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홍수 대비를 위한 숲, 담양 관방제림
2023년 07월 06일(목) 00:15 가가
이맘때의 계절일 것이다. 중학생 시절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선생님이 급히 다가와 말씀하셨다. “소영아, 네 어머니께 전화가 왔는데 지금 빨리 집으로 오라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집으로 향했다. 밖에선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네에 이르자 집 앞 하천에 물이 넘칠 듯 말 듯 흐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집에 온 나를 보더니 이대로 비가 계속 내리다가는 하천이 넘쳐 홍수가 날 것 같으니 얼른 방바닥에 있는 짐들을 최대한 위에 올려 두고 중요한 짐을 챙겨 차에 타라고 하셨다. 나는 당장 봐야 할 교과서와 필기도구 따위를 가방에 넣어 차에 탔다. 그날 우리는 친척 집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비가 그친 사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홍수가 지나간 동네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우리 집안에는 흙탕물이 종아리까지 차 있었다.
수도권에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 해였다. 그해 비슷한 일을 두어 번 더 겪었고, 그 후로 하천변을 따라 높은 둑이 세워졌다. 그 둑 덕분인지 더는 동네에 홍수가 나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물이 찼을 뿐이지만, 동네 이웃 중에는 집을 잃은 가족도, 사업장을 닫은 이도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자연 아래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란 것을 나는 너무나 빨리 깨달아 버렸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학회를 마치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돌아보던 중,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있는 산책로를 마주쳤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곳에는 푸조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종류 등이 서있었다. 나무의 수고를 보아 꽤 오래전 조성된 숲 같았다. 안내문에 적힌 이 산책로의 이름은 관방제림,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방천 주변에 조성한 숲이었다.
나무는 뿌리로 빗물을 흡수하고 땅을 지탱해 산사태를 막아준다. 1648년 마을 사람들이 매년 홍수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시 부사 성이성은 이곳에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성이성 부사는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추측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1854년에는 황종림 부사가 매년 관비로 3만여 명을 동원해 숲을 재보수했고, 그 후로 부임한 관리들도 사비로 관방제림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관방제림을 산책하며 단연 내 눈에 띈 것은 개체수가 가장 많아 보이는 푸조나무였다. 푸조나무는 내가 사는 중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수종이다. 이들은 내공해성이 약해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기에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만, 강한 바람에 잘 견뎌 해안 방풍림으로 자주 이용되는 자생 식물이다.
조성 당시 700여 그루가 심어졌다지만 지금 개체수는 그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관방제림을 걸으며 자연재해로부터 백성을 지켜내기 위해 제방과 숲을 만든 성이성의 마음과 숲을 가꾸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을 떠올렸고, 그러고 나니 이 산책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에게는 나무를 심을 이유가 더없이 많다. 홍수와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 그리고 기후 변화에 따른 지면 온도 상승, 공기 오염과 물 부족 등등……. 그러나 있던 나무도 베어 내고 그곳에 빌딩을 짓는 것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릴 줄도 모른다. 나무란 오늘 묘목을 심는다고 당장 내년에 거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내가 당장 생색낼 수 없는 이 일을 잘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식물과 관련된 정책이 잘 실현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얄팍한 생각이란 걸 관방제림이 증명한다. 4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의 내가 성이성이라는 과거 인물을 자꾸만 떠올리는 것은 오로지 그가 심은 나무 때문이었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은 현재 사람들이 즐겨 지나는 산책로가 되었지만, 백성을 위한 성이성의 진심은 변함없이 관방제림을 오가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식물 세밀화가>
우리 집에는 물이 찼을 뿐이지만, 동네 이웃 중에는 집을 잃은 가족도, 사업장을 닫은 이도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자연 아래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란 것을 나는 너무나 빨리 깨달아 버렸다.
나무는 뿌리로 빗물을 흡수하고 땅을 지탱해 산사태를 막아준다. 1648년 마을 사람들이 매년 홍수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시 부사 성이성은 이곳에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성이성 부사는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추측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1854년에는 황종림 부사가 매년 관비로 3만여 명을 동원해 숲을 재보수했고, 그 후로 부임한 관리들도 사비로 관방제림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관방제림을 산책하며 단연 내 눈에 띈 것은 개체수가 가장 많아 보이는 푸조나무였다. 푸조나무는 내가 사는 중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수종이다. 이들은 내공해성이 약해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기에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만, 강한 바람에 잘 견뎌 해안 방풍림으로 자주 이용되는 자생 식물이다.
조성 당시 700여 그루가 심어졌다지만 지금 개체수는 그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관방제림을 걸으며 자연재해로부터 백성을 지켜내기 위해 제방과 숲을 만든 성이성의 마음과 숲을 가꾸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을 떠올렸고, 그러고 나니 이 산책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에게는 나무를 심을 이유가 더없이 많다. 홍수와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 그리고 기후 변화에 따른 지면 온도 상승, 공기 오염과 물 부족 등등……. 그러나 있던 나무도 베어 내고 그곳에 빌딩을 짓는 것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릴 줄도 모른다. 나무란 오늘 묘목을 심는다고 당장 내년에 거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내가 당장 생색낼 수 없는 이 일을 잘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식물과 관련된 정책이 잘 실현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얄팍한 생각이란 걸 관방제림이 증명한다. 4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의 내가 성이성이라는 과거 인물을 자꾸만 떠올리는 것은 오로지 그가 심은 나무 때문이었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은 현재 사람들이 즐겨 지나는 산책로가 되었지만, 백성을 위한 성이성의 진심은 변함없이 관방제림을 오가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