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의 궁합과 향 자체를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었다. 취하기 위해 마셨던 과거와는 다른 형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 하이볼, 사케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기도 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던 지난 27일, ‘2023 광주 주류관광페스타’를 찾았다. 광주시관광공사가 주관한 이번 박람회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진행됐다.
행사장 입구 왼편에는 글라스가 놓였다. 시음용 와인잔을 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글라스 하나로 시음을 해야하다보니 향이 조금 섞일 가능성은 있겠지만, 맛과 빛깔을 더 세세하게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구매하는 것도 좋았겠다. 박람회는 500여 주종이 한 곳에 모인 자리였는데, 이날 필자는 정확히 36가지의 제품을 시음해봤다.
◇각양각색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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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남도 우리 술 품평회에서 수상한 각 지역의 전통주가 전시되어 있다. |
박람회의 주인공은 전통주라 해도 될 정도로 가볍고 색다른 전통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쪽 벽면엔 ‘2023 남도 우리 술 품평회’에서 수상한 전남 각 지역의 전통주가 전시됐다. 종합대상을 수상한 ‘죽향41’은 100% 담양 친환경 쌀과 꿀을 이용한 고급 증류식 소주다. 죽향도가의 장유정 대표는 죽향도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대대포 생막걸리’를 블루(6도), 레드(9도), 프리미엄(13도) 순으로 소개하며 “물이 많이 들어간 낮은 도수의 제품일수록 순해서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약·청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남 나주시 남도탁주의 ‘정고집나주배약주15%’도 맛봤다. 배 수확이 끝날 무렵 과수원을 거닐면 낙과가 발효되면서 나는 달큰, 시큼한 향기가 있는데, 딱 그 내음이었다. 부드러운 풍미와 젖은 땅의 싱그러움도 함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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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X.Premium과 화요53. |
행사장 안쪽 부스에서 가장 최근에 마신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일품진로와 함께 국내 프리미엄 소주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증류주 브랜드 ‘화요’였다. 난생 처음 보는 술로 가득한 이곳에서 마주친 익숙한 이름에 내심 반가웠다. 유리장 안에 전시된 ‘화요X.premium’과 ‘화요53’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황금빛의 ‘화요X.premium’이 갖는 차별점은 바로 은은한 오크향이다. 화요X.premium은 43도의 증류주 원액을 오크통에서 장기간 숙성시켜 만들었다. 화요 관계자는 “순수 한국산 위스키 최초로 EU에서 공인하는 위스키로 인정받았지만 국내 주세법상 증류식 소주로 분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사장 길목 한켠에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뭔가에 열중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통주 문화 활성화를 위해 개발된 신생 앱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전통주 아카이빙 앱 ‘순술’은 6명의 전통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술을 기록하고 리뷰를 살펴보는 플랫폼이 와인에만 활성화된 것이 아쉬워 만들게 된 서비스다. 현재는 구매링크로 넘어가도록 연결까지만 되어있지만 추후 앱 내에서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구매할 수 있도록 개발 중에 있다.
