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유달산의 노란 요정, 털머위
2024년 01월 24일(수) 23:00 가가
내 작업실 근처에는 제철 나물 반찬이 나오는 식당이 있다. 나는 이곳의 머위잎장아찌를 특별히 좋아한다. 봄에 딴 머위 잎을 간장에 달여 만드는데, 쓴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 머위잎장아찌 맛을 본 후 나물이 가진 쌉싸름한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6년 전 우리나라 약용식물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에서 머위를 관찰한 적이 있다. 초봄 다른 식물이 잎을 틔우기 시작할 때 이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머위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독특한 형태에 매료되어 주변에 모인다. 그러나 식탁 위의 머위에 익숙한 이들조차 꽃을 보고 머위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어린 머위 꽃송이를 튀겨 먹기도 한다. ‘식물도감’이란 일본 영화에는 먹음직스러운 머위 꽃 튀김이 등장하는데, 꽃에서는 잎과 비슷한 쓴맛이 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에는 ‘머위’의 이름을 빌린 식물, 털머위가 자생한다. 머위와 털머위. 둘은 이름만으로는 한 가족 같지만, 이름만 비슷할 뿐 형태도 성격도 매우 다르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 즈음 털머위는 국화과다운 형태의 노란 꽃을 피운다. 이들의 크고 둥근 잎은 꼭 머위의 그것과 닮았다. 반면 긴 꽃대에 핀 노란 꽃은 곰취 꽃을 연상케 한다.
머위에서 ‘털’이 붙은 이 식물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들 몸에 털이 어디 있냐 의아해 하곤 한다. 식물에는 막상 이름에서 드러나는 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잎 뒷면과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털이 밀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털머위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주로 분포한다. 나는 지난 가을 목포 유달산 자락에서 털머위를 실컷 보았다. 목포에서 강의가 있어 목포 시내에 간 김에 가까운 유달산에 들렀다. 강의 시간까지 두어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달리 시내 밖 다른 장소에 갈 이유가 없었다. 유달산에 오르자 산책로를 따라 심어진 금목서 근처에서 꽃 사진을 찍는 주민들이 보였다. 금목서 아래에선 털머위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유달산에는 털머위가 많다. 정자에 앉아 대화 중인 동네 어르신들 주변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 발길 끝에, 화장실 길목에, 산의 후미진 구석까지 털머위는 뿌리를 뻗고 있다. 사실 이들은 워낙 번식력이 좋은 식물이다. 바닷가의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하여 바닷가에서 자주 보이기 때문에 갯머위라고도 부른다.
나는 무릎을 꿇어 털머위 잎을 자세히 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이들 잎은 머위와 전혀 달랐다. 잎 뒷면의 털 유무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털머위는 잎 색이 진녹색에 잎 앞면에는 코팅이 된 듯 광택이 있다. 잎의 두께도 비교적 두껍다. 바닷바람과 염분으로부터 접히고 찢기기 쉬운 넓은 잎을 지키려 이처럼 진화한 듯하다.
일본에는 털머위속의 다른 종도 있다. 종소명 히베르니플로룸(hiberniflorum). 이들 또한 겨우내 정원에서 사람들에게 화사한 노란 꽃을 선사한다. 일본 고치현의 마키노 식물원에는 가을과 겨울 유달산의 털머위처럼 이들 꽃이 널리 핀다. 식물 앞에는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가 그린 도해도도 함께 그려져 있다. 이들을 명명하고 기록을 남긴 이가 바로 식물원의 주인공, 마키노 도미타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기고 간 그림과 식물을 떠올리며, 나도 요즘 털머위를 스케치하고 있다.
11월이 되면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는 꽃은커녕 너른 활엽수 잎조차 만날 수 없다. 나는 약 5개월 동안 이곳에서 초록의 너른 잎들을 그리워할테지만, 남도의 사람들, 적어도 목포의 시민들은 가까운 유달산에 올라 털머위와 그밖의 수많은 활엽수를 만날 수 있다. 시내에 이토록 오르기 좋은 산이 있다는 것, 그곳에서 사계절 내내 푸릇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늘 부럽다.
