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봄 -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2023년 04월 11일(화) 00:30 가가
꽃샘추위가 무색하게 봄이 만발하고 있다.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 목련, 벚꽃이 차례로 지더니 그 아쉬움만큼 진달래와 철쭉이 반가운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연둣빛 풀 내음이 절로 묻어나는 봄나물도 계절의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냉이와 달래는 물론 두릅과 취나물 등이 봄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맛은 숨 가쁜 일상에서도 계절이 오가는 것을 깨닫게 한다.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에 거리에는 벌써 반팔 옷차림도 눈에 띈다.
일상의 곳곳에 봄이 찾아왔지만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상황이다. 올해 들어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점차 가시고는 있지만 민생 경제는 좀처럼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동산 침체에 수출 부진까지 맞물리면서 내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대적 공존에 기댄 정치권의 끊임없는 정쟁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세상 전반이 뿌연 황사에 갇힌 듯한 모습이다.
호남의 현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지방 소멸의 시대를 헤쳐 나갈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지역 정치권의 무기력은 이제 일상이 됐다. 지역 역량의 결집 등을 이끌지 못하면서 군 공항 이전, 전남 지역 의대 유치 등 지역 현안은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에너지 등 지역 경제를 이끌 미래 전략 산업도 뿌리 내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젊은 세대들이 떠나 텅 빈 농어촌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여기에 호남을 배려한다는 윤석열 정부와 여권의 ‘서진 정책’은 그야말로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가장 화사한 봄은 가장 혹독한 겨울을 지낸 뒤 온다고 한다. 그 봄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며 절망적 현실을 온 몸으로 견뎌 낸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이는 ‘차별과 소외’의 프레임 속에서 묵묵히 역사의 진전을 이끌어 온 호남의 모습과 겹친다. 결국 갈등과 혼돈의 시대에 ‘호남의 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하는 시점이다.
/임동욱 선임기자·이사 tu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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