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인사이드아웃2
2024년 06월 25일(화) 11:10
<14>지난 12일 개봉 픽사 스튜디오 신작
끝없는 불안은 자아를 성장시키는 자양분

슬픔이(왼쪽)와 기쁨이가 라일리의 기억 속 공간 ‘신념 저장소’에 들어서고 있다. 무의식의 강(신념의 샘)을 타고 흐르던 기억 구슬에서 신념 가닥이 자라나고, 통합적인 자아를 형성한다.

무의식의 강을 부유하던 ‘기억 구슬’에서 푸른 빛이 솟아난다. 주인공 ‘라일리’의 인격화된 감정들이 마주한 ‘신념 저장소’ 모습이다.

난맥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은 한데 모여 거대한 수형(樹形)을 이룬다. 우듬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높디높은 빛의 나무, 그러나 이 관목은 라일리의 행복한 기억만을 토양 삼아 성장한 것은 아니다. 불안과 슬픔 등 부정적 감정들도 빛을 쏘며 ‘자아’를 만들어 냈다.

내 신념의 아카이브에는 어떤 글귀가 씌어져 있을까. 어떤 형상의 나무가 자라나 인격을 지탱하고 있을지, 지난 12일 개봉작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28번째 장편 ‘인사이드 아웃2’ 속 한 장면이다.

‘인사이드 아웃2’는 개봉 12일째인 지난 23일 국내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9년 전 개봉했던 전작보다 7일이나 빠른 기록이며 전편 497만 관객도 무난히 넘어설 전망이다.

영화는 사춘기를 겪는 13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 상태와 주변인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살아가면서 ‘사춘기 여학생’의 머리 속을 시각화해 들여다볼 기회는 드물 것 같다.

기억과 무의식, 자아 형성과 신념 등에 관한 융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비주얼 요소를 접목, 쉽고 아름답게 풀어냈다는 점도 이목을 끈다. 주인공은 질풍노도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이지만, 성인의 관점에서도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감정본부’에 비상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정 조정석 한복판에서 발견한 낯선 경고등에는 큼지막하게 ‘PUBERTY’(사춘기)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영화는 전사와 같이 라일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 속 ‘감정 통제본부’와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감정들’의 충돌을 초점화한다. 어느 날 감정들은 ‘감정 조정석’ 한복판에서 낯선 경고등을 발견한다. 그 아래에는 ‘PUBERTY’(사춘기)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 당황한다.

그와 동시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 등 새로운 감정들이 본부에 들이 닥친다. 이들은 ‘기쁨이’, ‘슬픔이’ 등 감정 선배들을 쫓아내고 대격변을 만들어 간다.

이번 편 주역은 단연 ‘불안이(Anxiety)’다. 불안이는 등장부터 수많은 짐가방을 들고 나타나는데, 이는 저마다 사춘기가 되며 마주하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은유한 것이다. 크랭크 인 당시에는 ‘죄책감’, ‘질투’, ‘반항’, ‘의심’ 등 감정도 의인화될 예정이었으나 메인 스토리라인과 맞지 않아 삭제됐다는 후문이다.

작중 잠시 등장했다가 쫓겨나는 ‘추억 할머니’도 상징적인 캐릭터다. 추억에만 잠식당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청소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처럼 다가온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격인 라일리의 새로운 감정 ‘불안이’. 폭탄을 맞은 듯한 헤어스타일과 커다란 눈, 축 처진 눈썹 등은 외관부터 폭풍전야처럼 벌써 ‘불안’하다.
자연스레 인물화된 여러 감정들이 주인공에 영향을 미치는 드라마·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이성’, ‘감성’ 세포는 물론 ‘응큼’, ‘출출’, ‘뒷북’ 세포 등이 등장했던 데 비해, 불안, 기쁨 등 평면적 감정이 주가 되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이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 설정에는 입체적인 해석 여지가 깃들어 있다.

가령 기쁨과 슬픔을 인격화한 두 캐릭터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충돌하지만 이들은 모두 상징적인 파란(blue·우울) 머리에 파란 눈을 지녔다. 이는 희로의 감정이 한 끗 차이고 기쁨이 슬픔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기쁨과 슬픔은 상호 대립하는 요소를 갖고 양가 감정을 제약하는 엥겔스의 ‘상호 침투’적 성향을 보이는데, 복잡한 개념이 ‘색채’ 안에 숨어 있는 셈이다.

귀여운 모습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부럽이’. 원작에서는 ‘ENVY’로 번역되며 부러움, 선망, 질투 등 의미를 함의한다.
영화는 어느 정도 예상된 플롯 안에서 전개됐다. 개봉 당시부터 전작과 차별화가 약하고 ‘빙봉’ 같은 감초 역할의 캐릭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병존해 ‘한 방’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그러나 인간의 내밀한 감정에 천착하면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구체적 시각 요소로 풀어냈다는 데 작품의 가치가 있다. 픽사 특유의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는 재미도 크다.

작중 라일리는 관객들과 함께 성장한다. 감정들의 기싸움은 지난하지만, 이들은 종국에 모두 ‘인격적 성장’이라는 공통 목표에 합의한다.

‘인사이드 아웃2’는 아이스 하키, 미국학생의 스쿨라이프 등 한국 청소년들의 감수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을 다룬다. 그럼에도 내면의 폭풍을 마주하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엘리멘탈’, ‘소울’, ‘업’, ‘몬스터주식회사’ 등 픽사류 전작들처럼 사회 통념을 부수고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도 돋보인다. 소시민적 주인공인 라일리가 사회에 현존하는 클리셰들을 부수며 겪는 성장통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한 작품이 흥행가도를 달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2’는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불안, 공포 등 모든 감정의 소요가 불완전한 나를 성숙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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