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광주 - 김진구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장
2024년 07월 02일(화) 22:00
사무실 정문 게시대에 ‘광주는 독서 중, 다시 책으로’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시교육청에서는 독서교육 내실화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학부모독서회를 활성화시키고, 1교 1독서교육 프로그램 등 학교마다 특색있게 진행되고 있다. ‘한 책, 한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 책 읽기 운동은 미국 시카고를 변화시켰다. 영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 여러 지자체에도 확산된 북스타트 운동은 채 한 살도 되기 전부터 책을 장난감처럼 만지게 해서 평생 습관이 되도록 책꾸러미를 전달한다. 독서는 개인 취향을 넘어 사회문화 차원에서 인식하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출발점으로 생각하여 다양한 책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향 광주도 학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건 것이다. 출퇴근 때 이 플래카드를 보면 두 분이 떠오른다.

예전에 독서교육 업무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300여 명의 학부모독서회장단 연수를 준비하면서 두 분의 강사를 모시고 싶었다. 홍세화 작가와 최재천 교수였다.

홍세화 작가는 파리에서 택시를 몰며 떠돌던 이방인이었는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 문화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나는 당신의 의견을 싫어하지만, 당신을 싫어하지 않겠다”, 잔디밭 들어가지 말라는 경구 대신 “(잔디를)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남들이, 잔디가 당신을)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공원 잔디밭의 푯말 등을 관용의 예로 들었다. 당시 20여 년 만에 귀국하여 한강과 세느강을 넘나들며 바쁘게 활동하였다.

그는 지난해 한겨레 칼럼에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란 절필의 글을 썼다. 그리고 지난 4월 세상을 떠났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이명준이 남도 북도 거부하고 제3지대로 향했다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유신의 반체제 인사였고, 관용의 휴머니스트였지만 일부 진보층의 비난도 받았던 그는 경계인처럼 살다 갔다.

최재천 교수는 저녁 7시까지 서울 집에 도착한다는 조건이었다. 저녁 7시 이후의 가사와 아이 돌봄은 자신의 몫이었다. 서울대 회식문화를 점심시간으로 바꾼 장본인이다. 암컷 우위의 동물 세계를 소개하면서 ‘여성 시대에는 남성도 화장을 한다’ 등의 책을 펴내고, 수백 년 호주제를 폐지한 행동하는 학자였다. 남성에게는 가부장의 짐을 벗기고, 여성에게는 편견의 굴레를 깨뜨린 공적으로 남성 최초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독서광 최재천 교수는 인생 곡절마다 책과 만남이 있었다. 한 인간에게 한 편의 토막글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절절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자연과 놀이, 독서로 정리된 그의 일생을 보면 동물생태학자가 아니라 독서생태학자 같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 외에 처음 접한 책 ‘동아백과사전’은 너널너널 해지도록, 어머니가 월부로 사주신 ‘세계동화전집’은 수없이 읽고 또 읽고. 중학교 때는 역시 월부로 구입한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시작으로 소설에 파묻혀 성적은 바닥이었다. 이어 고교에서는 ‘노오벨상문학전집’으로 다른 나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석사학위 논문 심사 과정에서 교수들이 대단한 논문이라며 바로 박사학위를 준다고 했으나 안 받겠다고 끝까지 거부했고, 요즈음 모두가 걱정인 인구 문제도 “출산율이 회복 안 됐으면 좋겠다”고 주장한 통섭의 괴짜이다.

“아기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 눈에 늘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교육이었다. TV 끄고 엄마 아빠 책 읽으면 아들딸도 읽어요.” 특강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광주의 학교에 364-스터디룸이 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최적의 학습 공간이다. 여기에 ‘365-한 장 읽기’ 독서운동을 제안해 본다. 광주의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시민들이 머무는 공간에 책을 비치하여 책 읽는 광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이든 성인이든 습관만 들이면 책은 읽게 된다. 아니 말려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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