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3년 11월 16일(목) 00:00 가가
광주의 핫 플레이스 동명동을 찾을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들곤한다. 멋들어진 카페나 맛집은 눈에 띄지만 문화공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지금은 한 건설회사의 사옥으로 쓰이는 옛 금호문화회관 앞을 지날 때면 아쉬움이 더 커진다. 이 곳이 예전처럼 문화 공간으로 쓰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 때문이다.
1983년 문을 연 금호문화회관은 2001년 문을 닫을 때까지 광주 문화의 요람이었다. 한옥을 차용한 건물과 푸른 잔디가 어우러져 독특한 멋을 풍겼던 이곳에선 많은 공연과 행사가 열렸다. 고등학생 시절 송승환의 팬이었던 친구와 ‘일어나라 알버트’를 보고 감동에 빠졌던 일이나 손성권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관람하며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초 화천기공 소유였던 금호문화회관 건물은 호화주택에 걸려 입주가 불가능했다. 지방 청와대로 팔려 했지만 주택가에 위치, 경비상의 문제로 여의치 않았고 아파트 업자에게 팔려 헐릴 위기에 처하자 금호가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최근 서울의 소극장 ‘학전’이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진단으로 33년만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에 갈 때면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 등 많은 작품을 봤던 터라 폐관 소식에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아침이슬’을 만든 김민기가 1991년 문을 연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대표해온 공간이다. 특히 4000회 공연을 이어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설경구·김윤석·황정민·조승우 등 쟁쟁한 배우들이 거쳐간 명작이다.
지금 상영중인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88년 역사의 광주극장에서 촬영됐다. 최고은, 아마도이자람 밴드 등 뮤지션들이 광주극장의 영사실, 매표실 등에서 노래하며 영화와 버티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람 내내 경제논리에 밀려 60년 역사를 뒤로하고 최근 철거된 원주아카데미극장이 떠올라 더 애틋했고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처럼 버티고 있는 또 다른 공간들도 생각났다.
사라져 버린 공간은 켜켜히 쌓인 역사와 추억도 함께 가져가 버린다.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흔적만이라도 기록해둬야 하는 것이 남아있는 이들의 최소한의 의무다.
/mekim@kwangju.co.kr
당초 화천기공 소유였던 금호문화회관 건물은 호화주택에 걸려 입주가 불가능했다. 지방 청와대로 팔려 했지만 주택가에 위치, 경비상의 문제로 여의치 않았고 아파트 업자에게 팔려 헐릴 위기에 처하자 금호가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라져 버린 공간은 켜켜히 쌓인 역사와 추억도 함께 가져가 버린다.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흔적만이라도 기록해둬야 하는 것이 남아있는 이들의 최소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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