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시즌 2] <5> 고흥 녹동 ‘더바구니’
2024년 03월 25일(월) 21:05
마당이 있는 컨테이너 서점…1년간 단장
새책·수공예품 판매…만화방도 비치
누구든 와서 책 읽고 즐기는 공간 꿈 이뤄
블로그에 올린 글 모아 책 출간
요가·음악회·필사 프로그램 등 진행

고흥 녹동에 지라한 ‘더바구니’는 마당이 있는 컨테이너 서점이다. 서점에서는 요가, 필사, 책방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좀처럼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자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조금은 불안했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떠난 참이었다. 고흥에 작은 동네서점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당연히’ 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시간 50여분을 달려 도착한 서점은 고흥읍을 한참 지나 녹동항 근처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런 시골에 동네서점이 있다니”라는 생각은, 책방지기 박윤미씨를 만나고 나서 이렇게 바뀌었다. “이 책방은 바로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구나.” 책방은 동네 주민 모두의 것이었고, 먼길을 찾아온 여행자들의 것이었다.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녹동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 박 씨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공간에서, 잘 아는 사람들과 어디에도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방지기 박윤미 씨.
내성적이었던 ‘약국집 막내딸’ 박윤미는 책을 읽으며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다. 언젠가는 누구나 찾아와 마음껏 책을 읽으며 즐기는 책방을 열겠다고 마음먹었고, 2013년 일을 저질렀다.

‘더바구니’는 마당이 있는 컨테이너 서점이다. 박 씨는 순천만정원박람회 후 남은 컨테이너 2동과 고물상에서 발견한 컨테이너 1동 등 모두 3동을 구입했다. 서점 자리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 본 곳이다. 숱한 사람들의 매매 제안을 거절했던 땅주인은 “책방을 열고 싶다”는 박대표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땅을 내주었다. 언제나 힘이 돼주는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공터에 돌담을 쌓고, 잔디와 나무를 심고, 사용할 의자와 탁자 등도 직접 만들었다. 시간은 더뎠지만 1년여의 단장 끝에 모두의 꿈이 담긴 공간이 완성됐다.

출발은 북카페 형태의 문화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책방을 열지 않았던 건 녹동의 유일한 책방에 혹시라도 피해를 끼칠까 싶어서였다. 나이든 부부가 운영하던 책방 ‘은성당’이 문을 닫은 2022년부터 ‘더바구니’는 책방으로 변신했다.

동네 서점 ‘더바구니’ 내부.
◇컨테이너로 만든 서점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는 어린이 대상의 스포츠활동과 숲놀이, 자연체험학습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업체이름이자 서점이름이기도 한 ‘더바구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아이들이 ‘박윤미 선생님’이라는 발음이 잘 안돼 바구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따왔다. 또 하나는 바구니처럼 ‘더 많은 것’을 담아서 전해주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책 선정은 지인 박숙현씨가 주로 맡고 있다. 책방 인스타그램 등에 그가 올린 소개글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손님들이 많다. 숙현씨는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모아 조만간 책을 펴낼 예정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이 추천하는 ‘북큐레이션, 나에게 좋은 책을 당신에게 소개합니다’ 코너도 눈길을 끈다. 정성들인 손글씨로 실비 제르맹의 소설 ‘호박색 방’ 등을 추천한 ‘개미’의 추천도서에 눈길이 갔다. 고흥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책을 펴내고 있는 최종규 작가 코너는 박 대표가 그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마련한 공간이다. 테이블에는 박 대표가 즐겨 있는 정원 관련 책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방에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서점을 예쁘게 꾸며준 일등공신인 가방, 뜨개 제품 등 소품들은 동네 가게 주인들의 솜씨다. 실력이 있어도 판로가 마땅찮은 제품 판매를 위해 공간을 내주었으며 일부는 직접 구입했다.

더바구니에서 열린 달빛 요가 프로그램.
서점에서는 새책도 팔지만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비치해두었다. 또 카페에서 음료를 파는 대신 눈치보지 않고 즐기다 가도록 자판기를 설치해 둔 점도 눈길을 끈다.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편하게 책을 읽는 모습은 그가 늘 그려보는 풍경이다. 서점에서는 다양한 행사도 개최한다. 달빛 요가, 필사 프로그램, 책방 음악회, 책바 등이 대표적으로 올해도 프로그램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저지르는 편이에요. 고흥에도 다양한 놀이문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책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죠. 공간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빌려주기도 하고요. 서로 무슨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함께 즐겁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만화방 컨테이너.
스스로 ‘운동중독’이라고 말하는 그는 야구와 만화를 사랑한다. 2012년 고흥리더스여자야구단을 창단해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쁨도 맛봤다. 지금은 30~40대가 된 야구단 후배들과는 둘도 없는 가족이 됐고, 서점도 함께 꾸몄다. 단원들과는 어린이야구교실을 여는 등 재능봉사를 하고, 매년 어린이날에도 특별한 행사를 진행한다.

