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무결점 바이올린 선율을 온전히 느끼다
2024년 03월 13일(수) 19:20
‘안네 소피 무터 리사이틀’ 리뷰
5년만에 내한공연 클래식 감동 선사
36년 인연 피아니스트 램버트 협연
조화로운 멜로디 환상의 호흡 압도

안네 소피 무터(오른쪽)와 협연자 램버트 오키스. <광주예술의전당 제공>

금빛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린 여제가 입장하자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앨범에서 만나던 것보다 원숙하고 기품 있는 모습이다.

그가 내림활로 현을 긋기 시작하자 관객 중 일부는 눈을 감았다. ‘무결점’ 선율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함께 눈을 감는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18번’. 점차 템포를 높여 알레그로에 진입하자 눈을 감았음에도 바이올린 특유의 울림이 전해온다. 연속적인 음을 탄주하는 기교 데타셰(Detache)도 선명히 그려진다. ‘찬란’하다.

곡이 끝나고 ‘무결점의 여제’를 본 순간, 관객들의 환호와 ‘브라비(Bravi)’가 들려온다. 5년 만에 내한 공연으로 돌아온 바이올린 여제 ‘안네 소피 무터’는 클래식의 아름다움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12일 저녁,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은 5년 만에 내한 공연을 펼치는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감상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포시즌 기획공연으로 마련된 연주회는 데뷔 48주년을 맞은 소피 무터를 오랜만에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소피 무터는 음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폴라상’을 비롯해 지멘스상, 독일음반상, 일본 로열 임페리얼상 등 클래식계 권위 있는 상을 석권했다. 명장 ‘카라얀’의 총애를 받으며 1978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소녀’는, 시간이 흘러 1993년 도이치 그라모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을 발매하는 등 클래식계 여제로 비상했다.

안네 소피 무터(왼쪽)와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의 만남. <안네 소피 무터 홈페이지·광주예술의전당 출처>
이번 공연은 36년간 실내악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가 출연해 환상의 앙상블을 선보였다. 이들은 2006년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을 발매하는 등 음악적 여정을 함께해 왔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18번 사장조 KV.301’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이 곡을 첫 레퍼토리로 선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소나타 18번’은 성인이 된 모차르트가 뮌헨·만하임 등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 선율을 동등하게 주고받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듬해 파리에서 작곡했다. 그런 연유에서 소나타 18번의 서막 장식은, 바이올린이 공연을 주도한다는 강박을 허물고 두 악기가 모두 ‘주역’임을 함의하는 듯했다.

소피 무터의 바이올린과 램버트의 피아노 선율은 조화로운 멜로디를 주고 받았다. 때로 연주를 일시 정지하는 등 교차 연주의 진수를 보여줬는데, 순간순간 몰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환상적인 호흡은 ‘스트링 듀오’ 협주를 보는 듯한 착각도 들게 했다. 물론 피아노는 건반악기이지만 내부에 스트링을 감춘 ‘현악기’이기도 하다. 두 ‘현악기’가 펼쳐내는 하나의 앙상블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다장조, D.934’도 울려 퍼졌다. 슈베르트 말년인 1827년 ‘대중을 위한 공연’을 염두에 두고 창작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 등이 협연해 알려지기도 했다.

‘슈베르트 환상곡’은 창작 당시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혹평을 받았다. 훗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오늘날에는 환상곡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가곡에서 모티브를 얻은 긴 변주곡 파트는 물론, 작은 가곡 주제의 도입과 경쾌한 본래 주제로의 회귀 등을 섬세하게 들려줬다. 현을 가야금처럼 손으로 튕겨 연주하는 ‘피치카토’도 이어졌다.

이 밖에도 클라라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 Op.22’도 연주됐는데 부드러운 보잉(운궁법)이 압권이었다.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 P.110 b단조’도 이목을 끄는 작품이었다.

36년간 인연의 소피 무터와 램버트 오키스의 무대는 그렇게 빛을 발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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