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개판 오 분 전’
2024년 03월 14일(목) 00:00
한식은 많은 미스터리가 있다. 음식이란 어떤 명문화된 설정이나 정확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카더라’도 흔하다. 언제부터 우리가 삼겹살을 구이로 먹게 되었는지, 돼지갈비는 정확히 어떤 유행으로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미미하다. 있더라도 그야말로 ‘카더라’다. 더 멀리 가면 김치의 핵심 재료인 고추의 전래사도 정확하지 않다. 한국은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이 전했다는 설도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는 한국이 전해줬다고 하는 설도 있다. 고추를 ‘唐辛子’(도가라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당은 중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라고 보기도 한다. 물 건너 온 것에는 흔히 한반도와 중국을 가리지 않고 ‘唐’을 붙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미스터리 중에 부대찌개도 한 몫 한다. 추적을 해봐도 그저 민간의 전언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꿀꿀이죽’ 같은 음식을 분석하고 기록했겠느냐는 말이 타당성이 있다. 부대찌개는 미군이 진주한 이후 즉 일본이 패망한 1945년 이후에 나온 것이 확실한 까닭이다. 대략 1960년대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부대찌개의 원조를 꿀꿀이죽이나 구호식량으로 보기도 한다. 미군 잔반을 받아서 시장 근처에서 끓여 팔았던 것을 꿀꿀이죽이라고 하는데, 서울의 경우 여러 시장 근처에서 1950년대까지 있었다고 한다. 구호식량도 질서 없이 분배되다보니 마구 사람들이 몰려들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초기 식량을 배급할 때 기간요원이 곧 식사 판이 열린다는 뜻으로 “개판 오 분 전!”이라고 외쳤는데 그때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어 먼저 먹으려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開판’이었다는 주장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듯 엉망이 된 상황을 말하는 개판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름 근거가 있는 말이다.

꿀꿀이죽과 부대찌개는 엄연히 다른 음식이라고 보기도 한다. 초기에는 부대찌개도 미군부대 잔반이 섞인 것은 사실로 보인다. 식당에서 일을 돕는 한국인 요리사들이 조리하고 남은 소시지, 고기, 햄 등을 가지고 내다 팔았다는 것을 부대찌개의 원조라 할 동두천이나 의정부의 부대찌개집 주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점차 피엑스(PX)를 통해서 제품이 유출되면서 부대찌개가 본격적으로 요리 대접을 받게 된다. 1970년대 정도로 본다. 물론 요새는 모두 정품을 쓴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재료가 한국이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서다.

맨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한식 얘기로 시작했는데, 실은 부대찌개도 한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요리이고(일본도 미군이 오래 주둔하고 있지만 햄버거는 있어도 부대찌개 같은 요리는 없다) 결정적으로 김치가 들어가서 전혀 다른 요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대찌개는 외국에서도 인기 있는데, 당연히 한식이다. 부대찌개는 김치가 들어가면서 느끼한 음식에서 진하고 개운한 음식으로 진화했다. 요즘은 김치찌개에 ‘햄 사리나 소시지 사리’를 넣어 파는 식당이 많다. 이는 곧 부대찌개의 이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런 ‘사리’를 넣어서 김치찌개를 먹어보면 부대찌개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한 외국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치즈를 많이 먹는 나라다. 어? 우리가 무슨 치즈를 그렇게 많이 먹는다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샌드위치와 햄버거에 넣는 노란색 치즈가 큰 몫을 한다. 다음으로는 모차렐라 치즈다. 피자에 올라가지만, 부대찌개나 김치볶음, 닭갈비 등에도 엄청나게 많이 쓰인다. 통계가 높을 수밖에, 외국에서는 매운 한국식 요리에 모차렐라 치즈를 넣어 밥을 볶거나 구워먹는 걸 자연스레 한식으로 받아들인다. 한식은 정말 생각보다 많이 변하고 있다. 케이푸드의 인기는 이런 한국식 섞어문화, 교배문화 덕을 보고 있다. 그 원조는 아마도 부대찌개일 것이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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