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익한 인터뷰]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인생 문장’-한동일 교수
2024년 01월 31일(수) 11:10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동아시아 최초 변호사
가난과 운명을 딛고 세계적 지식인이 된 한동일의 인생 문장
“모든 고통은 시간에 의해 가벼워지고 옅어질 것입니다.”
(Omnes dolores tempore lenient)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이자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는 알아두면 유익한 지식과 함께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회,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만나고 싶은 셀럽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지식창고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라틴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라틴어는 낯설고 어려운 고대 언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언의 상당수가 라틴어에서 유래될 정도로 여전히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언어이다. 라틴어에 대한 독보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한동일 작가는 바티칸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700년 역사상 최초의 동아시아 변호사이다. 대학교 강의에서 시작해 라틴어 열풍을 불러일으킨『라틴어 수업』은 100쇄를 돌파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세계적인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왔다. 한동일 작가에게 라틴어는 결핍과 좌절을 극복하게 만든 힘이었고 삶의 별을 찾는 항해에서 등대 같은 존재였다.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10대 시절부터 사제가 된 30대, 로마 유학을 지나 바티칸의 변호사가 될 때까지 평생을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한동일 작가의 치열하고 찬란했던 삶을, 라틴어 인생 문장으로 만나보자.

Q. 교황청 변호사, 교수, 작가 등 여러 직함을 갖고 있는데 자기 소개를 한다면?

그 모든 직함이 저를 설명하는, 저란 사람의 화려한 담벼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라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에서 가장 크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사제라는 직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유의지로 2021년 사제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저를 가장 잘 소개해 줄 수 있는 저의 신분은 작가입니다. 아울러 종종 사제신분을 내려났기에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자격도 끝난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것은 자격증이기에 사제신분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Q. 라틴어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제 유년시절은 끝이 안 보이는 어둡고 긴 터널이었어요.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어요. 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한 후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라틴어 공부의 긴 역사가 시작된 셈이죠. 2001년 로마로 유학을 떠난 후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2010년에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하던 중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초급 라틴어’라는 강의를 맡았고 라틴어 수업이 인기를 얻으면서 라틴어와 로마법 교수로, 또 라틴어 관련 책을 쓰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오랜 시간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공부를 해왔는데 라틴어 공부를 통해 제 인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Q.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공부에 진심이신 것 같아요?

공부가 무엇인지 질문을 자주 받는데, 어떤 데에서는 통념을 깨는 거라고 답했지만, 그 통념을 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소함이에요. 우주에서 바라볼 때 어떤 한 별에서 다른 별까지 측정값이 조금만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게 되잖아요. 오차 범위를 넓히는 거죠. 이제까지 외적인 부분에서는 성과를 많이 냈어요. 성취가 있었으니 다른 부분은 넘어갔죠. 하지만 실상은 외적인 결과를 잘 낸다고 해서 내가 일상에서 관계를 잘 맺는다는 건 전혀 아닌데 그 현실을 이제야 마주친 거죠. 전에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도 잘 맺으려고 하지 않았고, 요즘 말로 손절도 많이 했어요. 요즘은 역으로 손절을 당하면 이런 마음이었겠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늘 쫓기고 다그쳤죠. 성격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집안의 아이로 태어나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거예요.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운이 좋게 계속 이어나가고 받았던 게 있어요.

Q. “라틴어가 어렵다 한들 인생보다 어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자신만의 공부법이 있나요?

라틴어의 ‘습관’이라는 단어는 ‘하비투스(Habitus)’입니다. 단어의 유래가 재밌는데 이 명사를 살펴보면 ‘습관’이라는 뜻 외에도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수도사들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마치고 난 뒤 오전 노동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기 전 낮 기도를 했어요. 점심식사 뒤에는 잠깐 휴식 뒤 오후 노동을 하고 저녁 식사 전에 저녁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끝 기도를 드렸죠. 그리고 일괄적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입는 옷 ‘하비투스’에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된 거예요. 공부나 일을 해내려면 스스로의 리듬을 잘 조절해야 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잘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패턴과 성향을 잘 분석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실패할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의기소침해할 필요가 없어요.

