악영향을 준다.
날씨 영향도 있겠지만 소서 즈음의 농촌은 심었던 모가 열심히 자라는 중이라 밭매기 정도에만 신경 쓸 정도여서 농번기치고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서는 농사일을 잠시 쉬며 밀가루 음식을 먹는 절기로 알려졌다. 선조들은 음력 유월 보름을 전후로 밀을 수확했기 때문에, 이때 밀가루 음식인 국수와 수제비 등을 별미로 먹었다고 한다. 밀가루의 원료인 밀은 우리의 주식용 먹거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陰)의 기운을 가졌는데, 열을 내려주고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더위를 식혀준다. 더운 여름철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전해져 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식재료이다.
그런데 우리는 밀이라고 하면 수입 밀가루를 떠올리며 전통의 밀(우리 밀)과 확연한 차이를 두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전은 물론이고 국수와 수제비를 만드는 데 쓰는 밀가루는 당연히 수입 밀이라는 생각에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코카서스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지로 추정되는 밀은 기원전 2000년경 유럽과 인도, 몽골을 거쳐 중국을 지나 기원전 100년경 한반도에 들어왔다.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지에서 한반도 최초 밀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는 밀이 재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백제·신라 유적에서도 밀이 두루 발견되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밀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재배가 늘면서 서민들도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을 즐길 정도로 번창했던 우리 밀 농업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원조와 1960년대 값싼 수입 밀이 들어오면서 점차 자리를 잃게 됐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82년 밀수입 자유화와 1984년 정부 밀 수매 폐지였다. 국내 밀 생산량은 감소하는 데 반해 196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 라면과 빵 등 밀가루 음식 소비 증가로 인해 밀 자급률은 1990년 초반 0.05%까지 곤두박질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1991년 농민과 소비자 주도로 계약재배를 통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지만, 막대한 수매자금 때문에 아직 소비촉진과 홍보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올해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한 내년 밀 자급률 5% 달성이 ‘헛구호’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까스로 2%를 기록했던 자급률이 다시 1%대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의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반대로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의 소비는 늘고 있다. 어쨌든 쌀에 이어 밀이 제2의 주식인 셈인데, 문제는 다른 곡물의 자급률(우리나라 최근 3개년 평균 19.5%)과 비교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선조들이 소서에 별미로 먹었던 국수와 수제비를 언급하면서 우리 밀의 자급률을 걱정하는 것은 현실이 될 수 있는 식량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폭우와 가뭄 등 이상기후가 지구촌을 덮치고 밀과 옥수수 등 농작물 가격이 들썩일수록 대부분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휘청일 수밖에 없다. 우리 밀 농사에 좀 더 신경을 쓸 때다.
/bigkim@kwangju.co.kr
날씨 영향도 있겠지만 소서 즈음의 농촌은 심었던 모가 열심히 자라는 중이라 밭매기 정도에만 신경 쓸 정도여서 농번기치고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서는 농사일을 잠시 쉬며 밀가루 음식을 먹는 절기로 알려졌다. 선조들은 음력 유월 보름을 전후로 밀을 수확했기 때문에, 이때 밀가루 음식인 국수와 수제비 등을 별미로 먹었다고 한다. 밀가루의 원료인 밀은 우리의 주식용 먹거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陰)의 기운을 가졌는데, 열을 내려주고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더위를 식혀준다. 더운 여름철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전해져 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식재료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재배가 늘면서 서민들도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을 즐길 정도로 번창했던 우리 밀 농업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원조와 1960년대 값싼 수입 밀이 들어오면서 점차 자리를 잃게 됐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82년 밀수입 자유화와 1984년 정부 밀 수매 폐지였다. 국내 밀 생산량은 감소하는 데 반해 196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 라면과 빵 등 밀가루 음식 소비 증가로 인해 밀 자급률은 1990년 초반 0.05%까지 곤두박질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1991년 농민과 소비자 주도로 계약재배를 통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지만, 막대한 수매자금 때문에 아직 소비촉진과 홍보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올해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한 내년 밀 자급률 5% 달성이 ‘헛구호’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까스로 2%를 기록했던 자급률이 다시 1%대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의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반대로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의 소비는 늘고 있다. 어쨌든 쌀에 이어 밀이 제2의 주식인 셈인데, 문제는 다른 곡물의 자급률(우리나라 최근 3개년 평균 19.5%)과 비교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선조들이 소서에 별미로 먹었던 국수와 수제비를 언급하면서 우리 밀의 자급률을 걱정하는 것은 현실이 될 수 있는 식량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폭우와 가뭄 등 이상기후가 지구촌을 덮치고 밀과 옥수수 등 농작물 가격이 들썩일수록 대부분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휘청일 수밖에 없다. 우리 밀 농사에 좀 더 신경을 쓸 때다.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