◇비교해보자, 유자사케와 고흥유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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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사고 야마하이 유즈슈 |
막 사케에 입문한 사람들이 가볍게 빠졌다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술 중 하나가 바로 유즈슈(유자술)일 것이다. ‘타카사고 야마하이 유즈슈’는 ‘야마하이혼죠주’를 베이스로 한 유자함량 24.9%의 사케로, 마치 유자착즙을 마시는 듯 생 유자의 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도수는 8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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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유자의 달콤함과 곡물향이 느껴지던 고흥유자주. |
유자사케를 마셨으니 우리나라의 유자주도 안 마셔볼 수 없었다. 녹동양조장의 ‘어떤하루’가 만든 고흥지역특산주 ‘어떤유자’를 발견하고 유자사케와 맛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어떤유자’는 고흥쌀과 고흥유자로 술을 빚어 60일간 저온숙성·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었다. 도수는 6도로 약주와 동일한 재료로 만들었지만 유자의 함량이 너무 높아 기타 주류로 분류되어있다. 관계자에게 유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묻자 조심스럽게 “그건 비밀”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드러나는 듯했다. ‘타카사고 야마하이 유즈슈’는 유자의 새콤한 맛이 두드러진다면 고흥유자주 ‘어떤유자’는 조금 더 달고 묵직하며 은은한 곡물향이 느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리큐어…2023 하이볼 트렌드 ‘얼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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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티핀’을 시음하고 있다. |
작년에 이어 이번년도까지 주류 트렌드 키워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얼그레이 하이볼’이다. GS25와 CU에서도 각각 ‘김창수 하이볼’, ‘어프어프 시리즈’를 통해 얼그레이 하이볼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두 가지를 다 ‘내돈내산’ 해봤지만, 생각보다 달달했던 맛에 아쉬웠던 경험이 있다. 그런 필자에게 한줄기 빛 같은 얼그레이 리큐어가 나타났다. 바로 독일의 얼그레이 리큐어 ‘티핀’.
박람회에선 다양한 리큐어(알코올에 설탕, 향료 등을 섞어 만든 혼합주의 일종)도 소개됐는데, 이중 상당한 인파가 티핀을 시음하는 곳에 몰렸다. 1835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티리큐르 티핀의 도수는 24도. 히말라야 다즐링이 블랜딩 되어있어 깊은 향이 특징이다. 우유에 섞어 마시면 밀크티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생딸기 과육이 55% 들어간 리큐어도 있었다. 생딸기 55%에 라임11%가 들어간 리큐어 ‘슈슈 XUXU 생딸기 리큐르’. 도수는 15도로 굉장히 낮다. 과육의 함량이 높아서 개봉 후 냉장보관을 권장한다는 점도 보통의 다른 리큐어와의 차이점이다.
◇달달한 술에 대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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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국산 포도 품종 청수로 만든 ‘대향 와인’. ‘대향 아이스’는 샤인머스켓 향, 아카시아 꿀 향이 특징, ‘대향 로제’는 당도가 적어 산뜻하다. |
“요즘 젊은 여성분들은 이런 거 좋아하시죠.”
제품 추천을 받을 때면 대개 저런 멘트와 함께 달달한 과실주나 모스카토 와인 등이 소개됐다. 달달한 술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머리 아픈 인공적인 단맛에 수차례 데이며 ‘술이 달콤하면서 맛있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번 박람회에는 그 편견을 깨줄만한 ‘건강한 단맛’의 술들이 몇 가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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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의 천연 아카시아 꿀주 ‘허니비 와인’ |
친환경 벌꿀을 생산해내는 농장에서 도수 8도의 천연 아카시아 꿀주를 선보였다. 꿀의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산미도 느껴졌다. 이어서 도수 10도의 밤꽃꿀주까지 시음했다. 생소한 이름에 맛보기 전 두려움이 있었지만 꽤 괜찮았다. 아카시아 꿀 주보다 묵직하며 깊은 풍미가 도드라졌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두 제품 모두 얼린포도로 만든 아이스바인처럼 디저트로 마시기에 적합한 술 같았다. 나 또한 이 술을 마지막 디저트로 삼으며 행사장을 나왔다.
도파민 중독에 빠졌던 지난날이 신기할 정도로 알코올과 멀어졌다 생각한 요즘이었다. 술의 세계를 다 알아보겠노라 다짐하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술을 접해봤던 지난 1년을 보내고 찾아온 의도치 않은 휴식기였다. 이번 박람회는 주종에 있어서 조금씩 취향이 확고해졌다 생각했던 필자에게 ‘아직 단정 짓긴 이르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다양한 장르의 술을 접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도 ‘향과 맛을 탐구하는’ 문화로서 술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글·사진=김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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