Q. ‘라틴어 수업’은 100쇄를 넘긴 스테디셀러로 유명한데요. 얼마 전 새 책이 나왔죠.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세요?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저자 서문에 밝힌 대로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저를 일으킨 라틴어 문장들을 모아둔 책입니다. 잠언처럼, 기도처럼, 혼잣말처럼 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입 안에 넣고 굴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문장입니다. 무수한 제 인생의 라틴어 문장들 가운데 그에 얽힌 철학적 단상과 제 지난날에 대한 고백이 터져 나오는 문장들로 제가 마음을 기대고 살았던, 제 생의 응원가이자 반딧불이 되어 준 라틴어 문장들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책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몸에 새기는 타투 문구 가운데 라틴어 문장이 자주 보입니다. 하지만 아모르 파티(Amor fati), 카르페 디엠(Carpe diem),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널리 알려진 말 외에도 우리가 새겨야 할 라틴어 문장들은 별처럼 많습니다. <라틴어 인생 문장>은 ‘라틴어’와 ‘인생’은 평생 암호처럼, 주문처럼 읊조릴 만한 한 문장, 당신의 마음과 인생에 영영 지워지지 않도록 타투처럼 새겨둘 만한 문장을 만날 기회를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Q. 힘들고 어려운 삶에 정말 한문장의 말이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 툭 던진 한마디가 내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저는 문장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내 삶이 풍요롭고 할 것이 많은 환경에 있을 때보다 척박하고 가진 것이 없고 그리고 절박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한 문장이 빛났던 것 같아요.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뭔가 이루려면 힘들잖아요. 그런 와중에 뭔가 희망을 가질 수 계기가 있다고 하면 저는 그게 책 속의 한 문장, 나를 울리는 한 문장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Q. 작가님의 삶을 일으켜 세운 라틴어 문장이 있나요?

제게 힘이 되었던, 힘이 되는 라틴어 문장은 어떤 한 문장만은 아닙니다. 방황하던 10대 소년 한동일, 진리를 목마르게 찾아 헤매던 20대와 30대의 청년 한동일의 삶에서 책 속의 좋은 구절 하나, 시선과 마음이 머물게 하는 포스터 속 한 문장을 기억해 두었다가 독서실과 공부방 책상 앞에 붙여놓곤 했습니다. 몸은 이미 그날의 체력을 다 쓰고 항복했는데도 맘속에 불안과 열망이 들끓어 차마 잠자리에 들지 못하던 때, 그 문장들은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믿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고통은 시간에 의해 가벼워지고 옅어질 것입니다.”

(Omnes dolores tempore lenientur et mitigabuntur.)

옴네스 돌로레스 템포레 레니엔투르 에트 미티가바분투르.

Q. 지금은 평안해지셨습니까?

제가 사는 공간은 늘 같았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밝힌 대로 저는 2021년 사제직을 내려놓았고,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제가 소속된 곳이 어디건 공부하고 기도하는 삶에는 크게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일상의 루틴은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었지만, 소속이 없다는 것은 인생에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여백이라 여겨도 세상의 관점에서는 공백이었습니다. 난생처음 조망하는 삶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한발 한발 두리번거리며 높은 데서 내려와 미지의 것들과 부딪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됩니다. ‘편안해졌다, 편안해지고 있다’라는 말보다는 여전히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묻는 시간 같습니다.

Q. 광주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부산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받았지만, 원래는 광주 일곡동에 있는 ‘예수고난회’라는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래서 예전 쌍촌동에 있던 신학교에서 수학을 했습니다. 저는 원래 서울 태생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집을 떠나 온 곳이 광주였어요. 이곳에서 수많은 정겨운 사람과 인심을 보고 만났지요. 아울러 서울만 살았으면 몰랐을 남도의 자연과 음식, 소리, 사람들을 만난 것은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회라는 수도회를 나오기로 결정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기억 속에 광주는 예리한 칼로 가슴을 도리듯 아픈 기억으로 남은 것도 있습니다. 퇴회하기 전 제가 했던 것은 무등산에 올라 그곳에서 잠시 생각을 다듬고 내려왔습니다.

Q. 광주일보 구독자들에게 힘이 되는 라틴어 한 문장 알려주세요?

라틴어 인생 문장에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입니다. Vexatio storia fiat. (벡사티오 스토리아 피아트)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한다는 것은 특별함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나의 오랜 아픔을 흔해빠진 상처로 뭉개서 술자리에서나 내 편을 들어줄 게 분명한 사람 앞에서 하소연하듯 풀지 않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내가 살아온 증거로써 귀하고 신중하게 풀어내는 일입니다.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하려면 시간과 견딤이 필요합니다. 아픔이 고여 썩고 무르면 사람을 망치지만, 아픔이 숙성되어 스토리가 되면 한 사람의 생을 증언하는 역사가 됩니다. 그렇게 광주일보 구독자 여러분들도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한동일

한국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로서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다. 2001년 로마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2003년 교회법학 석사 학위를 최우등으로 수료했으며 2004년 동대학원에서 교회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수업’을,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유럽법의 기원’과 ‘로마법 수업’을 강의했다. 서강대학교 현장 강의를 토대로 펴낸 『라틴어 수업』은 100쇄를 돌파하며 40만 부가 판매된 스테디셀러로 일본에서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지은 책으로는 『로마법 수업』, 『믿는 인간에 대하여』, 『법으로 읽는 유럽사』,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교회의 재산법』, 『카르페 라틴어 종합편』, 『한동일의 라틴어 산책』 등이 있으며, 『카르페 라틴어 사전』 등의 라틴어 사전을 편찬하고 『동방 가톨릭교회』, 『교부들의 성경 주해 로마서』, 『교회법률 용어사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사진=정지효 작가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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