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화도시를 가다 <15> 덴마크 코펜하겐(중)-코펜하겐 국립미술관
2023년 03월 06일(월) 00:00 가가
중세부터 현대미술 아우른 덴마크의 寶庫
코펜하겐=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회화 9000여 점, 판화·드로잉 24만여 점 등 방대한 스펙트럼
프레데릭크 5세 컬렉션 모태…‘왕의 정원’ 인근 1896년 개관
국민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 앙리 마티스 컬렉션 등 인기
온라인 통해 작품 4만여 점 전 세계 안방서 감상할 수 있어
코펜하겐=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회화 9000여 점, 판화·드로잉 24만여 점 등 방대한 스펙트럼
프레데릭크 5세 컬렉션 모태…‘왕의 정원’ 인근 1896년 개관
국민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 앙리 마티스 컬렉션 등 인기
온라인 통해 작품 4만여 점 전 세계 안방서 감상할 수 있어


덴마크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스트란데 거리의 햇살이 바닥에 비치는 방(Interior from Strandegade with Sunlight on the Floor·1901년 작)
‘덴마크에도 세계적인 미술관이 있을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덴마크는 상대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유명한 미술관이 드물었다. 그래서 미술관 탐방을 꿈꾸는 관광객들의 ‘버킷 리스트’에는 덴마크의 미술관이 눈에 띄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벨베데레 궁전, 우피치 미술관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북유럽의 미술관 관람을 계획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지리적인 여건이나 빠듯한 일정 탓도 있지만 관람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술관이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에 조예가 깊은 애호가들 사이에 ‘꼭 가봐야 할’ 덴마크 미술관이 떠오르고 있다. 1896년에 문을 연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이하 국립미술관)이다.
코펜하겐의 ‘왕의 정원’ 인근에 가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의 웅장한 건축물이 눈에 띈다. 덴마크의 14세기 이후 중세 미술과 21세기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이곳은 덴마크어로 ‘SMK’(Statens Museum for Kunst)로 불린다. 9000여 점의 회화와 조각상, 24만 여 점의 판화와 드로잉, 2600여 점의 고미술품 등 방대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이들 가운데 4만 여점은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안방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국립미술관의 풍부한 소장품은 덴마크 왕실의 컬렉션이 모태가 됐다. 1750년 당시 군주였던 프레데리크 5세(Frederik V.1723~1766)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왕실의 미술품이 빈약하다고 생각해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대거 구입했다. 이렇게 손에 넣은 작품들은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소장했지만 1884년 화재가 발생하면서 작품 보관이 어려워지자 1896년 현재의 자리에 국립미술관을 건립해 미술품들을 이전시켰다. 1993년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거쳐 빌헬름 벤즈, 콘스탄틴 한센, 크리스텐 쾨브게, 빌헬름 함메르쇼이 등 근현대 덴마크 작가 뿐만 아니라 세계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소장했다.
국립미술관이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건 바로 덴마크 출신의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oi·1864~1916) 때문이다. ‘덴마크의 에드워드 호퍼’로 불리는 함메르쇼이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상징주의(Symbolism) 미술의 거장으로 200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이 각광받으면서 재조명을 받았다.
1880년대와 20세기 초 유럽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상징주의는 미술보다는 주로 문학에서 전개된 사조다.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과학 및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과 감각의 세계에 주목을 한 것이다. 단순하고 정적인 구성, 제한된 색채로 섬세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특히 20세기 후반 상징주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면서 대표주자였던 함메르쇼이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대규모 기획전이 파리, 뉴욕, 런던, 도쿄 등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 디자인의 인기와 맞물려 그의 작품들이 문학책 표지에 등장하면서 ‘함메르쇼이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도 함메르쇼이 컬렉션이다. 미술관은 덴마크의 국민화가인 함메르쇼이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갤러리를 꾸며 미술관 뿐만 아니라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가꾸고 있다. 함메르쇼이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저택의 내밀한 거실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을 회색빛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화려한 색채와는 거리가 먼 어둡고 삭막한 북유럽의 실내 속으로 들어온 듯한 그림들은 현대인들의 근원적인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한 건물의 내부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와 비교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채도와 실내의 고요를 캔버스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실제로 호퍼는 호텔, 기차 역과 객실, 카페, 주유소 등 도시의 풍경에 눈을 돌렸다. 이들 장소는 잠시 상념에 빠지게 하는 공간이지만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의 의미가 강해 ‘안주’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와 그 곳에 갇혀 있는 듯한 사람(주로 여인)을 소재로 한 함메르쇼이의 작품은 끝모를 적막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차이점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 속 모델들은 얼굴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앞모습 대신 뒷모습으로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갖게 한다. 짙은 회색과 단색톤, 거의 드러나지 않는 붓 터치를 통해 긴장감과 침묵이 감도는 실내를 묘사하고 있다. 덴마크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과 함께 창문을 뚫고 실내로 들어오는 빛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창(窓)을 의미한다.
