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국방부장관 김의성 배우 "시민군 역 맡아보고파"
2024년 05월 16일(목) 14:05
16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서 학술대회 '나-들의 오월, 기록을 만나다'
"실제 국방부 장관이었어도 영화와 비슷했겠지만, 역사 성찰 필요해"
“영화 ‘서울의 봄’에 다음 이야기가 있다면 그건 분명 ‘광주’에서 벌어진 후일담을 다룬 것일 테죠. 이제는 할아버지 역할을 맡을 나이가 다 되었지만 만일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광장을 가득 메웠던 ‘광주 시민군’ 역할을 맡아보고 싶습니다. 여태 악역 필모그래피만 쌓아 왔는데 그런 숭고한 역할도 맡아볼 수 있다면 영광이겠죠.”

영화 ‘서울의 봄’에서 국방부 장관(오국상) 역으로 수많은 관객들의 ‘공분’을 샀던 배우 김의성 씨의 말이다. 그는 16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학술대회 ‘나-들의 오월, 기록을 만나다’에 패널로 출연했다. 이에 앞서 취재진은 김의성 배우를 만나 영화 ‘서울의 봄’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광주 5·18민중항쟁에 대한 생각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군사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던 권력자 중 한 명이지만 ‘도망’을 택했던 것과 달리, 현실 속 ‘김의성’은 다르다. 지난 2020년에는 표창원, 심용환과 함께 ‘5·18 특집다큐-5월행’에 출연해 광주 시민들을 만났다. 또 5·18 40주년에는 개인 sns에 기도하는 손 모양의 게시물을, 전두환이 자연사한 날에는 의미심장한 게시물을 업로드해 이목을 끌었다.

그에게 “실제 1980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것 같냐”고 물었다. 김의성은 “작품을 촬영하는 내내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고민해 보곤 했었다”며 “나는 겁 많고 평범한 사람이기에 아마도 작품 속 모습과 비슷하게 행동했을지 모른다. 악에 적극 가담하진 않더라도 도망치거나 두려워했을 것 같다”는 소시민적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성찰’하는 것이다”며 “자기 반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인간은 권력의 안온함에 넘어가기 십상이다”고 덧붙였다.

어떠한 과장 없이 “두려웠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음에도 일순 ‘서울의 봄’ 스핀오프가 나온다면 신군부에 저항하는 ‘국방부 장관’의 모습이 상상된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1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악역 국방부 장관(오국상)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이 16일 오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5·18 당시 그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을 통해 “폭동이 진압되고 평화로운 광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후 이것이 왜곡된 사실이라는 것을 광주 사진·영상물을 통해 깨달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깨달은 진실은 ‘광주의 봄’은 전혀 없었고 도시는 비극, 참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김의성은 ‘영화는 영화’라는 마음으로 실제 자신과 극중 ‘오국상’의 페르소나를 분리해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에게 “너 대머리 가발 분장 참 잘 됐다”라거나 “탈모에 뭐가 좋냐”는 등 위트 있는 이야기로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는 것. 이처럼 연기하는 내내 5월과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사감을 배재하고 배역에만 몰입한 점은 영화 ‘서울의 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영화를 현실과 분리하려 생각하려 했지만, 엔딩 크레딧에서 악인들의 ‘성공담’을 접할 때는 가슴이 울컥하기도 했다”며 “전두환과 노태우, 신군부 세력이 성공 가도를 걷게 된 비화를 볼 땐 영화배우가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크게 분노했다”고 언급했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가벼운 질문도 건네봤다. “‘국방부 장관’으로서 광주 시민(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서울의 봄’에서 국방부 장관은 물론 ‘외계+인’ 2부의 외계인 죄수 ‘자장’ 역, ‘부산행’ 중 ‘용석’ 역과 ‘미스터션샤인’의 이완익 등 그의 커리어는 ‘악인전’을 방불케 한다. 극 중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 탓에 분노까지 느끼는 관객마저 다수, 그의 한 마디가 아직 해원 되지 못한 ‘광주의 한’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의 답이 궁금했다.

김의성은 오직 ‘국방부 장관’으로서 답변하자면 “그날 광주 시민들께 죄송하고 송구할 뿐”이라며 광주의 설움에 공감했다. 이어 “팩션인 영화 ‘서울의 봄’이 실체적 진실에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떠나, 광주의 큰 비극사를 막을 수 있던 ‘국방부 장관’으로서 광주 시민들께 사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실제 1980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들은 사과는 아니었음에도 그의 말은 1980년 5월 당시, 쿠데타 방조자에게 사과를 받는 추체험(追體驗)의 감각을 남겼다. 영화를 통해 현재화된 44년 전 ‘5월’, 악역 배우가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별로 다를 것입니다. 5·18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보면 ‘희생’과 ‘고통’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숭고한 ‘영광’의 역사로 먼저 기억됐으면 합니다. 미래에는 5·18이 ‘역사의 높은 봉우리’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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