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나비에게 묻고 싶은 것-김향남 수필가
2023년 02월 06일(월) 00:15 가가
1.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주춤했다. 거대한 코뿔소 한 마리가 쓰러져 있고 주위에 사자들이 여남은 마리나 몰려 있는 화면에서였다. 그들의 표정은 매우 흡족해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물고 뜯고 충분히 배 불릴 수 있는 먹이가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정작 눈길을 붙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나비! 그건 분명히 나비들이었다. 하늘하늘 얇은 날개를 팔랑거리며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 말이다. 그 나비가 시커먼 코뿔소의 몸 위에 떼 지어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나레이터는 코뿔소 사체에 아주 훌륭한 영양분이 있다고 말했다. 나비는 지금 그것을 빨아 먹는 중이라고. 그러니까 나비는 죽은 코뿔소에게 날아들어 그의 검붉은 시즙(屍汁)을 포식하는 중이었다.
선뜻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내 머릿속의 나비는 언제나 꽃밭을 날고 있었다. 나비는 꽃향기나 이슬 같은 것을 먹고 사는 정갈하고 고상한 족속이었다. 하늘거리는 날개가 곱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존재. 그런데 저건 뭔가 나비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비는 화려한 색채와 춤을 추듯 우아한 날갯짓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곤충의 대표 주자가 아니던가. 그런 나비가 어떻게 죽은 코뿔소 따위를 탐낸단 말인가. 사자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쳐도, 설마 나비가?
긴가민가 휘둥그레 화면을 바라봤다. 놀랍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사뭇 기괴하기까지 했다. 자연의 생태를 보고하는 다큐멘터리를 두고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묘한 배반감에 한참을 헷갈린 채로 있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이상한 것도 많은지, 나는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지….
2. 나비는 처음부터 나비였을까? 그렇진 않다. 나비는 아주 작은 알이었다가 애벌레였다가 번데기였다가 성충(나비)으로 변신한 곤충의 일종이다. 꿈틀꿈틀 바닥을 기다가 두 날개로 훨훨 공중을 날게 된 우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벌레에서 나비로의 변신은 엄청난 비약이다. 하찮고 징그러운 벌레에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로의 눈부신 전도(顚倒). 그러나 그 거짓말 같은 사실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
옛날 어떤 사람도 나비를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가 보다.
<바야흐로 꽃과 풀들이 한창인데, 온갖 나비들이 와서 즐기고 있었다. 흰 가루분을 바르고 붉은 점을 찍은 것도 있고, 날개는 검고 눈이 붉은 것도 있으며, 누런색인 것도 있고, 담청색인 것도 있으며, 오색이 갖추어진 것도 있었다. 나비를 잘 아는 사람이 낱낱이 그 이름들을 알려주었다. 또 그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양을 아주 자세히 일러주고는 앞에다 침을 뱉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는 좋아할 것 없네. 저것들의 근본은 아주 추하여 가까이할 수 없다네.”
내가 말하였다.
“아! 아니다. 자네는 벌레는 벌레로 여기고 나비는 나비로 여기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 왜 나비를 벌레라고 하는가? 이것은 대장군이 된 ‘위청’을 노비로 여긴 것이요, 충성스럽고 의리가 있는 ‘주처’를 패륜아로 여긴 것이며, 문장력이 있는 ‘곽원진’을 도둑이라 여긴 것이나 마찬가지네. 자네는 개구리의 꼬리를 탓하고 비둘기의 눈을 의심하고자 하니, 자네의 앞에 용인되기가 어렵겠구려.”>(이옥(李鈺) ‘백운필’ 중에서)
3.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비는 주로 꿀을 먹고 살지만, 어떤 나비들은 나무의 진액을 먹고 살고, 어떤 나비들은 새똥 등의 동물 분비물을 먹고 산다. 동물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액을 빨아먹는 나비도 있고, 사람의 땀 냄새를 좋아하여 등산객에게 날아드는 나비도 있다고 한다. 어떤 나비들은 진딧물이나 깍지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개미와 공생하면서 개미의 애벌레까지 먹어치워 개미의 씨를 말리는 나비 애벌레들도 있다고 한다.
무릇 벌레는 박대하고 나비는 환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하지만, 나비가 벌레고 벌레가 곧 나비임에랴. 아니다. 나비는 나비고 벌레는 벌레다. 나비도 벌레도 아무 말이 없으니 다만 보는 자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어도 가끔 묻고 싶기는 하다. 벌레와 나비는 하나일까, 둘일까? 아니면 하나이면서 또한 둘일까? 그 나비는 왜 하필 죽은 코뿔소에게로 갔을까?
선뜻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내 머릿속의 나비는 언제나 꽃밭을 날고 있었다. 나비는 꽃향기나 이슬 같은 것을 먹고 사는 정갈하고 고상한 족속이었다. 하늘거리는 날개가 곱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존재. 그런데 저건 뭔가 나비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비는 화려한 색채와 춤을 추듯 우아한 날갯짓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곤충의 대표 주자가 아니던가. 그런 나비가 어떻게 죽은 코뿔소 따위를 탐낸단 말인가. 사자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쳐도, 설마 나비가?
옛날 어떤 사람도 나비를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가 보다.
<바야흐로 꽃과 풀들이 한창인데, 온갖 나비들이 와서 즐기고 있었다. 흰 가루분을 바르고 붉은 점을 찍은 것도 있고, 날개는 검고 눈이 붉은 것도 있으며, 누런색인 것도 있고, 담청색인 것도 있으며, 오색이 갖추어진 것도 있었다. 나비를 잘 아는 사람이 낱낱이 그 이름들을 알려주었다. 또 그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양을 아주 자세히 일러주고는 앞에다 침을 뱉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는 좋아할 것 없네. 저것들의 근본은 아주 추하여 가까이할 수 없다네.”
내가 말하였다.
“아! 아니다. 자네는 벌레는 벌레로 여기고 나비는 나비로 여기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 왜 나비를 벌레라고 하는가? 이것은 대장군이 된 ‘위청’을 노비로 여긴 것이요, 충성스럽고 의리가 있는 ‘주처’를 패륜아로 여긴 것이며, 문장력이 있는 ‘곽원진’을 도둑이라 여긴 것이나 마찬가지네. 자네는 개구리의 꼬리를 탓하고 비둘기의 눈을 의심하고자 하니, 자네의 앞에 용인되기가 어렵겠구려.”>(이옥(李鈺) ‘백운필’ 중에서)
3.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비는 주로 꿀을 먹고 살지만, 어떤 나비들은 나무의 진액을 먹고 살고, 어떤 나비들은 새똥 등의 동물 분비물을 먹고 산다. 동물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액을 빨아먹는 나비도 있고, 사람의 땀 냄새를 좋아하여 등산객에게 날아드는 나비도 있다고 한다. 어떤 나비들은 진딧물이나 깍지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개미와 공생하면서 개미의 애벌레까지 먹어치워 개미의 씨를 말리는 나비 애벌레들도 있다고 한다.
무릇 벌레는 박대하고 나비는 환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하지만, 나비가 벌레고 벌레가 곧 나비임에랴. 아니다. 나비는 나비고 벌레는 벌레다. 나비도 벌레도 아무 말이 없으니 다만 보는 자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어도 가끔 묻고 싶기는 하다. 벌레와 나비는 하나일까, 둘일까? 아니면 하나이면서 또한 둘일까? 그 나비는 왜 하필 죽은 코뿔소에게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