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과거와 현재 공존…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2024년 02월 19일(월) 19:30
멋과 맛 함께 남도유람 - 나주
천년고도
금성관·목사내아·서성문 지나
동학농민 흔적 따라가는 역사여행
국립나주박물관
대안·덕산·신촌리 일대 대형 고분들
마한 존재 입증…금동관·신발 출토

국립나주박물관에 전시된 ‘나주 서성문안 석등’.

‘천년목사고을’ 나주의 진산(鎭山)인 금성산 정상부가 57년만에 상시 개방됐다. 새해 첫날, 나주 시민들은 금성산 노적봉에서 해맞이 행사를 했다. 금성관과 목사내아(금학헌), 서성문을 거닐며 나주의 역사를 만난다.

도시재생 문화공간인 ‘나주정미소’(情味笑)도 나주여행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주읍성권과 영산포 근대문화권, 반남고분군, 도래 전통한옥마을 등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주로 2000년 시간여행을 떠난다.

◇나주읍성 골목에서 만나는 천년 역사의 숨결

지난 2018년은 전라도 정명(定名) 100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 1018년 고려 현종이 행정개편을 하면서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이름을 붙인지 꼭 1000년을 맞았다. ‘사매기’라는 지명은 거란족 침입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나주로 몽진(蒙塵)한 고려 현종의 흔적이 남아있다.

‘호남의 행정중심지’였던 나주에는 금성관(보물 제2037호)과 목사내아(금학헌) 등 옛 관청건물이 오롯하게 보존돼 있다. 나주읍성 한 중심에 자리한 금성관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闕牌)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놓고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망배를 올리던 공간이다. 금성관 좌우 부속건물인 동익헌·서익헌은 사신이나 중앙서 내려온 관리들이 묵는 객사로 활용됐다. ‘금학헌’(琴鶴軒)으로 불리는 목사내아(內衙)는 나주 목사가 거처하던 살림집이었다. 성안에 있던 관아건물 가운데 ‘금성관’, ‘정수루’(동헌 출입문)와 함께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전통문화 체험공간과 숙박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과 나주 수성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성문.
금성관에서 목사내아(금학헌)를 지나 걷다보면 서성문(서문)에 닿는다. 130년 전인 1894년 7월부터 1895년 1월까지 나주성을 빼앗으려는 동학농민군과 나주성을 지키려는 수성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적 현장이다. 동학농민군은 금성산 꼭대기에서 내려와 수차례 서문을 집중 공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농민군은 화승총과 죽창 등을 소지한 반면 나주성을 지키던 병사들은 군사훈련을 받은 정예군으로 대완포(大碗砲)와 천보(千步) 조총 등으로 무장했다.

나주 동학의 흔적을 따라가는 역사여행의 발걸음은 지난해 10월 나주시 죽림동 나주 역사공원에 세워진 ‘나주 동학농민혁명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로 향한다. 한일 지식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돌비석 앞에서 130년 전 행해진 일본 토벌군의 동학농민군 학살과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 ‘상생’에 대해 새삼 돌이켜본다.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옹관. 알 모양을 한 독널무덤(옹관)은 마한 문화를 상징한다.
◇마한(馬韓)왕국 금동관·대형 고분…국립 나주박물관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해발 96.8m)을 중심으로 대안리와 덕산리, 신촌리 일대에 대형 고분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 들판에 봉긋 솟은 고분들은 예사롭지 않다. 역사서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엄연하게 존재를 ‘마한(馬韓)왕국’의 존재를 입증한다.

