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고선주 시인
2023년 02월 06일(월) 19:10 가가
“삶이 물 먹은 솜뭉치처럼 제 무게에 가라앉던 날 꽃과 악수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밥알의 힘을 망각한 채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마저 몽롱해졌다. 노트북 자판 앞, 언어들이 심란하다. 긴꿈에서 막 깨어났다.”
고선주 시인(광남일보 문화부장)이 네 번째 시집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걷는사람·사진)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불면의 시간들, 포말처럼 흩어져 가는 기억들, 뜨겁거나 차갑거나 아무렇게 놓인 일상들”이라는 시인의 말대로 그동안의 ‘불면의 시간’과 ‘흩어져가는 기억’, ‘아무렇게나 놓인 일상’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이 작품들은 ‘꿈’이라는 시어로 수렴되는 것 같다. ‘긴 꿈에서 이제 깨어났다’는 것은 오랫동안 꿈속에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문인들의 숙명이었을 테다. 특히 일간지 기자로 날마다 글을 써야 하는 고 시인으로서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과 써내야 하는 글 사이에서 아득한 꿈을 꾸지 않았을 까 싶다.
그 꿈속에서 꾸는 ‘꿈’과 현실에서 꾸는 ‘꿈’의 경계는 아니나 다를까 모호하다. 삶으로 치환되기 어려운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상은 기실 대부분 ‘밥벌이’에 매몰된 이들의 모습일 게다.
“한파를 점점 닮아 가는 날들/ 봄날이 한발씩 멀어지는 중년/ 누우면 다 집인 줄 알았으나/앞이 보이지 않는 동굴이다/ 식어버린 밥처럼 식감이 없는/ 오후의 시간/ 적당히 실패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밀며/ 내일의 나를 향하지만/ 실상 그 자리 그대로인 삶// 살아지지 않는 집에는/ 언제부터인가/ 살아지지 않는 삶이 기거하고 있다…”
위 시 ‘집으로 가는 중’은 현대인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중년의 화자에게 매일매일 돌아가야 할 집은 ‘빈 집’, ‘빈 꿈’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비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추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담보한다.
이병국 시인은 “일반적으로 휴식의 공간이자 재충전의 사적 장소인 집은 상징적 질서를 내면화한 상상적 공간일 뿐 실상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도 “시적 수행이 이루어낼 삶의 향방을 따르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부재한 집의 부정성으로부터 삶을 지켜낼 하나의 가능성이 아닐까”라고 평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런 집을 향해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은 터벅터벅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모두 아득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 고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를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고선주 시인(광남일보 문화부장)이 네 번째 시집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걷는사람·사진)을 펴냈다.
이 작품들은 ‘꿈’이라는 시어로 수렴되는 것 같다. ‘긴 꿈에서 이제 깨어났다’는 것은 오랫동안 꿈속에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꿈속에서 꾸는 ‘꿈’과 현실에서 꾸는 ‘꿈’의 경계는 아니나 다를까 모호하다. 삶으로 치환되기 어려운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상은 기실 대부분 ‘밥벌이’에 매몰된 이들의 모습일 게다.
위 시 ‘집으로 가는 중’은 현대인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중년의 화자에게 매일매일 돌아가야 할 집은 ‘빈 집’, ‘빈 꿈’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비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추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담보한다.
이병국 시인은 “일반적으로 휴식의 공간이자 재충전의 사적 장소인 집은 상징적 질서를 내면화한 상상적 공간일 뿐 실상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도 “시적 수행이 이루어낼 삶의 향방을 따르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부재한 집의 부정성으로부터 삶을 지켜낼 하나의 가능성이 아닐까”라고 평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런 집을 향해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은 터벅터벅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모두 아득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 고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를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