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관광 말고 여행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01월 28일(일) 23:00 가가
창으로 다가간다.
차나 기차를 타면 누구나 창가에 앉는다.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 구비를 넘고 터널을 지날 때는 오금이 저리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더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스나 기차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달린다. 저 멀리 마을들도 여기저기 창문에 불을 밝히고 세상을 기웃거린다.
창 앞에 선다. 바람도 소리들도 세차게 창을 두드린다. 유리에 몸을 던진 빗방울은 낭자하게 무너져 내린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엔 뙤창이 있었다. 유리가 귀한 시절, 방에 앉아 나는 눈꼽재기창 아기 손바닥만 한 유리로 마당과 밖을 보곤 했다. 동량치가 오면 없는 척 외면도 했지만, 밤새 소복소복 내리는 함박눈이나 빨랫줄에 앉아 신나게 조잘대는 참새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요즘도 창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사람들은 무더기무더기 창 앞에서 서성인다. 누구의 창은 요란하게 흔들리지만, 누구의 창은 사방을 두루두루 살피도록 고요하다. 누군 큰 창이지만 편각 유리로 비틀어 보고, 또 누군 작지만 따뜻하게 구석구석까지 본다. 어떤 이의 창은 단단히 열쇠로 굳게 닫혀 있고, 또 어떤 이 창 앞은 사람들로 복작복작 만원이다. 어떤 이는 그 창에서 희망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절망을 읽는다.
내 창 앞에 펼쳐진 세상은 언제나 소삽하다. 누군 취업하러 달려가고, 누군 급히 병원에 실려 간다. 누군 엉엉 울고 누군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여기저기 각자 달리고 또 뛴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내게도 또 하나 감춰진 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눈은 평소처럼 밖으로 향해 있는데 갑자기 어떤 눈이 내 안을 뚜렷이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건 밖으로 열리는 창이 아니라 안으로만 열리는 창이 분명했다.
슬그머니 그 창을 열고 들여다본다. 나를, 내 깜깜한 속내를…. 내 창을 열고 내 안을 보는 순간 거기에 또 다른 세상과 또 다른 내가 웅크리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우왕좌왕,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비틀거린다. 그런 상처 가득한 나에게 가만가만 다가간다. 누구나처럼 나 역시 나를 다독이지 못하고 관광하기에 급급했다. 내 안에 허깨비를 바라본다. 조용조용 다가가 나를 껴안는다. 진정 여행자로 개별자로 뚜벅뚜벅 세상에 나가도록 토닥이고 또 위로한다.
밖을 보면 관광이고 안을 보면 여행이다. 숙소나 먹거리로 집착하면 그건 관광이다.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관광이 아니라 어느 순간 어디에서나 여행이다. 관광은 육체적 포만을 꿈꾸지만 여행은 지적 허기를 채우는 일이다. 이제는 바람 한 점에서 생명의 경건함을, 저녁노을에서도 우주의 장엄함을 느끼려 한다. 내 가슴을 누가 뛰도록 하기 보다는 이제 내가 스스로 내 가슴을 뛰게 하려 한다.
누구와 여행할까 고민하지도 않는다. 누굴 만날까 어떤 일이 생길까 호기심 가득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어디로 갈까 더 이상 연연하지도 않는다. 나를 깨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관광은 세상을 스치듯 바라보지만 여행은 내 자신을 구석구석 점검하고 탐색하여 살아있도록 한다.
더는 창을 닫지 않는다. 우린 너무 창을 단단히 닫고 살아간다. 상대도 보지 않고 자신도 돌아보지 않는다. 더는 미움과 혐오 가득 편을 가르는 극단의 창은 안 된다.
안을 보는 눈, 심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대 신비로운 세상이다. 거기 창살을 꽃으로 새긴다. 연꽃과 국화, 그리고 매화로 깎아 내 심안 가득 향기가 넘치도록 한다. 세상을 꽃처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의 꽃살창,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내면의 눈은 삶의 구심점이다. 밖이나 겉으로 튀어나가려는 삶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준다. 늘 자기 위치를 바로 알고 품격 있게 살도록 한다.
자기 안을 볼 수 있는 창을 가진 이, 거울 앞에서 겉 화장만 하는 관광이 아닌, 그런 사람이 인생의 진짜 여행자는 아닐는지.
차나 기차를 타면 누구나 창가에 앉는다.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 구비를 넘고 터널을 지날 때는 오금이 저리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더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스나 기차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달린다. 저 멀리 마을들도 여기저기 창문에 불을 밝히고 세상을 기웃거린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엔 뙤창이 있었다. 유리가 귀한 시절, 방에 앉아 나는 눈꼽재기창 아기 손바닥만 한 유리로 마당과 밖을 보곤 했다. 동량치가 오면 없는 척 외면도 했지만, 밤새 소복소복 내리는 함박눈이나 빨랫줄에 앉아 신나게 조잘대는 참새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내게도 또 하나 감춰진 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눈은 평소처럼 밖으로 향해 있는데 갑자기 어떤 눈이 내 안을 뚜렷이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건 밖으로 열리는 창이 아니라 안으로만 열리는 창이 분명했다.
슬그머니 그 창을 열고 들여다본다. 나를, 내 깜깜한 속내를…. 내 창을 열고 내 안을 보는 순간 거기에 또 다른 세상과 또 다른 내가 웅크리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우왕좌왕,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비틀거린다. 그런 상처 가득한 나에게 가만가만 다가간다. 누구나처럼 나 역시 나를 다독이지 못하고 관광하기에 급급했다. 내 안에 허깨비를 바라본다. 조용조용 다가가 나를 껴안는다. 진정 여행자로 개별자로 뚜벅뚜벅 세상에 나가도록 토닥이고 또 위로한다.
밖을 보면 관광이고 안을 보면 여행이다. 숙소나 먹거리로 집착하면 그건 관광이다.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관광이 아니라 어느 순간 어디에서나 여행이다. 관광은 육체적 포만을 꿈꾸지만 여행은 지적 허기를 채우는 일이다. 이제는 바람 한 점에서 생명의 경건함을, 저녁노을에서도 우주의 장엄함을 느끼려 한다. 내 가슴을 누가 뛰도록 하기 보다는 이제 내가 스스로 내 가슴을 뛰게 하려 한다.
누구와 여행할까 고민하지도 않는다. 누굴 만날까 어떤 일이 생길까 호기심 가득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어디로 갈까 더 이상 연연하지도 않는다. 나를 깨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관광은 세상을 스치듯 바라보지만 여행은 내 자신을 구석구석 점검하고 탐색하여 살아있도록 한다.
더는 창을 닫지 않는다. 우린 너무 창을 단단히 닫고 살아간다. 상대도 보지 않고 자신도 돌아보지 않는다. 더는 미움과 혐오 가득 편을 가르는 극단의 창은 안 된다.
안을 보는 눈, 심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대 신비로운 세상이다. 거기 창살을 꽃으로 새긴다. 연꽃과 국화, 그리고 매화로 깎아 내 심안 가득 향기가 넘치도록 한다. 세상을 꽃처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의 꽃살창,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내면의 눈은 삶의 구심점이다. 밖이나 겉으로 튀어나가려는 삶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준다. 늘 자기 위치를 바로 알고 품격 있게 살도록 한다.
자기 안을 볼 수 있는 창을 가진 이, 거울 앞에서 겉 화장만 하는 관광이 아닌, 그런 사람이 인생의 진짜 여행자는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