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잡념- 옥영석 농협경제지주 마트전략부장
2022년 12월 28일(수) 00:30
매일같이 해는 뜨고 지지만 요맘때는 왜 그리 해는 빨리 지고, 시간은 쏜살 같은지, 급강하하는 기온보다 몸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직장 생활 30년이 되어도 인사철만 되면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승진하는 사람, 영전하는 직원, 가고 싶었던 자리에 가지 못해 실망하는 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 서너 건이면 안타깝게도 위로해야 할 일이 서너 배는 되는 것 같다. 승진이등 영전이든 비어 있는 자리보다 경쟁률은 늘 더 높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리에 올라 축하 잔치를 벌이는 것을 소미연(燒尾宴)이라 한다. 황하에서 가장 물살이 센 곳인 용문을 통과하는 잉어만 용이 될 수 있었다. 용문에 올랐다고 다 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 오를 때 번개가 내리치는데 꼬리를 태운 잉어는 용이 될 수 있었지만 꼬리를 미처 태우지 못하면 이무기가 되어 떨어졌다고 한다. 잔치를 벌여 마시고 먹는 것에도 무작정 부어라 마셔라가 아니라, 계급이 높아진 만큼 이전의 사고와 태도를 바꾸는 계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대껴 왔던 분들이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나고, 낯선 동료들을 맞아야 할 시간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늘 낯설고 어색하고 새로운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다. 보따리를 싸고 사무 공간을 새로 만들다 보면 빈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할 때가 있다. 작업 중 휴식이니 아무 자리에나 앉으면 될 일이지만 상사의 자리는 앉지 않을 뿐 아니라, 남에게도 앉지 못하게 하는 선배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니 상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유별나게 그럴 거까지야 싶었는데, 그는 임원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실력도 출중하고 관운도 있었다지만 평상시의 그런 태도가 쌓이고 쌓여 높은 자리까지 오르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3~4년이면 다른 근무지로 이동을 하는 직장에서는 두 번 정도 같이 근무하면 인연이고, 세 번 만나는 경우가 드물어 필연으로 여긴다. 나는 30년간 딱 두 분의 선배를 세 번 만나 근무를 같이 했다. 한 분은 광주에서 두 번을, 서울에서 임원으로 근무하실 때 모셨던 일이 있다. 인품이 뛰어나 주변에 늘 사람이 모였고, 매사에 긍정적인데다 적극적인 업무 추진으로 상사들이 아껴 주었고 후배들이 늘 따랐다. 인사철이면 같은 사람을 두고 이쪽저쪽에서 같이 전입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선임 팀장이 먼저 요청한 직원을 빼갔다고 갖은 곤욕을 치르기도 하셨고, 하루 5시간씩 출퇴근하는 후배를 위해 인사 담당에게 아쉬운 얘기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다른 한 분은 용모가 준수해 남자가 봐도 질투가 날 지경이었는데, 세 번씩이나 책상을 마주하고 일하다 보니, 용모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과 원칙을 지켜 나가는 신념이 더 대단한 선배였다. 자신이 근무하던 사무소에 발령받은 후배에게 몇 해 전 업무 일지를 뒤적여 네댓 장이 넘는 착안 사항을 정리해 와 설명하시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인수인계를 하다 보면 전임자가 부임지로 떠나기 마련이어서 시간에 쫓겨 마무리하고는 전화를 몇 번씩 주고받기 마련이지만 4년 전 전임자가 그토록 정성을 들이니 전임자와는 따로 인수인계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인수인계서에 몇 자 적은 것을 빼고는 자신이 쓰던 PC를 포맷하고 가 버렸다는 직원도 있었는데 일 잘하고 영민하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애써 보았지만 사람이 달라 보여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한파와 함께 30㎝가 넘는 눈이 오고, 성탄절이 가고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나름 밥값을 하려 애써 보았지만 어느 해보다 이룬 것 없이 헛발질하다 세월만 흘려보냈다.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의지 박약을 탓하며 자책해 보지만 그리 낙담할 일만은 아니다. 내일은 또 해가 뜰 것이고 계획은 다시 세우면 된다. 세밑 해넘이에 사진을 찍고, 새해의 해돋이를 보러 몇 시간씩 이동하며 수선을 떠는 이유는 새롭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일, 주, 월, 년으로 나눠 부르며 구분하는 것도 새날이 오고, 한 주가 오고, 새로운 달과 해가 시작될 때 새로운 계획을 세워 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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