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 없는 비극적 세상…디스토피아의 세계
2024년 02월 01일(목) 19:40
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콘크리트 유토피아
지진서 살아남은 ‘황궁아파트’
굶주린 방랑자·혹한의 추위 속
이기심이 만든 그들만의 유토피아
■황야
생체 실험으로 만들어진 좀비

외부인들을 가로막는 황궁아파트 입주자들. 결국 대치하던 외부인들은 대부분 밖으로 내몰려 동사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종말 이후의 삶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들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해 대종상 6관왕을 거머쥔 ‘콘크리트 유토피아’(콘유·감독 엄태화)가 그 대표주자다. 지난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허명행 감독의 ‘황야’도 이목을 끈다. 두 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해 촬영 세트장 일부가 동일하다. 두 디스토피아 세계가 그리는 ‘콘크리트 유니버스’로 들어가 보자.

◇그들만을 위한 지상 천국…… ‘콘크리트 유토피아’

바야흐로 ‘아파트 전성시대’다. 꼭 아파트만이 아니라도, 내 집 장만이 꿈이 된 오늘날 ‘아파트’란 ‘갖지 못할 안식처’를 표상하는 것 같다.

뒤틀린 사회의 단면과 그릇된 욕망이 결집해 탄생시킨 영화가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현재 티빙, 넷플릭스 등 OTT에서 상영 중. 작품은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를 각색해 종말 속 인간들의 이기심과 한국의 ‘아파트 공화국’ 실태 등을 그렸다.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유토피아가 없다. 아파트 밖에는 굶주린 방랑자들이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돌고, 엄동 혹한의 추위가 몰아친다. 다가온 지진은 신의 형벌 그 자체다. 아파트 ‘네임벨류’에 따라 서로를 구분하고 입지에 따라 계층이 갈리는 문제들에 대한 ‘신의 문책’으로 보였다.

재난이 닥쳐왔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집단주의에 빠져 ‘아파트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 아수라장 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생경했다.

영화 속 아파트가 복도식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 복도식인 탓에 주민 간 왕래를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고 상호 감시도 가능했다.

미셸 푸코는 일찍이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 형태 ‘파놉티콘’에서 착안, 인간을 감시하는 원형 감옥을 상상했다. 겉에서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물은 정보 차이와 위계를 형성하고 감시자인 교도관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

파놉티콘이 작품 속 ‘황궁 아파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몰락한 세상 속에서 유일한 유토피아였던 황궁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죄수들과 비교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파트 동·호수는 죄인들의 수인번호(囚人番號)처럼 느껴졌다.

◇멸망한 세상, 사냥꾼이 필요하다… ‘황야’

한편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멀티 유니버스를 그린 영화 ‘황야’는 멸망한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악어 사냥꾼 남산(마동석 분)을 중심으로 비극적 세계를 보여준다. 콘유에 나왔던 황궁아파트 103동의 모습도 얼핏 볼 수 있다.

영화는 콘유의 스핀오프(속편)라기보다는 오히려 독립적인 에피소드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전작을 보지 않고도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야만스럽게 생존하는 황야의 무법자가 되기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일한 의사 생존자 양기수(이희준 분), 지완(이준영) 등과 협업해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

작품은 마동석류 액션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영화 ‘범죄도시’, ‘이터널스’ 등에서 보여줬던 주먹질 대신 엽총을 선택해 호방한 볼트 액션을 선보인다.

생체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좀비들도 흥미롭다. 콘유에서는 좀비와 다름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했지만, 황야는 좀비 역을 등장시켜 K-좀비물의 계보를 이어간다.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는 명작 ‘매드맥스’풍의 척박함을 연상시켰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지만 디스토피아 속에서 어디에선가 벌어질 법한 상황이라는 점은 섬뜩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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