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시인 시집 ‘물거미의 노래’ 독일어 번역 현지 출간
2024년 06월 24일(월) 20:50 가가
“과거 잊지 않되 미래 만들어가는 시 쓰고 싶어”
한국문학번역원 지원…6권 시집서 대표작 60편 수록
독일 보쿰대 양한주 교수·시인 위르겐 반세루스 참여
한국문학번역원 지원…6권 시집서 대표작 60편 수록
독일 보쿰대 양한주 교수·시인 위르겐 반세루스 참여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의 역사를 간직한 독일에서 제 시집이 발간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평화와 생명 사상 등을 함께 공유하고 더욱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오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김준태 시인. 당시 전남고 교사였던 그는 이 시로 광주 5월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최근 김준태 시인의 6개 작품집에서 대표작들을 골라 묶은 시선집 ‘물거미의 노래’가 독일 현지에서 독일어와 한국어로 발간돼 ‘화제’다. 작품집에는 모두 60편이 수록됐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시인은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큰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 덕분에 어디서도 금방 눈에 띈다. 금남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시인을 만날 수 있을 만큼, 그는 금남로를 자주 출입한다. ‘금남로 시인’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은 거의 매일 전일빌딩245로 출근해 전자도서실에서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시인은 “하마터면 박 기자를 볼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며 “두세 달 전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며 웃었다.
평소 매일 자전거를 타며 건강관리를 한다는 시인도 물리적인 나이 앞에서는 조금씩 쇠약해지는 듯했다. 악수가 끝나기 무섭게 시인은 독일어로 된 양장본 시집을 건넸다. 이국풍의 디자인과 두툼한 부피는 여느 시집과는 다른 아우라를 발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전액 번역출판 지원사업으로 출간됐다”며 “작품집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 외에도 통일, 생명사상 등을 모티브로 쓴 시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는 독일 보쿰대에 재직 중인 양한주 교수와 시인 위르겐 반세루스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출판은 독일 현지 ‘IUDICIUM ㅁㅞㄴ헨’이 맡았다.
번역을 한 양한주 교수는 지난 80년대부터 독일에서 거주했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어와 사회학을 공부했다. 보쿰대 한국언어문화부에서 번역 및 편집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1년 김영하의 소설 ‘슈바르츠 블루메’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는 번역상을 하이너 펠트호프와 함께 수상했다.
공동 번역자인 위르겐 반세루스는 뮌스터 대학과 본 대학에서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지난 2010년 아네테 폰 드로스테 휠쇼프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표제시 ‘물거미의 노래’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을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노래한 작품이다.
“남과 북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 DMZ 늪-// 목마른 노루새끼들/ 종종 주둥이로 스쳐 가는/ 지뢰밭 물구덩이 안에서/ 거미 두 마리가 엉겨 붙는다// 반경 2cm가 될까 말까 한/ 물방울 속을 비집고 들어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암놈과 수놈/ 사랑을 한다/ 작은 수초(水草) 하나/ 다치지 않고, 찢김도 없이// 아흐,/ 둥근 물방울 속에/ 들어가 몸을 섞는다/ 단순한, 소박한, 완벽한, 꿈꾸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잔잔하게 풀어낸 시는 숨이 막히도록 간결하면서도 미려하다. 낙천적 세계관은 물론 얼핏 샤마니즘적인 에너지도 깃들어 있다. 물거미는 오염되지 않는 곳에서 서식하는 생명체다. 아이러니하게도 물거미는 6·25전쟁의 최전선인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산다. 상처 입은 우리의 산하는 그렇게 무정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거였다.
시인은 “무수히 많은 지뢰가 묻힌 DMZ비무장지대가 세월이 흘러 자연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가 됐다니, ‘시적이다’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물거미의 짝짓기는 밤과 북의 경계가 없는 자연의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담은 시적 묘사”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은 평화와 생명력의 회복, 그리고 통일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시인의 시집은 그 이전에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 2014년에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영문으로 영역돼 출간됐으며 2018년에는 ‘광주로 가는 길’이 일본어로 나왔다.
올해로 등단 55주년을 맞는 시인은 여전히 왕성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괴테는 죽기 전까지 글을 썼고 피카소는 92세까지 작품활동을 했다”며 살아 있는 한 계속 글쓰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시를 앞으로도 계속 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양한주 교수는 감사의 말에서 “‘당신의 입술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 중 하나이다. 이것은 일부 시에도 적용된다”며 “이는 시를 번역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때에 행복하다”고 전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오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김준태 시인. 당시 전남고 교사였던 그는 이 시로 광주 5월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시인은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큰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 덕분에 어디서도 금방 눈에 띈다. 금남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시인을 만날 수 있을 만큼, 그는 금남로를 자주 출입한다. ‘금남로 시인’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은 거의 매일 전일빌딩245로 출근해 전자도서실에서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전액 번역출판 지원사업으로 출간됐다”며 “작품집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 외에도 통일, 생명사상 등을 모티브로 쓴 시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는 독일 보쿰대에 재직 중인 양한주 교수와 시인 위르겐 반세루스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출판은 독일 현지 ‘IUDICIUM ㅁㅞㄴ헨’이 맡았다.
번역을 한 양한주 교수는 지난 80년대부터 독일에서 거주했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어와 사회학을 공부했다. 보쿰대 한국언어문화부에서 번역 및 편집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1년 김영하의 소설 ‘슈바르츠 블루메’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는 번역상을 하이너 펠트호프와 함께 수상했다.
공동 번역자인 위르겐 반세루스는 뮌스터 대학과 본 대학에서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지난 2010년 아네테 폰 드로스테 휠쇼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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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 DMZ 늪-// 목마른 노루새끼들/ 종종 주둥이로 스쳐 가는/ 지뢰밭 물구덩이 안에서/ 거미 두 마리가 엉겨 붙는다// 반경 2cm가 될까 말까 한/ 물방울 속을 비집고 들어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암놈과 수놈/ 사랑을 한다/ 작은 수초(水草) 하나/ 다치지 않고, 찢김도 없이// 아흐,/ 둥근 물방울 속에/ 들어가 몸을 섞는다/ 단순한, 소박한, 완벽한, 꿈꾸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잔잔하게 풀어낸 시는 숨이 막히도록 간결하면서도 미려하다. 낙천적 세계관은 물론 얼핏 샤마니즘적인 에너지도 깃들어 있다. 물거미는 오염되지 않는 곳에서 서식하는 생명체다. 아이러니하게도 물거미는 6·25전쟁의 최전선인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산다. 상처 입은 우리의 산하는 그렇게 무정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거였다.
시인은 “무수히 많은 지뢰가 묻힌 DMZ비무장지대가 세월이 흘러 자연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가 됐다니, ‘시적이다’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물거미의 짝짓기는 밤과 북의 경계가 없는 자연의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담은 시적 묘사”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은 평화와 생명력의 회복, 그리고 통일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시인의 시집은 그 이전에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 2014년에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영문으로 영역돼 출간됐으며 2018년에는 ‘광주로 가는 길’이 일본어로 나왔다.
올해로 등단 55주년을 맞는 시인은 여전히 왕성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괴테는 죽기 전까지 글을 썼고 피카소는 92세까지 작품활동을 했다”며 살아 있는 한 계속 글쓰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시를 앞으로도 계속 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양한주 교수는 감사의 말에서 “‘당신의 입술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 중 하나이다. 이것은 일부 시에도 적용된다”며 “이는 시를 번역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때에 행복하다”고 전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