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석 무용론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2월 16일(목) 00:20 가가
국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성과를 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시기는 아마도 네 개의 정당이 사분할하던 1988년 4월부터 1990년 1월 3당 합당 직전까지 약 2년 간이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였는데, 어떤 정치 세력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화와 타협은 당연했다. 175석의 야당·무소속이 국회를 주도하면서 5·18 민주화운동, 언론통폐합, 전두환 정권의 권력형 비리 등의 청문회가 열렸고, 월북 및 납북 작가 작품 해금, 공연 사전 심의 철폐 등과 함께 각 분야별로 개혁 조치가 시행됐다.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1990년 여당과 두 개의 야당이 합쳐 만든 민주자유당(217석)에 이어 우리나라 역사상 두 번째 거대 정당이다. 2년여 동안은 행정부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교육, 재벌, 부동산, 국가 불균형, 2할 자치 등을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재 기용 등에 실패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오히려 부에 이어 직업까지 대물림하는 지경에 이르러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수도권은 더 커져 지방은 소멸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최근 만난 후배가 초등학교 자녀에게 들어가는 학원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선행 학습 중심의 사교육을 안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루하루가 버거워 아이들을 공교육에만 맡겨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 줄 수 없는 평범한 부모들의 마음은 찢어질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문제투성이 교육 시스템이지만, 고쳐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 후배는 “이재명·김건희 수사가, 한동훈·김의겸의 말장난이 지금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전히 169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은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파벌·계파에 충성하며, 공천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그들은 말 그대로 기득권 세력이다. 허송세월한 2년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심정으로,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혁신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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