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오디세이 味路-순천 로컬브랜드] 옻된장·전통주…그윽한 전통의 맛에 빠진다
2023년 06월 26일(월) 18:30
마을기업 서당골 ‘서당콩 옻된장’
도시민 잇단 방문…100일 체험도
이순신 모티브 전통주 ‘낙안읍성’
토굴 숙성 100일 기다림 끝 탄생
갈대습지 옆 카페 ‘순천만 487’
다양한 포토존·루프탑 등 명당

옻나무를 넣어 전통방식으로 만든 서당골 전통된장·간장·고추장.

◇농업회사법인 서당골㈜ ‘서당콩 옻된장’= 마을이 기업인 곳이 있다. 마을주민 모두가 주인이자 직원으로 활동하고 마을의 소득이 개인의 소득이 되는 곳이다. 순천시 주암면 문성마을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서당골㈜ 이야기다.

문성마을은 800년 이상 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가난한 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주민이 줄고 마을을 떠나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던 문성마을이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마을 소득이 늘어나면서 선진지 견학마을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당골㈜은 마을기업이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하는 마을기업은 같은 생활권에서 거주하는 주민이 스스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단위 기업을 말한다. 회원의 70% 이상이 지역 주민이어야 하고 공동체성, 공공성, 지역성, 기업성 등을 갖춰야 한다.

서당골(주) 이덕성 대표가 마을에서 생산하는 옻된장을 소개하고 있다.
서당골㈜은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마을 주민 92%가 소득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소득이 아주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주민 개개인이 체감하는 소득은 높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마을이 기업의 성격을 띄게 된 건 지난 2011년, 이호성 사무장이 마을에 오면서부터다. 순천이 고향인 이 사무장은 마을의 주 농산물인 콩을 이용해 전통방식인 옻된장을 만들어 수익원을 내겠다는 기본 생각으로 법인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12년 순천시 ‘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이후 옻나무를 이용한 된장을 만드는 공동체 소득사업에 나섰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체계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14년에 법인을 설립했다. 주민 대다수가 출자를 했다. 출자금은 동일하게 책정하고 균등 분배를 원칙으로 했다. 현재 주주 농가수는 23 농가다. 대표는 이덕성 씨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2011년 당시 24명이었던 인구수는 2023년 현재 64명(26호)으로 늘었다. 15년간 진행된 ‘마을 활성화 사업’이 끝나는 2025년 말에는 1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귀농인들이 늘면서 평균 연령대도 낮아졌다.

서당골㈜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전통 장이나 두부를 만드는 곳이지만 보다 자세히 표현하자면 콩을 소재로 한 융·복합 산업을 하는 기업이다. 콩으로 장을 만드는 2차 산업이 기본이지만 현재 기업 소득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방문객들의 견학과 체험활동이 이뤄지는 3차 산업이다.

도시민들을 마을로 불러들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은 ‘100일간의 옻된장 체험’이다. 사전 신청을 받아 1월초 1단계인 메주 만들기, 2월말 2단계인 장 담기, 4월 중순께 3단계 장 가르기가 진행된다. 장독에 보관한 장은 연말에 소비자들이 직접 와서 가져가는 구조다.

‘서당콩 옻된장’은 그동안 체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가는 방식만 고수해오다가 올해부터는 판매도 시작했다.

