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갑니다-진헌성 지음
2023년 02월 12일(일) 19:35
진헌성 광주 진내과 원장, 2년 만에 시 전집 제16권 펴내
1045편 수록 “아흔 둘 인생 돌이켜 보면 어리석음의 반복”
“내 아흔 둘의 평생을 돌이켜 보면 어리석음의 반복였을 뿐 유익한 짓거리를 예들을 수 없는 수치의 세월뿐이다. 일천한 지식과 지둔한 머리로 인문학까지 뒤지는 시늉을 해봤으나 모두가 도로요 이해불능뿐였다. 막상 그런가 싶어 다가가면 다가설수록 멀어져가는 신기루의 학문였다.”

진헌성 시인(광주 진내과 원장)이 2년 만에 시전집 제 16권 ‘잘 살고 갑니다’(한림)를 펴냈다.

올해 만 91세인 진 시인은 이번 시전집에 모두 1045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일반적으로 한 권의 시집에 50여 편의 작품이 실리는 것을 감안하면 시집 20권 내지 21권 분량의 작품이 묶였다 할 수 있다.

젊은 시인들도 하기 어려운 작업을 노(老) 시인이 2년에 걸쳐 작품집으로 갈무리했다는 것은 ‘기적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하루 평균 2편 안팎의 시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야만 묶을 수 있는 분량이다.

작품집에는 대체로 10행 안팎의 간결한 시도 있지만 20~30행 되는 시도 있다. 작품이 많다고 태작이라 할 수 없는 것은 하나하나의 시가 지닌 의미와 사유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도 있지만 오랫동안 궁구해 단상을 논리 정연하게 그려낸 작품도 적지 않다.

이번 작품집에서 시인은 인문학의 최고봉은 노자의 도덕경에 있다고 본다. 자연과학적 사고에 인문학적 노자의 사고를 접목하면 과학문명이든 기계문명이든 우주과학이든 무해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삼라만상 총회에서/ 사피엔스가 너무 앞서간다며/ 대표로 코로나를 내세워// 사람들 아가리에 아귀를 물리기로 가결 성공하자// 모두 일어나 쌍수로 축하파티를/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열게 됐다며// 누구 아니데, 찝적찝적 입맛들 다신다// 세상 생기고 처음!”

위 시 ‘입마개’는 코로나가 왜 발생했는지 인류학적,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일반 시인들이 다뤘던 기존의 ‘코로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환기한다. 작금의 시단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학적인 접근과 분석적 사유는 진 시인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진 시인은 이전 14시집에서는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해 테크놀로지 문명으로 전환의 필요성을 작품에 담았다. 15시집에선 관념적 에너지 소모에서 생산적인 에너지 사회조직으로 발전해 인간구조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을 창작에 투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이데올로기 문명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 새 이데올로기가 아닌 테크놀러지 문명으로 초극해가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한편 이번 시집의 표지 제호를 비롯해 내지 제호는 담헌 정명옥의 작품이다. 내지 ‘무위자연’은 전체 시집의 주제를 집약하고 견인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한편 진 시인은 1970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지금까지 시집 전 16권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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