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의 역설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4월 08일(월) 00:00 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가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전국 박물관으로 옮겨져 상설 전시된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총 13건 107점을 비롯해 모두 936건 2254점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될 ‘전(傳) 논산 청동방울 일괄’은 청동기 시대에 의례나 의식을 행할 때 흔들어 소리를 내던 팔주령(八珠鈴) 등 청동유물이다. 8각형 별모양으로 각 모서리에 방울이 달려 있다. 청동방울 일괄은 국보임에도 명칭에 ‘전(傳) 논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충남 논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붙은 어정쩡한 명칭이다. 논산 청동방울과 구성품에서 유사하지만 출토지가 명확한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和順 大谷里 靑銅器 一括)에 견줬을 때 학문적 가치는 천양지차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전 영암 용범 일괄’(傳 靈巖 鎔范一括)은 우리 조상이 청동기를 제작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보물이다. 13점으로 이뤄진 거푸집(용범) 세트는 청동검·꺾창·낚싯바늘·끌 등 청동 제품을 만든 도구다. 한반도에서 청동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지만 역시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다. 영암 거푸집은 1960년대 초 골동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매입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숭실대 박물관 설립자인 김양선 박사가 가치를 알아보고 구입했다. 당시 골동품상이 ‘출토지는 전남 영암 독천리’라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영암 거푸집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재조명됐다. 2003년 화순 백암리에서 발굴된 청동창이 영암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청동창과 거푸집의 입체 사진을 맞춰본 결과 딱 들어맞았고 단지 청동창 날의 길이가 거푸집에 비해 1.4㎝ 짧았다. 청동창이 의례용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면서 마모된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는 청동기를 제작했던 거푸집이 47점 있다. 대부분 도굴돼 골동상들의 손길을 거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신고 유물이다. 아쉽게도 우리 문화재를 소홀히 한 결과 고고학적으로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고 연구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보에 붙여진 ‘전’(傳)은 역사를 잃어버린 뼈아픈 고백이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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