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헬퍼스 하이-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12월 19일(월) 00:30
세밑이다. 춥다. 한 장 남은 잎, 한 장뿐인 달력처럼 내 마음도 덩달아 스산하다. 바람도 추위를 피해 남녘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처마 밑 바람도 자꾸 방안을 기웃거리느라 문풍지를 두드린다.

퇴근길에 뒷골목 막걸릿집에 들른다. 이 집을 지나치지 못하는 건 막걸리보다 가끔 드나드는 이조차 따뜻하게 맞이하는 주인집 마음 때문이다. 내 허기를 채우는 것은 막걸리가 아닌 정이 분명하다. 정에 취해 터벅터벅 걸어 돌아온다. 사위는 깜깜하다. 싸락싸락 늦은 밤, 싸락눈 내리는 나무전거리에 손수레가 지나간다. 누군가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말을 건다. 중년 여인은 노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고개를 두 번 숙이더니 총총 되돌아가고, 할머니 손에 이만 원이 쥐어져 있다.

“고맙제라, 운덜한테는 이백만 원보담도 더 가치 있는 돈이제라.”

할머니는 내일 병원에 가는 데 쓰겠다며 아픈 다리를 내보이며 골목으로 접어드는 딸 같은 여인을 향해 고개를 곱게 숙인다. 그 다리 위로 숙인 등 위로 8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오늘의 눈발이 떨어진다. 노인의 폐지 더미를 무연히 바라본다. 할머니에겐 너무 높아 줄을 제대로 묶지 못했나 보다. 폐지 몇 묶음이 휘청인다.

노인 손수레에서 툭 떨어진 신문 한 장, 가만히 주워 펼친다. “해마다 이름 없는 기부 천사. 올해도 주민센터 앞에 쌀과 현금,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쪽지 한 장” 고개를 들어 보니 노인이 보이지 않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밥 못 먹고 사는 시대는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삶이 벅찬 이들이 적지 않다. 그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게다. 시대 운도 있고 대물림도 있다. 바동거려도 안되는 게 얼마나 많던가. 그런데도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슬며시 내미는 손길은 다습고 또 따습다.

어쩜 그도 넉넉하지 않을 게다. 대체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가 아끼고 또 아껴서 돕는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흔쾌히 내놓을 수 있는 저 배짱 저 용기,

베풀거나 준다는 말도 주제 넘는다. 그냥 슬며시 전해 주며 사는 삶이 바로 부처나 예수의 삶이 아닐까.

어렸을 적 우린 자주 이웃집과 나눴다. 일도 나눴고 밥도 나눠 먹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가시면 으레 우리 사형제는 둘둘 나눠서 그 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같은 찬에 같은 밥을 먹었다. 모두 먹고살기 바빴던 그 가난한 시대를 잊지 못한 것은 그 강렬한 가난이 아니라 그 가난 속에서도 나눈 따뜻한 인간적 나눔 때문일 게다.

아쉽게 요즘은 나누는 일이 별로 없다. 가족조차 뿔뿔이 나뉘어 살다 보니 삶도 생각도 나눠졌다. 그러다 보니 더 나눔이 요긴해졌다. 그 나뉨을 메우는 것도 또한 나눔이지 싶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헬퍼스 하이(영어: Helper‘s High)란 말 그대로 누군가를 도와주면 그 사람들의 행복이 올라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뜻하는 정신의학적 용어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인(人)처럼 서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결국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나를 스스로 돕는 일이 되나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모든 것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다. 그들 마음을 헤아리기란 더욱 어렵다. 낮은 곳일수록 잘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사람이다.

춥다. 이태원도 이곳 광주도. 이 추위도 나눠 가지면 어쩌면 서로의 마음 행복지수는 높이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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