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굿’으로 씻어내는 5월 영령들의 아픔
2024년 03월 22일(금) 22:00
지정남커뮤니케이션 4월 26~27일 1인극 ‘환생굿’ 예정
전라도 말씨 포인트…화순능주씻김굿 접목한 굿판 모티브

‘환생굿’ 공연 장면. 무당 ‘고만자’가 배필을 쥐고 환생굿을 펼치고 있다. <지정남커뮤니케이션 제공>

망자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씻김굿을 배운 전라도 무당 ‘고만자’. 하지만 막상 그는 굿 소리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든 생계는 유지해야 했던 까닭에 그녀는 기상천외한 영업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이름도 생소한 ‘환생굿’이 바로 그것.

고 씨는 억울하게 돌아간 망자들을 환생시키는 엉뚱한 환생 굿판을 펼친다. 어쩌다 보니 환생 굿의 첫 손님은 1980년 5월 ‘광주의 망자’다. 과연 5월 영령들이 원혼과 아픔을 씻어내고 환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정남커뮤니케이션(대표 지정남)이 5·18 광주 민중항쟁을 극화한 1인극 ‘환생굿’을 펼친다. 4월 26~27일 민들레 소극장에서 진행하며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3시, 7시 공연.

지정남 배우는 “5·18이 40주기를 넘으면서 여러 고민들이 떠올랐는데, 그중 하나가 ‘광주 5월’의 거시적 의미 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비극사에 집중해봐야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공연은 5월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물을 나눠주고, 마스크와 검은 리본을 만들어 상무관에서 시신을 지켰던 평범한 광주 여성들의 서사에 주목한다. 당시 가두시위에 동참하고 헌혈을 통해 피를 나눴으며 투사회보를 날랐지만, 지금은 투사로서의 이름은 잠시 잊고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의인들에 주목하겠다는 것.

공연은 ‘굿’ 형식과 맞물려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영화 ‘파묘’에서 나왔던 대살굿 등도 얼핏 떠올라 자못 친숙하다.

지 배우는 “굿은 ‘산 사람을 위한 행위’로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행위는 오히려 생자에게 위로가 된다”며 “이런 마음에서 화순능주씻김굿을 1년 여간 배워 극 속에 녹여내 굿을 체득했다”고 했다.

이어 “씻김굿 보유자인 조웅석 선생님 등도 직접 악사로 출연해 구음과 대금, 징소리 등을 더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씻김굿’이야말로 5월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좋은 소재가 되는 것 같다. 특히 공연은 망자를 위무하는 ‘씻어냄’의 의미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작고한 5월 영령의 넋을 다시 인간세상으로 환생시키는 ‘창작굿’의 의미까지 투사했다는 점에서 ‘굿판’을 소재로 한 여타 공연과 차별점이 있다.

지 배우는 “굿은 늘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공기가 달라져 공연에 생생함을 더한다”며 “굿판 자체가 함께 대동 단결하는 요소가 많은 연유에서, 이번 공연도 ‘관객 참여형 공연’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공연에는 ‘환생굿’ 등 코믹한 요소가 곁들여져 있어, 무겁지 않게 관람하기 좋아 보인다.
한편 무대에는 감칠맛 나는 전라도 말도 울려 퍼질 예정이다. 1980년 당시 광주의 아픔을 고스란히 현대에 가져오기 위한 좋은 매개가 ‘전라도 사투리’라는 생각에서다. 이어 ‘1인극 형식’을 차용한 이유도 물었다. 그는 “5·18의 개인 서사에 주목하려는 의도에서 1인극 형식을 선택했다”며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 더 내밀한 감정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고 언급했다.

망자를 진혼하는 ‘씻김’도 좋지만, 이들이 현재적 의미를 얻고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환생굿’ 방식을 채택한 점은 이목을 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 진압 이후, 신군부는 항쟁에 참여했던 여성 100여 명을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고 모두 ‘행불자’ 처리했다. 이들은 감금되던 당시 생리대조차 지급받지 못할 정도로 비인간적 취급을 받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지 씨는 “사회적 모멸 속에서 스스로 이름을 지워버렸던 여성들이, 다시 역사와 사회 전면에 ‘당당히’ 섰으면 하는 바람에 씻김보다 ‘환생굿’으로 극 전반을 이끌어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개념은 ‘기억 투쟁’이다. 우리 사회가 5·18은 물론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등 다양한 비극을 문화예술적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아픔을 진혼하는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5월이 다가오는데 나눌 이야기가 참 많네요. 해야 될, 알아야 할 이야기가 많드라고요. 다덜 굿 보러 꼭 오셔요이, 지달코 있을라우”

그가 작중 무당 ‘고만자’처럼 전라도 사투리로 전하는 끝인사다. 공연관람은 네이버 예약.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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