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걸으며 드는 생각들-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4년 05월 23일(목) 22:00
얼마 전 처음으로 맨발 걷기를 하다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져서 고생을 했다. 아마 며칠은 가지 않았나 싶다. 교우들과 함께 전북 순창군에 있는 강천산에 갔다가 경험한 일이다. 일행 중에는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분도 있었다. 몇 년째 맨발 걷기를 해서 단련이 되어 이 정도는 감각도 없다고 했다. 사실 맨발 걷기를 하러 올 때는 이런 통증을 느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해변의 고운 모래 위를 걸을 때 느껴지는 발가락 사이에 간질거리는 촉감을 기대했었다. 또한 고운 황톳길을 맨발로 걸을 때처럼 발바닥을 그리 자극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은 부드러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영광의 물무산 황토길 걷기를 작년에 갔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오는 바람에 맨발 걷기는 하지 못했다. 그 때의 아쉬움을 이번에는 맘껏 누리리라 생각 했건만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맨발로 걷는 내내 후회하듯이 이렇게 투덜거렸다. ‘아까 강천사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놓은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갔어야 했다.’, ‘신발을 벗어 놓고 올 것이 아니라 들고 왔어야 했다.’ 이런 저런 후회가 들었지만 다른 분들을 생각하여 참고 걸었더니 어느덧 목표 지점에 다다랐다. 거기까지가 끝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니나 다를까 다시 내려오는 길은 통증이 더했다. 빨리 내려가서 신발을 신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 찼다. 출발 지점에 도착하여 흐르는 물에 씻고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 아!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맨발 걷기가 진짜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찾아보니 과학적인 근거는 미비하지만 좋은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몇 시간을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와 더불어 심신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잠을 잘 자거나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효과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 출간된 ‘맨발로 걷다 보면’이라는 무라나카 리에의 그림책이 있다. 맨발로 걷는 유익함을 잠시 잊은 우리들에게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감(손)이라는 오감을 많이 이해하고 표현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발로 느낄 수 있는 촉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맨발로 걷다 보면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고 시냇물의 시원함과 간지럽힘을, 그리고 매끄러운 감촉으로 긴 세월을 부딪치며 지나온 자갈들의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축축한 흙, 작은 돌멩이의 지압, 뜨거운 아스팔트, 푹신한 풀 등의 촉감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가톨릭 성경은 시편 66편 6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바다를 마른땅으로 바꾸시어 맨발로 건너 갔다네. 거기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뻐하네.” 내가 아는 그 어떤 번역본을 뒤져봐도 홍해를 맨발로 건너갔다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을 걸어서 지나갈 때 그 현장을 피부로 몸소 체험하는 생동감을 선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속박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땅을 움켜쥐며 그 향을 맡는 장면들이 있다. 때로는 땅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말이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것 같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몇 년새 맨발 걷기가 유행하고 지자체마다 맨발 걷기 좋은 산책로들을 조성하는데 투자하고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걷기는 건강에도 좋고 여유로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책에서처럼 다른 감각으로 지구를 느낄 수 있으며 사람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체득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같다. 아울러 신앙의 관점에서도 신을 벗어 버리면 죄인되었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점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연은 펼쳐진 성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찬송을 흥얼거리며 걸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아울러 죄된 습성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통증이 생길 수 있겠지만 적당한 곳을 찾아 맨발로 걸으며 그 감촉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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