컨테이너 중 하나는 ‘만화방’이다. 바닥에 온돌을 깔아 누구나 편하게 앉아 만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500여권의 만화책과 동네 아저씨가 가져다 준 무협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자 야구선수를 그린 그림, 고흥리더스여자야구단의 역사가 담긴 사진, 트로피 등도 눈길을 끈다.

올해 문을 연 ‘바다 앞, 숲 in 더 바구니’에서는 책방스테이를 할 수 있다.
◇숲과 바다 그리고 책방 스테이

박 대표의 차를 타고 서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거금도로 향했다. 더 바구니는 지난해 금장 해변 옆 오랜된 바닷가 집을 고쳐 숲학교를 만들었다. ‘바다 앞, 숲 in 더 바구니’다. 그의 말처럼 바다가 바로 앞에 있었다.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소나무, 동네 주민이 매어놓은 그네까지 완벽한 풍경이었다.

이 공간 역시 박 대표와 친구들이 함께 만들었다. 창문 너머 소나무 숲 사이로 푸른 바다가 내어다 보인다. 널따란 탁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 딱 좋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표현이 딱 ‘현실’이 되는 공간이었다. 이 곳은 아이들의 숲체험활동 장소로 사용한다. 또 1박 2일 책방스테이로도 대여할 예정이며 여름에는 마당에서 팝업 책방을 열 생각이다. 숲학교 바로 옆에는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파스타와 커피집 ‘고흥의 하루’가 자리잡고 있다.

더바구니 내부.
‘더바구니’를 찾는 이들 가운데는 여행객들이 눈에 띈다. 녹동항, 신항과 가까워 제주도로 향하는 배를 타러가는 길에 들르기도 한다.

“화려한 축제나 행사 현장을 찾기보다는 그냥 바닷가를 걷고 동네를 산책하며 머물다 가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일상에서 지친 이들이 한템포 쉬어가는 곳이죠. 책방을 찾는 분들이 자연스레 이곳에 머물며 책도 읽고 ‘나를 찾는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책방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25일 봄맞이 오픈을 했다. 고흥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더바구니’에 들러보길 바란다. 푸른바다와 울창한 소나무 숲까지로의 여정이 더해진다면, 당신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동네 책방 더바구니>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신항 8길 21-3, 월·화·목요일= 오후 1시~6시(무인책방).

금·토요일=책방프로그램 인스타그램(@thebaguni_chaegbang), 블로그(blog.naver.com/thebaguni) 확인.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책방지기가 추천합니다]

▲이주하는 인류

‘움직임’을 핵심 키워드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정적이고 고립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주하며 서로의 영향을 받아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러한 ‘움직임’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주제는 인류의 지속적인 도전과 변화에서 다양성의 수용과 평등한 자유로 확장된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렇듯 주제가 확장되면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글의 기저에 깔린 다정한 온도 때문이기도 하다. 따스함을 지닌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샘 밀러·미래의 창>

▲에이징 솔로

대부분 전남 지역에 거주하고 있을 광주일보 독자들이 가장 체감할 사회적 이슈는 아마 ‘고령화’ 그리고 ‘지방소멸’일 것이다. 정확히는 저출생과 고령화, 결혼 기피 그리고 이로 인한 지방소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거 탄생하게 된 집단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비혼 여성’이다. 이 책은 비혼 여성을 단순히 남성과 결혼해서 살아가는 정상가족에 속하지 못한 비정상적인 계층으로 바라보는 오래된 선입견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느슨한 공동체’를 이룩해 함께 살아가자고 설득한다. 비수도권 지역의 미래를 위한 고민의 하나로 눈여겨볼 만 한 책이다. <김희경·동아시아>

▲키르케

누군가 내게 소설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요소를 묻는다면 단연코 재미라고 답할 것이다.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는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다. 수많은 비극과 희극, 마법과 괴물, 신과 인간이 등장하며 쉴새없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간다. 저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영웅과 미녀를 제쳐두고 사악한 마녀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 이야기에서 키르케는 마녀이지만 동시에 영웅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운명은 신조차 거스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키르케는 운명을 거부하고, 앞길을 개척하는 용기를 지닌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빛나는 의지과 용기가 돋보이는 모험 서사시를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들린 밀러·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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