나주 들녘을 가로지르는 지방도 820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국립 나주박물관을 눈앞에 두고 ‘마한 조형물’과 마주한다. 하단에는 마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들이 새겨져 있다. 국립 나주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상설전시실과 로비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15일 재개관했다. 상설 전시실내 ‘고분문화실Ⅰ’에 들어선다. 마한 문화를 상징하는 크고 작은 옹관들이 눈길을 끈다. 마한인들의 왜 알 모양의 옹관(독널무덤)을 음택(陰宅)으로 삼았을까? 영산강 중·하류 지역인 나주·무안·영암 등지에서 독특하게 독널무덤을 매장시설로 활용했다고 한다. 옹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까마득한 옛날옛적 마한인들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생각해본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12월, 조선총독부 특별조사단이 신촌리 9호분과 덕산리 4호분을 발굴 조사했다. 이때 신촌리 9호분 ‘을관’이라 이름붙인 대형 옹관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9호분 정상부의 표토(表土)로부터 40~60㎝ 깊이에 묻혀있던 첫 번째 옹관이었다. 출토 100주년 기념 도록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2017년)에는 “신촌리 9호분의 조사는 한반도에서 금동관이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최초의 자료이면서 동시에 거의 훼손되지 않은 완벽한 모습의 금동관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는 사건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국립 나주박물관은 ‘신촌리 금동관’(국보 제295호)을 별도의 방에 전시하고 있다.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국립 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에 들어선 국립 나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탐방객은 ‘신촌리 금동관’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눈다.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과 꽃봉우리, 구슬장식, 연꽃문양, 파도무늬….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통해 마한의 역사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드는 듯하다. 이와 함께 ‘역사문화실’에는 영산강 유역과 나주 들녘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을 한눈에 보여준다. 토기의 모양 또한 이채롭다. 마한인들의 부뚜막을 구성하는 유물도 선보인다.

전시실 마지막은 ‘나주 서성문안 석등’(높이 3.26m)으로 마무리한다. 팔각 기둥에 새겨진 ‘대안(大安) 9년’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1093년(고려 선종 10년)에 흥룡사에 딸린 석조물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1929년 일제에 의해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2017년 국립 나주박물관으로 돌아왔다. 국립 나주박물관 ‘실감콘텐츠 체험관’은 핫 플레이스이다. 1부 ‘고분, 별을 품다’와 2부 ‘꿈의 문양, 빛으로 새기다’를 주제로 영산강 유역 독널과 장례문화를 미디어아트로 보여준다. 3개 벽면에 파노라마로 투영되는 영상들은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또한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들판에 자리한 ‘나주 복암리 고분군’(국가사적 제404호)에서 생소한 마한의 역사를 만난다.

◇영산강 황포돛배와 영산포 홍어거리

“전라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영산강이 흐른다. 전라도 사람들의 핏줄과도 같은 영산강은 한과 희망을 안고 흐른다.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 빛과 그림자를 안고 흘렀고 지금도 그렇게 흐른다. 그래서 영산강은 꺾일 줄 모르는 전라도의 힘이 되었다. 영산강과 함께 흘러온 전라도 사람들의 한은 좌절과 체념의 한숨이나 패자의 넋두리가 아닌, 삶의 의지력이고 생명력이며 빛나는 희망인 것이다.”

문순태 작가는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 ‘작가의 말’에서 영산강을 이렇게 표현한다. 작가는 노비 세습제가 풀린 1886년부터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에 이르는 한민족의 수난사를 9권의 장편소설로 형상화했다. 완간까지 꼬박 30년이 소요된 대작이다. 1930년에 329만4000평의 광활한 토지를 소유했던 일본인 지주 ‘쿠로즈미 이타로’ 저택은 3월부터 문순태 작가의 ‘타오르는 강 문학관’으로 바뀌어 활용된다. 1935년 건축 당시 청기와와 목재 등 모든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주시 왕곡면 국도 13호선 도로변에는 ‘나주 궁삼면 항일 농민운동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쌀 도정시설에서 주민들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나주 정미소.
영산포는 홍어 요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산강변에 조성된 영산포 홍어거리에 서면 그야말로 홍어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 있다. 만약 눈을 감고 있다고 해도 홍어 요리점이 밀집한 거리임을 금새 눈치챌 수밖에 없다. 이곳 홍어는 발효된 것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홍어냄새가 더욱 진하다.

영산포 복진 슈퍼와 삼화홍어 사이 골목길 이름이 ‘죽전골목’이다. 일제강점기때 나무장사들이 새벽마다 장사진을 이루자 죽집이 많이 생겨나면서 유래한 지명이다. 과거의 흥정거리던 거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지명에서 옛 영산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영산포에서는 영산강 하구둑 건설 후 자취를 감췄던 황포돛배 체험(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을 할 수 있다.

유장한 영산강과 한반도 지형을 닮은 물돌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느러지 전망대’(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에서 나주여행을 마무리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오메가(Ω) 모양으로 휘돌아가는 영산강 물돌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물이 휘돌아가며 느려지는 곳이라 ‘느러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바람이 아직 매섭다. 그러나 바람결에 화신(花信)이 실려있으리라.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나주=김민수 기자 kms@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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