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할 일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3년 12월 07일(목) 00:00
이 시기에 아이 키우는 집은 크리스마스에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무슨 선물을 해야 하나? 애가 아직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가? 믿든 아니든 선물은 준비해야겠지? 아이는 크리스마스 아침 선물 포장을 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산타 대신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부모의 표정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고 싶다. 주머니 사정이 갈수록 얄팍해지는 시기이지만, 크리스마스는 그런 사정을 잠시 잊게 하는 효능이 있으니까.

도심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반짝이고, 여유가 있다면 내 집 거실에도 자그마한 트리를 꾸며놓을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 특유의 리듬과 멜로디는 어쩐지 한겨울의 체온을 조금 올려주는 것도 같다. 가족과 연인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기도 하고, 소원했던 주변 사람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는 어느 종교를 믿든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의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이끈다. 그날은 무엇이든 사랑해도 괜찮을 것만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맡겨진 소녀’를 통해 국내 소설 독자에게 진귀한 사랑을 받은 작가 클레어 키건의 새로운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출간되었다. 전작과 마찬가지고 얇은 두께에, 두터운 감동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 읽기 좋다. 주인공 ‘펄롱’은 직업에 성실하고 가족에 충실한 남자다. 그는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아니, 빈주먹보다 못한 사정이라 해도 될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다 아이를 가졌고, 집에서 내쳐졌다. 하지만 윌슨 부인은 그들을 받아들였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유를 찾기 힘든 관대함과 사랑을 바탕으로 (그러나 어려움 속에) 성장한다. 어머니는 죽고 펄롱은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한다. 그는 아내 ‘캐슬린’과 다섯 딸을 낳았으며, 석탄을 배달하는 사업으로 부자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상실될 수도 있음을 펄롱은 안다. 당시 아일랜드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혹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혹은 타고난 운으로 어려움을 통과하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러하지 못했다. 펄롱은 케슬린과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을 작성한다.

아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자상하게 가늠한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용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랑으로 지금에 올 수 있었던 과정을 되돌아본다. 이 모든 게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고 그는 여기는 듯하다. 무엇으로, 무엇이 되어, 무슨 연유로 삶을 살아야 할까. 어쩌면 신을 향해 있는 듯한 질문을 펄롱은 자신의 마음에 새기는 듯하다. 석탄을 배달하며, 타이어를 점검하며, 딸아이를 보살피며… 그렇게 삶을 지속하면서.

펄롱 앞에 등장한 수녀원의 소녀는 우연이 아닌 필연에 가깝다. 펄롱이 스스로와 세상에 던져왔던 질문의 답으로서 소녀는 나타난 것이다. 실제 아일랜드 역사에서 수녀원과 결탁한 세탁소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수많은 여성이 있다고 작가는 밝히는데, (우리의 형제복지원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수녀원은 펄롱이 속한 지역 사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펄롱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소녀는 펄롱에게 있어 파멸적 재앙일 수도 있다.

그저 지나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당연해 보이나 펄롱은 다시 존재론적 질문을 거듭한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주간이고, 그의 손에는 가족을 위한 선물이 들려 있다. 펄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온 세상에 사랑과 축복을 내린다는 크리스마스인데, 그 사랑과 축복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는 존재를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펄롱은 결단을 내린다. 그 결단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인다.

이 소설을 읽은 후의 크리스마스와 읽기 전의 크리스마스는 다를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처럼, 사소하지만 강렬한 그 반짝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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