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복면 대왕-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3년 01월 29일(일) 22:00 가가
복면 가왕 프로가 인기다. 노래 듣기는 물론 가수를 알아맞히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은 양반의 위선과 횡포를 가면인 탈을 쓰고 꼬집었다. 만화 각시탈이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의 복면 연기는 압권이다. 약자인 주인공들에게 복면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상대와 맞서거나 풍자하기 적격이었다. 복면 가왕은 이런 복면에 착안하여 목소리만으로 정체를 알아맞히기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우리 호기심을 자극하여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복면은 상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꺼림칙할 때도 많다. 은행털이범이나 좀도둑들만 복면을 쓰는 게 아니다. 흉악범들 대부분이 복면을 쓰고 범행을 자행한다. 실제 산 속에서 복면을 쓴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각시탈, 배트맨, 쾌걸 조로 등의 주인공은 눈만 가린 정도이다. 표정 연기가 필요하고 키스 장면을 염두에 둔 복면이라고들 한다. 복면 가왕을 보면 복면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얼굴만 가렸는데도 누군지 좀체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사실 복면이나 투명 인간은 세상의 주변인인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흔히 대중 또는 노동자로 표현되는 얼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쓴다. 고작 선거철이면 한 표를 가진 상품이고 경제적 의미에서는 단순 소비자로 취급당하는 우리, 그래서 복면 금지법에 맞서 얼굴을 찾자고 노동자나 민중이란 이름으로 거리에 나가 싸우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복면을 강요하는 경우이다. 이란을 비롯한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코란을 들어 강요하고, 이에 맞선 많은 여성들은 착용 반대 운동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물론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치 21세기에 학생들에게 교복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쉽게 관리하고 자신들과 구별지으려는 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복면이 사회를 바꾸기도 하였다.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붙들고 있는 이종창 씨처럼 80년대 상당수 젊은이들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독재 정권과 싸웠다.
누구나 어느 정도 가면과 복면을 쓰고 살아간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어렵지 않게 가면이 벗겨진 본모습을 볼 수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말들은 인간적 고뇌 없이 자기 이름만 내세우며 떠들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면이 벗겨지고 만 꼴이다. 직위가 개 발에 편자다.
대통령 옷 역시 누구나 입는 게 아니다. 아무리 비단 옷을 입고 있다 한들 막말을 하거나 함부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좋은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선을 싼 옷은 비린내만 날 뿐이다.
주인공이나 유명 인사만 복면을 쓰고 살아가는 게 아니다.
얼마 전 교내 인사 발령이 있었다. 학교를 옮기는데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호불호 없이 사는데 어떤 무리는 좋겠다고 축하를, 또 어떤 무리는 잘 견디라고 위로를 보내 준다. 난 진실을 보여 주었는데도 그들 눈에 난 복면을 쓴 인간, 복면 대왕일 뿐이다.
얼굴도 넓게 보면 하나의 복면이다. 다양한 표정으로 내면을 감추는 가면인 페르소나, 옷 역시 제2의 피부라고 몸을 감추는 복면이랄 수 있다. 우린 몸도 마음도 잘 감추고 살아간다. 그래서 호기심 가득 신비로움 반으로 상대를 그리고 세계를 탐색하고 탐험하며 살아간다. 그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어, 사랑해, 행복해, 힘내! 복면의 힘이다.
신 역시 인간 앞에서 여러 다양한 복면을 쓰고 존재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복면 너머 진실을 향한 우리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보인다.
조선 후기 서민들은 양반의 위선과 횡포를 가면인 탈을 쓰고 꼬집었다. 만화 각시탈이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의 복면 연기는 압권이다. 약자인 주인공들에게 복면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상대와 맞서거나 풍자하기 적격이었다. 복면 가왕은 이런 복면에 착안하여 목소리만으로 정체를 알아맞히기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우리 호기심을 자극하여 즐거움을 준다.
각시탈, 배트맨, 쾌걸 조로 등의 주인공은 눈만 가린 정도이다. 표정 연기가 필요하고 키스 장면을 염두에 둔 복면이라고들 한다. 복면 가왕을 보면 복면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얼굴만 가렸는데도 누군지 좀체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복면이 사회를 바꾸기도 하였다.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붙들고 있는 이종창 씨처럼 80년대 상당수 젊은이들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독재 정권과 싸웠다.
누구나 어느 정도 가면과 복면을 쓰고 살아간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어렵지 않게 가면이 벗겨진 본모습을 볼 수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말들은 인간적 고뇌 없이 자기 이름만 내세우며 떠들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면이 벗겨지고 만 꼴이다. 직위가 개 발에 편자다.
대통령 옷 역시 누구나 입는 게 아니다. 아무리 비단 옷을 입고 있다 한들 막말을 하거나 함부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좋은 옷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선을 싼 옷은 비린내만 날 뿐이다.
주인공이나 유명 인사만 복면을 쓰고 살아가는 게 아니다.
얼마 전 교내 인사 발령이 있었다. 학교를 옮기는데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호불호 없이 사는데 어떤 무리는 좋겠다고 축하를, 또 어떤 무리는 잘 견디라고 위로를 보내 준다. 난 진실을 보여 주었는데도 그들 눈에 난 복면을 쓴 인간, 복면 대왕일 뿐이다.
얼굴도 넓게 보면 하나의 복면이다. 다양한 표정으로 내면을 감추는 가면인 페르소나, 옷 역시 제2의 피부라고 몸을 감추는 복면이랄 수 있다. 우린 몸도 마음도 잘 감추고 살아간다. 그래서 호기심 가득 신비로움 반으로 상대를 그리고 세계를 탐색하고 탐험하며 살아간다. 그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어, 사랑해, 행복해, 힘내! 복면의 힘이다.
신 역시 인간 앞에서 여러 다양한 복면을 쓰고 존재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복면 너머 진실을 향한 우리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