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천박 - 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4년 01월 05일(금) 00:00
어릴 적, 초등학교가 바로 집 앞에 있어 운동장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공 하나면 친구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저녁 식사 시간도 잊은 채 공놀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때가 되면 그만하고 집에 와야지!”라고 야단을 치셨다. 조금 분별할 줄 알게 된 나이가 되면 누가 야단을 쳐 주지 않아도 정신 차려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3년을 보내고, 새해 2024년 갑진년을 맞이하면서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모두가 매일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 정말 좋겠다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바람이 성취된다는 게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이 과하게 풍요롭지 않더라도 정신 차리지 못하거나 멈추지 못해서 천박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쾌락(快樂)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감정 상태 중 재미와 만족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밝게 웃고 기쁘게 지내며 재미있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유쾌한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긍정적이며 좋은 의미인 이 ‘쾌락’이라는 단어는 때론 부정적 의미가 강하기도 하고 ‘쾌락’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을 금기하기도 한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 ‘쾌락’의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고, 반복된 삶의 습관처럼 되면 끊어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 자기 삶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에만 빠진 나머지 어디에도 무관심하면 과연 어떤 삶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쾌락의 추구는 우리에게 심적인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이 더 클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더 나은 것을 바라는데, 문제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할 수 있지만, 우리의 감각을 절대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감각은 만족을 위해 더한 것을 원하도록 속일 것이고 더 자극적이고 더 진한 것을 찾도록 유혹할 것이다. 그래서 탐욕으로 이어지고 절대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우리 감각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정신차리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 삶의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급기야 타인의 삶까지도 파괴할 수 있는데도 그만두지 못하도록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절대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닐까. 뉴스를 통해 자주 듣게 되는 사회적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쾌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자주 소식을 전하시면서 자주 언급하시는 것이 ‘소비의 열병과 쾌락에 대한 집착’이라는 주제다. 교황은 ‘불필요한 것들로 인해 마음을 마비시키는 소비의 열병’과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 사랑에 대해 착각하지 않기를 바라셨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젊음의 희망을 짓밟히지 말자고 권고하셨다. 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 청년들의 모임인 2023년 포루투갈 세계청년대회에서 말씀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이끌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도록 이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함께 걸어가고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다. 그런데 하느님과 우리가 만나는 것을 막는 장애물, 사람과 사람을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다. 사람의 천부 인권을 짓밟고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철저히 배격하고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생명의 중요성을 서로 지키자는 거룩한 말씀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뉴스를 통해 가끔 느껴지는 악취와 같은 소비의 탐욕과 쾌락에 대한 무서운 집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멈춤의 때를 분별했으면 한다. 우리가 끝없는 쾌락의 추구로 인해 더 이상 천박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오 복음 7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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