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 김대성·제2사회부장
2024년 03월 20일(수) 00:00 가가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간관의 직분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임금을 허물이 없는 길로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관을 맡는 사람은 그 풍태와 태도, 말과 논의가 모두 임금을 감동하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이 직책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약용이 1789년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고, 1791년 사간원 정언과 사헌부 지평에 차례로 임명되었을 때 정조에게 올린 사직상소 일부이다. 그는 이 자리가 제수되자마자 이렇게 상소를 올려 사직을 청했다. 간관은 임금에게 강하게 간언하고 때로는 신랄하게 비판해야 하는 자리인데, 아직 임금의 제자나 다름없고 어리기에 그 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에 대해 다른 신하들의 견제가 심했다는 점은 놔두더라도, 이것이 정조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
정약용은 또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까지는 업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과거제도의 개선 방향을 상소에 소상히 담아 올렸다. 그의 사직상소가 각별한 이유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과거만 있고 천거(薦擧)가 없다며, 과거시험은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게 하기에 인재를 천거하는 제도를 도입해 선비들이 학문 도야와 자기 수양에 힘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선조들이 왕에게 올렸던 사직상소는 요즘 기관이나 직장에서 내는 사직서나 사표와는 아주 달랐다. 단순히 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라 정치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따지고 임금과 조정에 대한 신랄한 비판까지 포함한 성명서나 의견서 성격이 강했다.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며 양식에 따라 몇 자 적는 오늘날의 사직서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낸 데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을 예고하고 있어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이들로선 사직할 명분이 차고 넘치겠지만, 이것이 정당한지와 대안이 될 합당한 개선책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김대성·제2사회부장 bigkim@kwangju.co.kr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낸 데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을 예고하고 있어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이들로선 사직할 명분이 차고 넘치겠지만, 이것이 정당한지와 대안이 될 합당한 개선책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김대성·제2사회부장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