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봄으로 가는 길, 광양 매화마을
2024년 02월 21일(수) 23:00
우수가 지나고 우리는 이제 막 봄의 문을 열었다. 올해는 예년보다 유난히 봄꽃의 개화가 빠르다. 복수초와 수선화도 모자라 남쪽에서부터 풀과 나무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봄이란 계절을 떠올릴 때 그리는 풍경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 봄이란 이름은 화려한 튤립이 펼쳐진 풍경을 떠올리게 할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로수 왕벚나무가 꽃을 피운 풍경을, 또 누군가에게는 민들레가 콘크리트 사이에 피어난 풍경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나에게 봄은 매화가 피어난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다 가시지 않은 황량한 풍경 속에서 팝콘을 닮은 꽃이 가지마다 자잘히 피어난 모습은 봄의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매화, 다시 말해 매실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아니다. 이들은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주변에 널리 심겼다. 그 덕에 우리가 매화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도심과 외곽 가릴 것 없이 많으나, 나는 왠지 ‘매화’하면 어김없이 광양 매화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이삼 년에 한 번은 꼭 광양에 가 매화를 관찰했고, 그와 함께 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매화는 내게 봄을 여는 열쇠이고 그 열쇠를 찾으러 나는 광양에 가는 것이다.

매화는 매실나무의 꽃을 가리킨다. 꽃을 관상하는 목적에서 심어진 경우 매화나무라고도 부르지만 국가 표준 식물 목록상 추천하는 정명은 매실나무다. 우리가 매실나무와 매화나무 중 이름을 선택하는 기준은 꽃과 열매 중 어떤 부위를 중점으로 이용하기 위해 심었는가의 문제인 셈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매실나무는 2~3월에 꽃을 피우고 5월 즈음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둥그스름한 열매를 맺는다.

매실나무가 속한 장미과 벚나무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벚나무 종류와 살구나무, 앵도나무, 복사나무, 자두나무 등이 있다. 이들도 이른 봄꽃을 피우지만 매실나무가 그중 개화가 가장 빠르다. 꽃을 빨리 피우는 만큼 열매도 가장 빨리 맺는다. 나는 매실나무를 가리켜 ‘정원의 트렌드 세터’라 부르고 싶다. 누구보다 계절에 앞서 가기 때문이다.

매실나무의 열매는 다른 유실수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나 제 색으로 익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들이 스스로 다 익을 때까지 그냥 두질 않는다. 우리는 다 익지 않은 열매를 따 매실액, 매실주 등을 만든다. 생과로 먹지 않을 뿐 여느 과일만큼 효용성이 높다.

매화 축제가 열리는 광양 매화마을에는 인간에게 열매를 제공하기 위해 심긴 나무들이 살고 있다. 식물에게 있어 꽃은 씨앗을 번식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옵션에 가깝다. 그러나 매화마을을 찾는 관람객에게 매실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꽃이다.

매화 축제 기간, 광양 매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꽃내음이 난다. 가지에 붙은 수많은 꽃송이 덕에 공기에서마저 향이 나는 것도 같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실린 향기에 취해 마을을 오르면 어느새 매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나는 늘 마을로 올라갈 때 한 번, 내려갈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 매실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매화 축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매화가 피는 시기 밖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멀리에서 보면 황토색 겨울 풍경에 매화마을 주변만 화사해 이 모습이 이질적으로도 느껴진다. 매화를 보러 온 사람들의 얼굴 또한 유난히 밝다. 황량함을 뚫고 피어나는 매화가 옛사람들한테 용기와 도전을 북돋아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봄은 참 재밌는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복수초가 피었다는 기사를 볼 때, 꽃집에서 수선화 화분을 만날 때, 입춘이 된 순간…수시로 봄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봄꽃이 피고 연둣빛 잎이 돋는 전형적인 봄 풍경은 4월 말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봄은 실제 겪기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계절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는 3월 8일에도 어김없이 광양 매화축제가 열린다. 나는 그곳의 매화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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