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 수선공 칠복 씨- 고성혁 시인
2022년 12월 14일(수) 00:30 가가
갑자기 물이 끊겨 나가 보니 모터가 탈탈거렸다. 높은 곳에 집이 있어 모터 없이는 먹는 물을 끌어올 수 없었다. 탈탈거리다 내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모터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칠복 씨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 출장 수리 같은 것 안 해요. 칼 같은 거절이었다. 지난번 찾아갔을 때 그에게 당한 일이 떠올랐다. 변두리 골목의 수리점을 어렵게 찾았건만 주인이 없었다. 잡동사니 철물이 가게 밖까지 쌓인 광경을 심란하게 바라보며 전화를 걸었더니 주인장이라고 나타난 양반, 몸 한 편이 불편했다. 아마 실망한 눈치를 보였을 것이다. 스파나 좀 돌려 보씨오. 잠시 후 오른손으로 파이프 렌치를 잡은 그의 요구에 스패너를 젖히는 순간 물이 콸콸 쏟아졌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의 나를 보면서도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장 난 모터를 단박에 수리했던 그를 꾀어야만 했다.
제가 모시러 가도 안 될까요? 하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지인에게 물어 한 시간이나 애를 쓴 끝에 어찌어찌 모터를 분리해 가져갔건만 모터 소리를 들은 칠복씨는 못 쓰것소, 딱 잘라 말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동네 상수도 공사가 끝난 지 오래, 얼마 뒤면 간이상수도가 없어져 모터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새 걸 사느라 삼십 만원 넘는 돈을 쓸 수는 없었다. 얼굴을 찌푸리고 망연자실 서 있자 그런 내 몰골을 보던 칠복 씨, 고물 모터들을 가리키며 그라믄 비슷한 걸 찾아보시오, 라고 말했다. 기름때 묻은 모터들을 무작정 들쑤셨다. 그러기를 삼십 분, 결국 비슷한 걸 찾아내자 땀에 젖은 내 얼굴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이것이 있었구만이, 심상하게 중얼거린 칠복씨는 모터에 물을 채운 뒤 수압을 체크하고는 이건 쓰것소, 라고 짧게 말했다.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고장 난 모터의 볼트를 풀기 시작한 칠복 씨는 계속 힘을 줘도 장애가 있는 오른손 때문에 헤드셋 스패너가 번번이 비끌리자 건너편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나를 언짢은 기색으로 넘겨다보더니 힘 있는 사람이 좀 돌리씨요, 라고 말했다. 명령이었다. 십 분 넘게 볼트와 씨름해 그걸 겨우 끝내자 칠복 씨, 교체할 중고 모터의 접합부를 들여다보고는 아이고, 소리를 질렀다. 볼트 머리를 두꺼운 플라스틱이 덮고 있었다. 볼트를 들여다보다 울화가 치밀어 망할 놈의 덮개를 망치로 내리쳤다. 그런 나를 보던 칠복 씨, 쯧쯧, 혀를 차고는 그라믄 일자 드라이버를 대고 고놈을 찍어 보슈! 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을 깨라는 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해머로 찍기 시작했다. 이마에 기름때가 번졌는지 바이스에서 작업하던 칠복 씨가 목장갑 하나를 던졌다. 나중 그는 땡볕 망치질을 계속하는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궁금했는지 나를 노려보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밀대 모자를 씌워줬다.
불쑥 손님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칠복 씨는 이음쇠를 찾는 그 사람에게도 내게 했던 것처럼 찾아보슈, 라며 부속 더미를 가리켰다. 한참 뒤 그 손님이 여기 있네! 라고는 얼마냐고 묻자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삼천 원, 이라고 웅얼거렸다. 삼천 원? 그 양반 몇 만 원이라도 낼 준비가 돼 있는데? 하루 손님 한둘뿐인 이런 가게에서? 만 원은 받아야제라…. 내 입에서 속엣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손님까지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는데도 칠복 씨는 흥, 쬐끄만 쇳덩이 하나에 뭔 만 원! 막무가내였다. 칠복 씨는 만 원을 받고 끝내 칠천 원을 내줬다.
작업하는 동안 칠복 씨의 코웃음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문제는 나였다. 세상이 도무지 보기 싫어 뉴스도, 사람과의 관계도 끊은 채 산골 백수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턴가 당당하기는커녕 사람들과 엉키는 것마저 두려워하고 있었다. 패배주의야말로 굴종의 씨앗이거늘. 오랜 실랑이 끝에 일이 끝나자 수고했소! 라며 내 어깨를 친 칠복 씨는 모터 교체 비용 중 이만 원을 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저씨 땀 값이오.
아, 누가 좋은 시는 비시적(非詩的)인 혹은 반시적(反詩的)인 일상사를 급습해 매몰된 진실과 아름다움을 구조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칠복 씨는 이미 최고의 시인이었다. 이 시간에도 직정(直情)의 시를 쓰고 있을 능주의 칠복 씨. 당당함으로부터 좋은 세상이 비롯되지 않는가. 정의로운 세상도 마찬가지. 오랜만에 아침 신문을 읽다 칠복 씨가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 될 게 무언가. 그가 파이프 렌치를 들고 이 겁박과 특혜와 혐오의 세상을 바투 비튼다면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불쑥 손님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칠복 씨는 이음쇠를 찾는 그 사람에게도 내게 했던 것처럼 찾아보슈, 라며 부속 더미를 가리켰다. 한참 뒤 그 손님이 여기 있네! 라고는 얼마냐고 묻자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삼천 원, 이라고 웅얼거렸다. 삼천 원? 그 양반 몇 만 원이라도 낼 준비가 돼 있는데? 하루 손님 한둘뿐인 이런 가게에서? 만 원은 받아야제라…. 내 입에서 속엣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손님까지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는데도 칠복 씨는 흥, 쬐끄만 쇳덩이 하나에 뭔 만 원! 막무가내였다. 칠복 씨는 만 원을 받고 끝내 칠천 원을 내줬다.
작업하는 동안 칠복 씨의 코웃음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문제는 나였다. 세상이 도무지 보기 싫어 뉴스도, 사람과의 관계도 끊은 채 산골 백수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턴가 당당하기는커녕 사람들과 엉키는 것마저 두려워하고 있었다. 패배주의야말로 굴종의 씨앗이거늘. 오랜 실랑이 끝에 일이 끝나자 수고했소! 라며 내 어깨를 친 칠복 씨는 모터 교체 비용 중 이만 원을 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저씨 땀 값이오.
아, 누가 좋은 시는 비시적(非詩的)인 혹은 반시적(反詩的)인 일상사를 급습해 매몰된 진실과 아름다움을 구조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칠복 씨는 이미 최고의 시인이었다. 이 시간에도 직정(直情)의 시를 쓰고 있을 능주의 칠복 씨. 당당함으로부터 좋은 세상이 비롯되지 않는가. 정의로운 세상도 마찬가지. 오랜만에 아침 신문을 읽다 칠복 씨가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 될 게 무언가. 그가 파이프 렌치를 들고 이 겁박과 특혜와 혐오의 세상을 바투 비튼다면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