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 명필름 대표 “사람의 삶 배어있는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영화’ 만들겠다”
2024년 01월 22일(월) 19:05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의 삶은 늘 ‘길’위에 있던 모습 보며 제작 구상
OTT 홍수 속 사람들과 닿아 있는 진솔한 인간적 이야기 그리려 노력
2024년은 김대중(1924~2009)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엄혹한 한국 현대사에 아로새겨진 김대중의 삶의 궤적, ‘길’을 되짚는 다큐멘터리 ‘길 위에 대통령’(감독 민환기)이 지난 10일 개봉됐다. 지난 21일 기준 전국에서 9만2388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우리시대의 큰 어른’을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다큐 ‘길 위에 김대중’을 공동 제작한 이은(63) 명필름 대표로부터 다큐 제작의 의미와 영화 이야기를 듣는다.

◇DJ 탄생 100주년 다큐 ‘길 위에 김대중’ 개봉

#1980년 12월 육군 교도소. 김대중은 같은해 9월 내란 음모죄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전두환 신군부가 교도소내 ‘사형수 김대중’을 감시하던 CCTV 희귀 흑백 영상이 최초로 공개된다. 담배를 한대 피우는 그의 표정에는 언제든 사형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당시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1987년 9월 광주. 열차를 타고 이리와 정읍을 거쳐 광주로 향하는 김대중을 시민들은 열렬하게 반긴다. 16년 만의 광주 방문이다. ‘80년 오월’과 ‘87년 6월 항쟁’을 겪은 호남인들에게 그의 광주 방문은 각별했다. 망월동 구 묘역을 찾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5번의 죽을 고비, 6년의 수감생활, 40여년 동안의 망명·연금·감시생활, 4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3번의 대통령 선거 낙선….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린 김대중의 삶은 늘 ‘길’위에 서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이 지난 10일 개봉됐다. 김대중평화센터가 기획하고, 명필름(대표 이은·심재명)과 시네마6411(대표 최낙용)이 공동 제작했다. 감독은 2021년 다큐 ‘노회찬6411’을 선보였던 민환기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교수가 맡았다.

영화 제작자·감독인 이은 ‘명필름’ 대표는 1995년부터 30년째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진솔한 이야기’, ‘공감에 기초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오고 있다. ‘시네마6411’(대표 최낙용)과 공동 제작한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의 김대중’(감독 민환기)이 지난 10일 개봉됐다. ‘명필름’의 51번째 작품이다.
다큐는 정치적 핍박 속에서도 언제나 ‘길’ 위에 있었던 ‘인간 김대중’, ‘정치인 김대중’의 모습을 러닝타임 125분 동안 담담하게 그려낸다. 제작자인 이은 대표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자리한 명필름에서 만났다.

◇한국 민주화 역사와 함께 해온 ‘민주주의자 김대중’ 삶 조명

▲지난 2013년에 김대중 다큐멘터리가 처음 기획돼 완성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다큐 ‘길 위에 김대중’을 제작하게 되셨나요?

“2013년 정진백 김대중대통령 추모사업회장(‘길위에 대통령’ 집행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다큐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생각해서 기획을 하셨습니다. 영화가 아무래도 대중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겠다 판단을 하신 거죠. 이희호 여사(당시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자료가 워낙 방대해 진전이 안됐던 것 같습니다. 2019년에 정 회장이 ‘명필름이 같이 하면 어떠냐’라고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마침 저희 팀이 남북 관계 관련 다큐를 준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새삼 굉장히 훌륭한 분이구나라고 느끼고 있던 차였습니다. 저희는 본격적으로는 4년 정도 작업한 거죠.”

▲‘길 위에 김대중’이라는 다큐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다큐는 김대중 대통령의 전 생애를 다룬 게 아니라 1987년 9월 광주를 방문해 망월동을 참배하는 데에서 마무리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24년 1월 6일 태어나서 청년사업가가 되고, 어떤 불의한 사회현실을 보고 정치에 입문하시고,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거리의 투사가 되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광주를 찾아오는 부분까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완결돼요.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인간 김대중’의 흐름이 거의 보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을 이해하는데 이 작품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아마 나중에 후속 편이 나온다고 해도 1987년에 광주 시민들을 만나고 그 이후에 성숙한 정치인으로서 쭉 달려가는 모습이 담길 겁니다. 그래서 ‘인간 김대중’을 이해하는데는 이번 작품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새해 4월 10일에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됩니다. 총선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어떤 메시지가 다큐 안에 담겨 있나요?

“선거에 맞춰서 일부러 메시지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지금 정치인들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정치인들이 가졌던 사회적 책임감과 능력에서 워낙 차이가 납니다. 아마 지금 사람들이 볼 때 그런 리더의 부재, 혹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추억 이런 것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분이나 정치를 지망하는 분들 입장에서도 마음을 다잡는데 적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떠나서 정치가 무엇인지, 또 어떤 마음으로 정치에 임해야 되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는 있겠죠.”

▲민환기 감독의 신문 인터뷰에서 20테라바이트, 1700시간 분량의 영상자료를 하루 12시간씩 5개월을 검토하셨다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제작자로서 이번 다큐를 만들면서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셨나요?

“누가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을 그린다는 게 굉장히 심적으로 부담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고귀하게 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폄하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중간에서, 아마 감독이 휘둘리지 않고 어디서 중심을 잡을 것인가가 제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제작자로서 감독이 소신껏 작업에 전념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드리려고 노력을 했죠.”

◇“OTT 이용자 급증과 스크린 독과점, 한국 영화산업 위기”= ‘접속’(감독 장윤현·1997년),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2000년), ‘와이키키 브라더스’(감독 임순례·2001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2008년),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2011년), ‘건축학 개론’(감독 이용주·2012년), ‘태일이’(감독 홍준표·2021년)…. 명필름의 웰이드 작품들이다. 명필름은 창립작품인 ‘코르셋’(1996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50편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로맨스 영화, 장르 영화, 독립영화, 사회파 영화, 애니메이션 등 스펙트럼이 폭넓다. 명필름은 지난해 11월 로맨스 영화 ‘싱글 인 서울’(감독 박범수)을 개봉했다. 새해에도 명필름의 도전은 계속된다. 명필름랩 출신의 박홍준 감독의 독립영화 ‘해야 할 일’을 개봉하고, 애니메이션 ‘꼬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길위에 김대중’은 명필름이 제작한 51번째 작품이다.

이 대표는 명필름의 이름을 내걸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심재명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영화’를 강조한다.

“결국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영화’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고요. 저희가 멜로 영화, 사회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 등 어떤 것을 하든 그 모든 것들의 원칙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진솔한 얘기, 공감에 기초한다는 거죠. 가급적이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명필름 영화의 공통점입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얘기를 찾아 영화로 만듭니다.”

명필름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새로운 사옥을 마련한 후 ‘명필름 랩’을 운영하고 있다. 재능 있는 신인 감독과 영화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제작 시스템이다. 연출과 시나리오, 제작, 촬영 등 분야에서 신인 영화인들을 선발한 후 2년 동안 작품을 개발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요되는 비용은 무료다. 지금까지 ‘환절기’와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2018년), ‘국도극장’(감독 전지희·2020년) 등 6편이 개봉됐다. 새해에 선보일 ‘해야 할 일’이 7번째 작품이다.

앞으로 30년간 한길을 걸어온 이은·심재명 대표의 우직함과 도전정신이 어떠한 명필름의 영화세계를 빚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명필름의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로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길 응원한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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