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 “‘심리적 고립’ 빠지지 않게 현대 사회 포용 있어야”
2023년 04월 19일(수) 20:50
[광주일보 11기 리더스아카데미]
범죄자 천여 명 심리·행동 분석
디지털 성범죄·가스라이팅 등
요즘 범죄는 정서 학대·심리 폭력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배려는
공감 못 얻고 소통의 균열 만들어

지난 18일 오후 광주시 서구 치평동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열린 리더스아카데미 강연에서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가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강력범죄의 원인과 유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도 배려라는 포장을 씌우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소통의 균열이 생깁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심리적 ‘고립’에 빠질 때 상대방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등장하게 됩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주인공인 범죄 행동분석관 송하영은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를 본떠 만들어졌다.

극 중에서 송하영은 인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공감하면서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며 연쇄살인범을 쫓는다.

지난 18일 오후 광주시 서구 치평동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열린 ‘11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강단에 선 권 박사는 심리적 학대와 폭력으로 점철된 현대사회 범죄에는 사회가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박사는 우리나라에 범죄 행동 분석(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시절, 자신이 ‘파일럿’이라 오해를 받은 일화를 소개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프로파일러에 대한 인지도가 낮을 때 저를 ‘프로 파일럿’이냐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꾸준히 범죄 행동분석관 후학이 양성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후보들을 ‘아마(추어) 파일럿’이라 부르며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됐죠.”

경찰 출신인 권 박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로 활약해왔다.

이춘재,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을 포함해 1000여 명의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고 방대한 자료를 축적해왔다.

권 박사에 따르면 살인은 상당수 가족이나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다.

‘왜 가장 아끼고 의지하는 사람을 해칠까.’ 이 물음에 대해 권 박사는 ‘배려의 오류’를 들었다.

“김밥 한 줄을 허락 없이 먹었다고 미성년자가 친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이없는 범행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워 ‘진짜 김밥 때문에 저질렀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그 때문이었을까요. 어릴 적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돼 온 피의자는 어쩌면 배려의 부족으로 극단으로 치달았을지 모릅니다.”

존속 살인, 연쇄 살인과 같은 극악 범죄에 대한 동기를 알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 박사의 활약상을 담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범죄 동기를 찾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배려는 자신이 베풀었다고 해서 배려로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배려를 해야 진짜 배려죠. 상대방을 도와줬다고 생각해왔는데 호응이 오지 않으면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그릇된 배려와 소통의 균열로 인해 강력범죄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권 박사는 피의자를 심문할 때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한다.

숲 안에 있는 나무를 보는 것처럼 인물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권 박사는 반복되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힘에 관해 쓴 책 ‘업스트림’을 내용을 소개하며 “범죄가 일상을 파고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사회 범죄는 정서적 학대와 심리적 폭력으로 점철된 디지털 성범죄, 가스라이팅, 그루밍 성범죄 등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과연 타고 났는가’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다’와 ‘아니다’ 대답이 각각 절반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부단히 노력해도 가난을 극복할 수 없거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약해지면 개인은 심리적 ‘고립’에 빠지게 됩니다. 주위의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가 함께 보듬으려는 포용성이 있어야 현대사회에 드리운 강력범죄 그림자를 지울 수 있습니다.”

한편 오는 25일 열리는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는 마술사 이은결이 ‘한국 마술의 대중화와 예술성’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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