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죽음을 잇는 이야기 - 최진영 소설 ‘쓰게 될 것’
2024년 06월 26일(수) 21:30
죽음은 언제나 가장 먼 이야기다. 생의 끝에서야만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죽음은 가장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장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멀리 있든 가까이에 있든 죽음은 개인에게 가장 커다란 일이다. 죽음보다 거대한 사건은 있을 수 없다. 마지막 사건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 그에게 남은 사건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의 이야기와 사건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가령 수해 복구 현장에서 갑작스레 수색으로 임무가 바뀐 군인이 제대로 된 안전 장비 없이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년은 자기에게 죽음은 당연하게도 머나먼 이야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음은 그의 지척에 있었다. 죽음 이후 그에게는 이야기도 사건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는 이야기와 사건이 있다.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책임을 회피한 인간은 누구인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방해하고 겁박하는 자는 또 누구인지, 우리는 진실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구성하고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그것이 산 자가 죽음을 대하는 마땅한 자세이자 옳은 방식이다.

최진영 소설집 ‘쓰게 될 것’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등장한다. 산 자에게 이야기는 죽은 자로부터 시작된다. 표제작 ‘쓰게 될 것’에서 소녀는 할머니의 죽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죽음이 도처에 널렸음을 깨닫게 된다. 소녀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쓰게 될 것’의 배경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 같기는 한데, 그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우리는 가끔 하늘에 오물이 담긴 풍선이 출몰하긴 하지만 전쟁 중은 아니기에, 이 소설은 허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것이 현실이 아님에 지극한 다행을 느낄 정도로. 그곳에는 최소한 두 번 이상의 전쟁이 있었고, 전쟁이 아니라면 크고 작은 규모의 폭격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폭격이나 전쟁에 희생된 사람이 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으며,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아 무언가를 썼을 것이며, 그게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쓰게 될 것’은 바로 그 다짐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로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용기와 신념으로 사건을 받아들이는 자의 다짐.

‘유진’에서 주인공 ‘나’는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유진’ 언니의 부고를 뒤늦게 듣는다. 이후로 며칠을 유진 언니를 생각한다. 유진 언니를 생각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그녀와의 사건을 반추하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는 일과 다름 아니다. 스무 살 시절의 투박함, 어설픔, 비겁함, 애씀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본다. 자문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어른이라 할 수 있나? 어른은 무엇일까? 함부로 말하지 않고, 타인을 신경 쓰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어른……. 유진은 죽었지만 유진을 생각하는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조카와 대화를 하며 유진을 떠올린다. 그것은 곧 어른을 떠올린다는 말이다. 불완전하나 완전하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을 떠올린다는 말이다.

‘홈 스위트 홈’은 죽음의 예고를 받은 암 환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는 살고 싶다. 그래서 수술과 치료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시골에 집을 구하고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집을 뜯어고친다. 나는 죽음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미래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발산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고,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건만, 주인공은 죽음을 통과해버린 걸까?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 주인공은 그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 소설은 가까이 온 죽음에게 사랑을 이어 붙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다음 이야기는 무얼까? 최진영의 이야기는 발산할 것이다. 미래를 기록하면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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