함메르쇼이가 ‘실내 풍경’이라는 독특한 그림을 그리게 된 건 그의 일상과 관련이 깊다. 코펜하겐 왕립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유명작가인 크로어의 아틀리에에서 공부를 한 함메르쇼이는 1880년대 중반부터 실내장면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집안을 모티브로 인간의 고독을 ‘건드린’ 독특한 화풍은 아트딜러로 부터 인기를 끌었다.
특히 1898년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 샤븐가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 그림을 그린 그는 외부활동을 삼가한 채 이 곳에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스트란데 거리의 햇살이 바닥에 비치는 방’(1901년)은 왠지 모를 적막감과 아늑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국립미술관의 또다른 볼거리는 바로 마티스 컬렉션이다. 1928년 엔지니어 출신 정치가 요하네스 럼프(Johannes Rump·1861~1932)가 자신이 평생 모은 인상파 컬렉션 215점을 미술관에 기증해 자칫 ‘밋밋할수’ 있는 SMK 컬렉션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다.
무엇보다 기증에 포함된 앙리 마티스의 작품 25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티스 작품 가운데 ‘마티스 부인의 초상’(1905년 작)과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자화상’(1906년)은 마티스의 야수파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렸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로도 의미가 크다. 야수파의 시작을 알린 세기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인의 메세나가 미술관을 넘어 도시에 활기를 불어 넣은 것이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덴마크는 상대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유명한 미술관이 드물었다. 그래서 미술관 탐방을 꿈꾸는 관광객들의 ‘버킷 리스트’에는 덴마크의 미술관이 눈에 띄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벨베데레 궁전, 우피치 미술관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북유럽의 미술관 관람을 계획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지리적인 여건이나 빠듯한 일정 탓도 있지만 관람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술관이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에 조예가 깊은 애호가들 사이에 ‘꼭 가봐야 할’ 덴마크 미술관이 떠오르고 있다. 1896년에 문을 연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이하 국립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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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립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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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작 ‘알리스’(Alice·1918년) |
1880년대와 20세기 초 유럽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상징주의는 미술보다는 주로 문학에서 전개된 사조다.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과학 및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과 감각의 세계에 주목을 한 것이다. 단순하고 정적인 구성, 제한된 색채로 섬세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특히 20세기 후반 상징주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면서 대표주자였던 함메르쇼이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대규모 기획전이 파리, 뉴욕, 런던, 도쿄 등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 디자인의 인기와 맞물려 그의 작품들이 문학책 표지에 등장하면서 ‘함메르쇼이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도 함메르쇼이 컬렉션이다. 미술관은 덴마크의 국민화가인 함메르쇼이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갤러리를 꾸며 미술관 뿐만 아니라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가꾸고 있다. 함메르쇼이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저택의 내밀한 거실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을 회색빛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화려한 색채와는 거리가 먼 어둡고 삭막한 북유럽의 실내 속으로 들어온 듯한 그림들은 현대인들의 근원적인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한 건물의 내부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와 비교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채도와 실내의 고요를 캔버스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실제로 호퍼는 호텔, 기차 역과 객실, 카페, 주유소 등 도시의 풍경에 눈을 돌렸다. 이들 장소는 잠시 상념에 빠지게 하는 공간이지만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의 의미가 강해 ‘안주’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와 그 곳에 갇혀 있는 듯한 사람(주로 여인)을 소재로 한 함메르쇼이의 작품은 끝모를 적막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차이점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 속 모델들은 얼굴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앞모습 대신 뒷모습으로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갖게 한다. 짙은 회색과 단색톤, 거의 드러나지 않는 붓 터치를 통해 긴장감과 침묵이 감도는 실내를 묘사하고 있다. 덴마크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과 함께 창문을 뚫고 실내로 들어오는 빛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창(窓)을 의미한다.
함메르쇼이가 ‘실내 풍경’이라는 독특한 그림을 그리게 된 건 그의 일상과 관련이 깊다. 코펜하겐 왕립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유명작가인 크로어의 아틀리에에서 공부를 한 함메르쇼이는 1880년대 중반부터 실내장면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집안을 모티브로 인간의 고독을 ‘건드린’ 독특한 화풍은 아트딜러로 부터 인기를 끌었다.
특히 1898년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 샤븐가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 그림을 그린 그는 외부활동을 삼가한 채 이 곳에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스트란데 거리의 햇살이 바닥에 비치는 방’(1901년)은 왠지 모를 적막감과 아늑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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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작 ‘마티스 부인의 초상’(Portrait of Madame Matisse·1905년) |
무엇보다 기증에 포함된 앙리 마티스의 작품 25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티스 작품 가운데 ‘마티스 부인의 초상’(1905년 작)과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자화상’(1906년)은 마티스의 야수파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렸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로도 의미가 크다. 야수파의 시작을 알린 세기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인의 메세나가 미술관을 넘어 도시에 활기를 불어 넣은 것이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