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현대·미래 ‘시대교감’…건물 자체도 하나의 예술작
2024년 03월 24일(일) 19:10
[문화를 품은 건축물 열전건축 도시의 미래가 되다 <31> 서울 리움미술관]
마리오 보타·장 누벨·렘 쿨하스
세계 건축계 대가들이 설계
웅장한 위용 ‘M1’ 고미술품 감상
모던한 ‘M2’ 현대미술 상설 전시
2021년 재개관…국보급 명작의 향연
20주년 기념전 필립 파레노‘보이스’전

서울 한남동에 자리한 리움미술관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 등 세명의 세계적 건축가들이 전통과 현대, 미래를 콘셉트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리움미술관(이하 리움)은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리움의 랜드마크로 불렸던 물방울 조형물(애니쉬 카푸어 작 ‘큰 나무와 눈’)은 온데 간데 없고 놀이공원의 자이드롭 처럼 보이는 거대한 설치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높이 13.6m의 구조물에는 긴 전선들이 달린 물체가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전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조금씩 꿈틀거렸다.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VOICES)에 출품된 작품으로, 외부의 센서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전시장으로 내보낸다.

한남동 언덕위에 자리한 리움은 전통과 현대, 미래를 담은 3개의 건축물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미니멀하면서도 둔중한 형태의 M1, 모던한 감각의 블랙박스(아동교육문화센터), 현대미술 상설전시장인 M2가 ‘하나의 지붕’안에 모여있는 국내 최대의 사립미술관이다. 말이 3개의 공간이지, 각각이 단일 미술관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난 스케일(연면적 8400평)을 자랑한다.

리움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Voices)전.
고미술을 전시하는 M1은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를 맡았다. M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루벨, 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덜란드의 거장 렘 쿨하스의 손을 거쳤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완공까지 무려 8년의 시간을 거쳐 지난 200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M1은 외관에서부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고미술 전시장으로 설계를 의뢰 받은 마리오 보타는 전통을 수호하는 요새 또는 성(城)을 구현하기 위해 도자기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역원추형과 직육면제의 디자인을 고안해냈다. 특히 고고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테라코타 벽돌로 외관을 마감해 미묘한 음영과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형상화했다. 그 덕분에 웅장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인 M1은 멀리서도 강렬한 인상을 뽐낸다.

리움미술관 M1에 상설전시된 조선시대 ‘백자청화 낙서국화문 연적’(19세기)
야외데크에서 나와 리움 정문으로 향하면 가장 먼저 아동교육문화센터가 나온다. 렘 쿨하스가 유리로 설계한 이 건물과 야외 데크의 조각공원 사이에는 필로티 구조의 입구가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신전에 와 있는 듯한 ‘클래식한’ 분위기의 로비가 시선을 끈다. 1년 7개월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된 곳으로 세 건축가의 독립적인 건축물들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전시관람에 앞서 잠시 로비에 앉으면 M1, M2, 아동교육문화센터의 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중에서도 M1은 미술관의 ‘얼굴’ 같은 존재다. 밖에서 보면 역원추형의 공간이었지만 내부에서는 로툰다 양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나선형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으로 꾸며졌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현대미술작가인 김수자의 ‘호흡’을 설치해 둥근 지붕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펼쳐지는 무지개 스펙트럼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선형 계단과 이어지는 전시장에는 리움의 상설 컬렉션인 고미술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권위와 위엄, 화려함의 세계’(1층), ‘감상의 취향’(2층), ‘흰빛의 여정’(3층), ‘푸른빛 문양 한 점’(4층) 등으로 나뉘어 국보 6점, 보물 4점, 현대미술 6점 등 16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김홍도의 ‘군선도’ 등 국보들도 포함됐다.

마리오 보타가 도자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역원추형으로 디자인한 M1의 로툰다 계단.
특히 고미술품 전시장에서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꾸며진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이다. LED로 형상화된 태양계 행성의 천장과 벽면에 설치한 거울로 인해 착시 현상을 일으켜 완결된 구형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공간 전체가 노란 빛을 띠면서 천장의 거울로 공간이 무한 확대돼 판타지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
M1에서 나와 현재 전시중인 필림 파레노의 전시장으로 향한다. 오는 7월7일까지 5개월동안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9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야외 데크에 설치된 ‘막’(幕)을 비롯해 그라운드 갤러리와 블랙박스, M2 지하 1층, 로비 등 곳곳에서 ‘차양’ 연작, ‘내방은 또 다른 어항’, ‘마를린’, ‘세상 밖 어디든’ 등 조각, 설치, 영상 등 4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 제목인 ‘보이스’(Voices)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그에게 있어 다수의 목소리는 작업의 핵심 요소로 작품과 전시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목소리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작은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평범한 화이트큐브가 아닌, 로비와 야외의 데크를 끌어 들여 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연출한 작가의 의도다. 미술관 로비의 대형 스크린 두 곳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대낮의 올빼미’와 야외 데크에 설치된 타워(막)가 포착한 데이터들로 만들어진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소개된다.

리움의 또 다른 매력적인 공간은 로비에 자리한 아트숍이다. 우선 아트숍에 진열되는 상품 자체가 하나의 작품 같다. 다른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있지만 섬유공예, 생활공예, 금속공예 등 아티스트와 협업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 곳은 미술관 아트숍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퀄리티가 높다.

양성일 삼성문화재단 홍보담당은 “리움의 아트숍은 담당자가 직접 제품 선정 및 제작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관한다”면서 “전시가 열리면 해당 전시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고, 일부는 리움의 아트숍만을 위해 별도의 기획상품을 전시작가와 공동진행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리움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과 조선 백자 특별전으로 누적 관객 40여 만 명을 돌파하는 등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우리(WE)’와 ‘조선의 백자-군자지향’은 사전예약제에도 각각 26만 명과 10만 명이 다녀갔다. 필립 파레노의 전시는 평일 2000명, 주말에는 3000명이 다녀간다. 사전예약제와 현장판매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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