화목마을 전통방식으로 담아 토굴에서 숙성시킨 낙안읍성 전통주.
◇농업회사법인 화목마을(주) 전통주 ‘낙안읍성’=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던 5월초. 순천의 어느 산 아래 토굴에 적막이 감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유독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전통주가 발효되는 곳, 화목 전통주 양조장의 모습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습도가 높아 술을 빚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임종석 공장장. 덕분에 차분히 전통주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농업회사법인 화목마을㈜은 순천시 낙안면 조계산 선암사 인근 청정산골 화목마을에 위치한 전통주를 빚는 마을기업이자 양조장이다. 마을의 가치를 높이고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 2019년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예부터 전해오던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다. 주주는 모두 마을 주민들로 이뤄져 있다. 오래도록 마을을 지켜온 한옥현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낙안읍성’ 전통주는 낙안뜰에서 재배한 친환경 찹쌀과 다양한 발효균이 살아있는 전통누룩을 사용해 수제 탁주를 만든다. 전통누룩은 작은 환경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술을 빚기는 까다롭지만 전통방식을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마음으로 이어가고 있다. 비율은 찹쌀 43%, 전통누룩 2%, 물 55%다.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물은 천연암반수다. 도심에도 1급수 천이 흐를 정도로 생태계가 살아있는 순천에는 호남의 젖줄인 주암호와 상사호가 자리한다. 화목마을 양조장은 상사댐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사계절 내내 온도 10℃를 유지하는 미네랄 가득한 천연암반수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낙안읍성’ 전통주는 한 번의 발효로 완성되는 일반적인 단양주가 아니다. 통쌀죽으로 밑술 발효 후 고두밥을 넣어 다시 한번 발효시키는 덧술 과정을 거치는 이양주다. 자동 시스템이 아닌 100% 수작업이기 때문에 매일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빨리 한다고 해도 사흘에 한번 꼴이다. 그마저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

토굴 안의 기온이 맞아야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발효 온도를 35도로 맞춘다고 해도 누룩이 효모균과 만나 끓어오르는 온도가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미생물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저희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온이 맞지 않으면 열통을 담가도 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거죠. 10통을 담으면 3통은 버린다고 보면 됩니다. 매일 발효실을 다니며 체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낙안읍성’ 전통주 맛의 비결중 하나는 해발 400m 토굴 발효다. 토굴에서는 계절이나 낮과 밤 구별없이 온도가 잘 유지되기 때문에 전통주를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는데 적합하다. 토굴을 짓는데만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산아래 25m 흙을 깎아 돌로 석축을 쌓고 천장에는 미생물 층을 만들어 미생물을 키우고 있다. 토굴안에는 주 발효실과 후 발효실, 숙성실 3개의 방이 나뉘어져 있다. 숙성실까지 거쳐 나오는 기간이 40일, 다시 저온창고에 보관하는 기간이 60일, 주민들은 ‘100일간의 기다림’이라고 표현한다.

100일을 기다려서 탄생한 전통주는 색깔은 막걸리처럼 걸죽한데 향이 진하지 않다. 도수 12도의 고도주임에도 알코올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좋다. 산미는 조금 있지만 단맛과 잘 어우러져 맛이 조화를 이룬다. 과일향, 누룩향, 곡물향까지 복합적인 맛이 느껴진다.

‘순천만487’ 시그니처 메뉴인 ‘487노을’과 ‘487라떼’.
◇‘487노을’ 한잔에 피로가 싸악, 카페 ‘순천만 487’= 대형 통유리창 앞에 커다란 곰인형 6마리가 사이좋게 누워있다. 뒤로 보이는 풍경은 푸른 하늘과 초록색 갈대가 그림처럼 펼쳐진 순천만 갈대밭이다. 순천만을 배경으로 대형 곰인형과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다.

아래층에는 한쪽 벽면이 온통 골드바로 채워져 있다.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골드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순천만이 한눈에 보이는 3층 루프탑은 뉴욕 맨해튼의 고층빌딩 전망대도 부럽지 않을만큼 근사하게 꾸며져 있다. 연인과 사이좋게 앉아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그네형 테이블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빈백소파 테이블까지 모든 자리가 명당이다.

포토 스튜디오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는 이곳은 순천만 갈대습지 주차장 옆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 ‘순천만487’이다. ‘순천만487’의 시그니처 메뉴는 ‘487노을’과 ‘487라떼’다. ‘487노을’은 백향과 청을 듬뿍 넣은 에이드 음료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노을처럼 예쁘다 해서 ‘487노을’이라 이름 붙였다. ‘487라떼’는 일반 카페라떼에 비법을 더해 ‘순천만487’만의 라떼를 만들어 냈다. 커피는 3가지 종류의 원두를 블랜딩 해서 로스팅한다. 산미 보다는 고소한 맛이 강하다.

젊은 사장이 직접 만든다는 수제 디저트는 인기가 좋아 방문객이 많은 날에는 일찍 소진돼 만날 수 없는 날도 많다. 딸기 파이와 헤이즐넛 스콘, 크로와상 등 다양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조금 일찍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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