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플로렌스 크레인과 순천의 장미
2024년 05월 15일(수) 22:30 가가
얼마 전 인터뷰를 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올해로 내가 식물 세밀화가로 일한 지 16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은 처음 식물을 그리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저 이팝나무에 꽃이 열여섯 번이나 피고 지는 시간을 지나온 셈이다.
그동안 내가 그린 식물 대부분은 연구기관과 연구자에게 의뢰받은 종이었다. 예산을 들여 그림으로 기록하려는 식물은 한국특산식물, 멸종위기식물 또는 기관이나 정원을 대표하는 주요 종이 많았다.
이왕 하는 기록이라면 특별한 장소에 분포하는 특별한 종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귀하게 여기는 식물을 그리면서도 왜인지 내 마음속에는 가까운 곳의 흔하고도 흔한 식물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식물에 인간 기준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지쳐 있었던 것도 같다.
하나의 전공에 오래 임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만나는 사람들 혹은 내게 만나자 연락해오는 사람들 또한 직업, 학력, 경제, 문화적 기득권층뿐이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곁에 대단한 사람들을 두는 게 무슨 문제냐고도 말하지만, 나는 이런 흐름이 내 생각과 삶을 너무 편협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권위에 갇혀 좁은 시선으로 내 경험 밖의 세상을 내려다 보는 비현실적인 나로 살고 싶진 않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날 식물 조사를 위해 순천으로 출장을 갔다. 비가 내려 조사가 미뤄지는 바람에 그간 다녀오리라 메모해둔 순천 기독교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에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의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의 들꽃과 전설(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 이 책은 영어로 쓰인 최초의 우리나라 야생화 책이자, 우리나라 식물세밀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알려진다.
플로렌스 헤들스톤 크레인(Florence Hedlestone Crane, 1888~1973)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선교사인 남편 존 크레인과 순천에 자리를 잡은 후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던 아주 보편적인 선교사 가족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소질을 살려 순천에서 만난 들풀과 나무를 한 종 한 종 그림으로 그려냈다.
크레인의 기록은 개화 시기에 따라 월별로 분류되어 있다. 5월 이맘때의 단락에는 100여 년 전 당시 순천에 피어난 다양한 장미속 식물이 그려져 있다. 해당화, 월계수, 찔레꽃 등등…. 그림을 그리다 이름 모르는 식물을 발견하면 그는 제자인 학생들에게 물어 국명을 기입했다고 한다. 책에 월계수 대신 월계꽃, 찔레꽃 대신 찔레나무꽃이라 쓰여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크레인이 기록한 식물은 연구자들이 혹할 특정 식물도, 특별한 장소의 식생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분류키가 잘 드러난 과학 일러스트도,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잘 그린 그림이라고도 할 순 없다. 크레인의 이력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은 1910년 순천이라는 지역에 흔히 존재하던 식물을 기록한 보편성에 있다. 물론 기록이 개인의 일기장으로 끝나지 않고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당시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식물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의 감수를 받는 등의 혜택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고도 그의 기록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은 훌륭하고 대단한 성과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눈에 비친 모든 식물을 평등하게 바라본 포용의 가치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직원분이 내게 다가와 크레인의 그림이 그려진 파일과 스티커, 엽서를 주었다. 나는 크레인에게 보내는 짧은 글을 엽서에 썼다.
박물관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길 오래된 아파트 담장에 네 다섯 품종의 장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담장 속 장미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도, 주요 품종으로도 보이진 않았으나 왠지 장미 그림 담장을 둘러싼 아파트 풍경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흔하디흔한 식물이 별 이유 없이 특별하지 않은 장소에 정성껏 그려진 모습을 본 경험은 내 생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식물 세밀화가>
이왕 하는 기록이라면 특별한 장소에 분포하는 특별한 종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귀하게 여기는 식물을 그리면서도 왜인지 내 마음속에는 가까운 곳의 흔하고도 흔한 식물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식물에 인간 기준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지쳐 있었던 것도 같다.
플로렌스 헤들스톤 크레인(Florence Hedlestone Crane, 1888~1973)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선교사인 남편 존 크레인과 순천에 자리를 잡은 후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던 아주 보편적인 선교사 가족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소질을 살려 순천에서 만난 들풀과 나무를 한 종 한 종 그림으로 그려냈다.
크레인의 기록은 개화 시기에 따라 월별로 분류되어 있다. 5월 이맘때의 단락에는 100여 년 전 당시 순천에 피어난 다양한 장미속 식물이 그려져 있다. 해당화, 월계수, 찔레꽃 등등…. 그림을 그리다 이름 모르는 식물을 발견하면 그는 제자인 학생들에게 물어 국명을 기입했다고 한다. 책에 월계수 대신 월계꽃, 찔레꽃 대신 찔레나무꽃이라 쓰여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크레인이 기록한 식물은 연구자들이 혹할 특정 식물도, 특별한 장소의 식생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분류키가 잘 드러난 과학 일러스트도,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잘 그린 그림이라고도 할 순 없다. 크레인의 이력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은 1910년 순천이라는 지역에 흔히 존재하던 식물을 기록한 보편성에 있다. 물론 기록이 개인의 일기장으로 끝나지 않고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당시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식물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의 감수를 받는 등의 혜택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고도 그의 기록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은 훌륭하고 대단한 성과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눈에 비친 모든 식물을 평등하게 바라본 포용의 가치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직원분이 내게 다가와 크레인의 그림이 그려진 파일과 스티커, 엽서를 주었다. 나는 크레인에게 보내는 짧은 글을 엽서에 썼다.
박물관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길 오래된 아파트 담장에 네 다섯 품종의 장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담장 속 장미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도, 주요 품종으로도 보이진 않았으나 왠지 장미 그림 담장을 둘러싼 아파트 풍경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흔하디흔한 식물이 별 이유 없이 특별하지 않은 장소에 정성껏 그려진 모습을 본 경험은 내 생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