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보물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3월 10일(일) 22:00 가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雙獅子 石燈·국보 183호)은 조형미가 빼어난 걸작이다. 충북 보은 법주사, 경남 합천 영암사지 석등과 함께 통일 신라 후대에 등장한 쌍사자 석등 가운데 하나다. 두 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댄 채 화사석(火舍石, 등불을 밝히는 공간)을 떠받치고 있어 쌍사자 석등으로 부른다.
조선총독부 기수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는 1931년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을 조사한 후 “석탑은 신라말기의 걸작이다. 등롱(燈籠, 석등)은 쌍사자로 구성된 일품이다. 둘 다 국보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보고서를 남겼다. 당시 쌍사자 석등은 3층 석탑과 함께 중흥산성 폐사지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조선총독부 고적 조사위원회는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유물이 내지(일본 본토), 기타로 유출될 것을 우려해 등록하여 보존하고자 한다”고 보물로 지정 의결했다. 문화재 반출로 악명 높았던 일제가 아이러니 하게도 보호에 나선 사례다.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최근 광주박물관이 발간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에 기고한 논문에서 이 석등을 860∼870년대에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도선국사가 출가한 도량이 사사자(四獅子) 삼층 석탑이 있는 구례 화엄사인데다 그가 불교 미술을 섭렵한 덕분에 석탑과 석등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는 추정이다. 도선이 입적하기까지 35년 동안 머물렀던 광양 옥룡사와 직선 거리로 2.5㎞ 떨어진 중흥산성 절터에 석등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전북 남원 실상사와 3.19㎞ 떨어진 백장암에 수철 화상이 조성한 통일신라 석탑과 석등이 있는 것과 맥락이 같다.
진 연구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선과 수철은 스승의 선맥(禪脈)을 잇지 못해 각각 옥룡산문(玉龍山門)과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열었다. 이들이 각자 산문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조성한 게 쌍사자 석등과 고복형(鼓腹形, 북을 옆으로 엎어 놓은 모양) 석등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발표된 것을 계기로 후속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광양의 유일한 국보가 재조명됐으면 한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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