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2023, 길 위에서 길을 찾다
2023년 01월 09일(월) 22:00
걸으며 맞이하는 계묘년의 희망
나를 새롭게 만나는 걷기의 행복
산티아고 순례길·해파랑길…
숲과 산·바다 도보길 찾으며
걷기 즐거움 새로운 매력에 푹
해양치유 일번지 완도
명사십리 ‘노르딕 워킹’ 등

‘걷기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네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트레킹에 나선 여행자들이 푸모리 봉(해발 7068m) 인근 산길을 걷고 있다.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하는 걷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준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하는 걷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새해를 맞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산보와 둘레길 트레킹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796㎞ ‘상념의 길’ 걷는 산티아고 순례자

“까미노는 내게 만남의 길이자 상념의 길이었다. 만남은 상념으로 이어지고, 상념의 뒷자락에는 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017년 연구년을 맞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Santiago Camino)을 걸은 양회석(66)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는 여행기 ‘어느 동양학자의 산띠아고 까미노’에서 이렇게 말한다. 홀로 길을 떠난 까닭은 ‘태어난 해의 갑자(甲子)를 다시 맞고 보내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 ‘홀로 낯선 곳을 하염없이 걸어보기로’ 하기 위함이었다. 꼬박 26일 동안 걸은 순례길 거리는 796㎞.

이어 2021년 봄에는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잇는 ‘해파랑길’(총길이 770㎞)을 20여 일간 걸었다. 종주를 마친 양 교수는 연어들의 회귀지인 양양 남대천을 찾아 ‘강단에 처음 섰을 때의 초심을 잃지 말고, 본원을 찾는 인문학적 길을 더 열심히 걷자’고 다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양회석 전남대 명예교수.
“영원 회귀를 향하는 길을 찾아 걷고 싶다. 길이 있기에 걷는 것이라면 그 길을 걸을 것이고, 걷기에 길이 생긴다면 그 길을 위해 걸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한 행인이다. 회귀하는 연어처럼.”

지난해 정년퇴임한 양 교수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했던 시간들을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쳤다’는 의미) 40년’이라고 표현했다. 자호(自號)를 ‘길을 찾고,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사람’과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 등 중의적 의미를 담은 행인(行人)이라고 지은 양 교수는 퇴임 이후 광주 시민들과 함께 고전 ‘노자’와 ‘장자’를 강독하는 인문학 강좌 ‘행인 학당’을 열어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한 이래 끊임없이 걸어왔다. 마차를 넘어 자동차와 비행기, 나아가 우주선이 막막한 우주공간에 길을 내고 있는 현재에도 오롯이 두발로 걸어야 하는 걷기의 본질은 변함없다. ‘코로나 19’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은 집주변 동네를 거닐고, 숲과 산·바다 도보길을 찾으며 걷기의 즐거움과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었다. 걷기는 체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생각을 키우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진정한 ‘나’를 찾게 만든다.

뇌연구자인 셰인 오마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교 교수는 ‘걷기의 세계’(미래의창 刊)에서 멍게를 예로 들어 인류의 뇌 발달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멍게는 유생단계에서 평형포(세포 낭주머니)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평형포에는 신경을 거쳐 뇌로 연결된 털이 줄지어 있다. 그런데 바위에 몸체를 고정하는 고착단계로 전이하면 뇌와 척수, 눈 세포를 재 흡수해 영양분으로 삼는다.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멍게의 뇌는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운동성이 있는 유생 단계의 멍게는 움직임으로 인해 특수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지만, 고착상태에 이르면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면서 “뇌는 움직임을 위해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인간은 걷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걷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평생 걷기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영아는 ‘평균 2368걸음으로 701m를 걷고 한 시간에 17번 넘어진다’고 한다. 세상에 갓 태어난 영아의 걸음마에 수백 만 년 인류의 직립보행 역사가 스며있는 셈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6만 년 전 무렵, 기후변화 등 요인으로 인해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등 세계 각지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기원전 1만 년께에는 남미 끝단에 이르렀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를 끊임없이 앞으로 걷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걷기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시간경험”

“어떤 걷기의 시간에 우리의 뇌는 철학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집약적으로 수행한다. 그때, 걷기란 생각을 걸어가게 함이며, 생각의 물길을 흐르게 함이다. 걷기는 우리의 정신 활동을 자유롭게 풀어주며, 일단 풀려나면 정신은 새로운 생각의 물길을 열어간다. 천천히 꾸준히 걸어가는 발은 철학적인 뇌와 사귀는데, 이런 사귐의 경험을 고백한 이들은 부지기수다.”

우석영 작가와 소병철 순천대 철학과 교수는 함께 지은 ‘걸으면 해결된다’(산현재 刊)에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철학적 걷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몸에 좋은 걷기’가 아닌 걷기의 철학적 의미를 탐색한다. 두 저자는 “한마디로, 걷기는 회복, 자활, 자기강화의 기술이자 실천이며, 세계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시간경험이다”고 요약한다.

이와 함께 저자들은 “자기목적적인 시간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일도 수행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점, 즉 행위를 버리고 무위(無爲)를 선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런 도보 여행자에게는 ‘호모 오티오수스(Homo Otiosus·무위의 인간)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밝힌다.

걷기는 단순 건강 차원을 뛰어넘어 사유와 창조, 철학의 경지로 확장된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19’ 팬데믹을 관통하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하고, 가까운 숲과 둘레길을 찾아 걸었다. 이를 통해 ‘소설가 구보씨’처럼 거주하고 있는 동네와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풀과 나무와 곤충, 새 등 자연에 눈길을 주며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됐다. 인간은 지구를 이루는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녹색의 길에서 불안감을 잠재우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었다.

완도 신지도 해변에서 진행되는 ‘노르딕 워킹’ 프로그램 <완도군 제공>


◇완도군 ‘노르딕 워킹’ 해양치유 호응

걷기 관련 명언 가운데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나의 왼다리와 오른 다리”(조지 트레벨리언)라는 명언이 귀에 쏙들어온다. 그만큼 걷기는 사람들의 건강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쪽 셰틀랜드 제도의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예방의학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바닷가 산책을 처방한다고 한다. ‘해양치유 일번지’로 불리는 완도군 역시 지난 2018년부터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노르딕 워킹’을 비롯한 다양한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걷기와 바다를 활용한 ‘해양치유’이다.

셰인 오마라 교수는 ‘걷기의 세계’에서 걷기로 ‘사회적 인간’이 됐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걷기는 홀로 걷기보다 다수의 사회적 걷기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걷기는 타인에게 우리의 공유된 의지와 집단적인 목표를 보여주고, 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회적 걷기는 공통의 목표를 향하거나, 특별한 이유나 목적지 없이 그저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라도 좋은 형태의 걷기가 될 수 있다.”

걷기는 도시설계에 적용돼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저자는 “걷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많은 측면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활동”이라며 도시설계에서 ‘E·A·S·E’를 염두에 둬야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걷기 쉬워야 하고(Easy),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Accessible), 안전하고(Safe), 즐거움(Enjoyable)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 새해를 맞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걷기를 통해 나를 비롯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길’(道)을 찾는다. 러닝머신에서, 도시에서, 둘레길에서… 비로소 첫 걸음을 뗀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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