지금 털머위 줄기 끝에는 열매가 풍성하다. 열매에는 털이 밀생한다. 많은 생물이 추위에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털머위는 온몸에 치밀하게 난 털로 자신을 지키고 멀리 또 많이 번식해 나갈 것이다.
<식물 세밀화가>
머위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독특한 형태에 매료되어 주변에 모인다. 그러나 식탁 위의 머위에 익숙한 이들조차 꽃을 보고 머위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어린 머위 꽃송이를 튀겨 먹기도 한다. ‘식물도감’이란 일본 영화에는 먹음직스러운 머위 꽃 튀김이 등장하는데, 꽃에서는 잎과 비슷한 쓴맛이 난다고 한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 즈음 털머위는 국화과다운 형태의 노란 꽃을 피운다. 이들의 크고 둥근 잎은 꼭 머위의 그것과 닮았다. 반면 긴 꽃대에 핀 노란 꽃은 곰취 꽃을 연상케 한다.
털머위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주로 분포한다. 나는 지난 가을 목포 유달산 자락에서 털머위를 실컷 보았다. 목포에서 강의가 있어 목포 시내에 간 김에 가까운 유달산에 들렀다. 강의 시간까지 두어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달리 시내 밖 다른 장소에 갈 이유가 없었다. 유달산에 오르자 산책로를 따라 심어진 금목서 근처에서 꽃 사진을 찍는 주민들이 보였다. 금목서 아래에선 털머위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유달산에는 털머위가 많다. 정자에 앉아 대화 중인 동네 어르신들 주변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 발길 끝에, 화장실 길목에, 산의 후미진 구석까지 털머위는 뿌리를 뻗고 있다. 사실 이들은 워낙 번식력이 좋은 식물이다. 바닷가의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하여 바닷가에서 자주 보이기 때문에 갯머위라고도 부른다.
나는 무릎을 꿇어 털머위 잎을 자세히 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이들 잎은 머위와 전혀 달랐다. 잎 뒷면의 털 유무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털머위는 잎 색이 진녹색에 잎 앞면에는 코팅이 된 듯 광택이 있다. 잎의 두께도 비교적 두껍다. 바닷바람과 염분으로부터 접히고 찢기기 쉬운 넓은 잎을 지키려 이처럼 진화한 듯하다.
일본에는 털머위속의 다른 종도 있다. 종소명 히베르니플로룸(hiberniflorum). 이들 또한 겨우내 정원에서 사람들에게 화사한 노란 꽃을 선사한다. 일본 고치현의 마키노 식물원에는 가을과 겨울 유달산의 털머위처럼 이들 꽃이 널리 핀다. 식물 앞에는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가 그린 도해도도 함께 그려져 있다. 이들을 명명하고 기록을 남긴 이가 바로 식물원의 주인공, 마키노 도미타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기고 간 그림과 식물을 떠올리며, 나도 요즘 털머위를 스케치하고 있다.
11월이 되면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는 꽃은커녕 너른 활엽수 잎조차 만날 수 없다. 나는 약 5개월 동안 이곳에서 초록의 너른 잎들을 그리워할테지만, 남도의 사람들, 적어도 목포의 시민들은 가까운 유달산에 올라 털머위와 그밖의 수많은 활엽수를 만날 수 있다. 시내에 이토록 오르기 좋은 산이 있다는 것, 그곳에서 사계절 내내 푸릇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늘 부럽다.
지금 털머위 줄기 끝에는 열매가 풍성하다. 열매에는 털이 밀생한다. 많은 생물이 추위에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털머위는 온몸에 치밀하게 난 털로 자신을 지키고 멀리 또 많이 번식해 나갈 것이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